"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북한 대통령이 가족들 못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선물을 보냈다고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우셨죠."
할머니의 고향은 개성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선생님을 하다 결혼 후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신혼생활을 했다. 아들인 기창씨를 낳으러 개성에 갔을 때만 해도 가족들을 잃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6.25 전쟁 이후 가족을 모두 잃게 된 거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게. 마냥 그리워만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그 이름을 하도 들어서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할머니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참 고약했다. 할머니는 지난 20여 년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단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지난 8월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 할머니는 억울했다. 왜 나만 자꾸 떨어지냐고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기창씨는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대한적십자사를 찾아갔다.
"김대성, 김장성, 김옥순, 김희명"
할머니의 여동생이자 기창씨의 이모들인 네 명의 이름을 적은 상봉신청서를 눈앞에서 확인시켜야 했다. 신청을 안 한 것도 못 한 것도 아니라고. 하긴 했는데, 그저 이번에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달래야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문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 문 대통령이 북한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에 인사말을 담아 이산가족에게 전했다. | |
ⓒ 김기창 |
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까
18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내외가 공항에 직접 마중 나왔다. 남북 정상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어머니는 그냥 보기만 하면 우셔요. 우시는 게 일이에요. 어머니가 벌써 아흔이 넘으셨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생사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기창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남북관계가 좋아졌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이산가족상봉을 우선순위에 놓는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될까. 아흔다섯, 할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기창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지막까지 기대해봐야죠. 송이버섯뿐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에도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가족들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 김지성 할머니 21일 김지성 할머니가 북한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을 입에 넣었다. | |
ⓒ 김기창 |
기창씨가 송이버섯을 씻었다. 이가 하나도 없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드려야 할까. 잘게 빻아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리면 될까.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의 기운으로 올해에는 꼭 북쪽에 사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송이버섯과 함께 온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을 바라봤다.
"북한에서 마음을 담아 송이버섯을 보내왔습니다. 북녘 산천의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그리는 이산가족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픈 가족의 얼굴을 보듬으며 얼싸안을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내외 문재인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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