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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여 잡월드 강사 해고위기’ 아이들 위해 생업 걸고 공공성 지키기에 나선 노동자들

양경수 경기본부장 “잡월드 강사까지 자회사로 전환하면, 아무것도 직접 고용할 수 없다”

김도희 기자 doit@vop.co.kr
발행 2018-11-19 21:43:14
수정 2018-11-20 08: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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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한국잡월드를 방문하는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나로 인해’ 직업을 알아 간다는 점이 뿌듯하다. 소외계층, 장애우 차별 없이 모든 아이들은 이곳에서 ‘직업’에 대해 배우고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내가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곳 노동자에겐 큰 낙이다.” (한국잡월드 3년 차 직업체험 강사 이주용 씨)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잡월드(Korea Job World)’에는 ‘종합직업체험관’이 있다. 사측이 ‘국내 유일’의 타이틀을 내걸며 운영하는 유료 서비스다.  

한국잡월드(이하, 잡월드) 내부는 치과의원, 방송국, 건설 현장, 경찰서 등 다양한 직업 현장을 청소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재현해 놓았다. 2012년 개관 이후 매일 3천여 명이 방문해 누적방문객은 520만 명에 달한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직업의 첫인상을 느끼며, 곧 자신의 진로가 될 매력적인 직업이 무엇인지 찾아간다. 

‘직업체험’이 잡월드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이곳에서 핵심 업무를 하는 노동자도 ‘직업체험’을 지도하는 강사들이다. 잡월드의 전체 노동자 390명 중 275명의 노동자가 해당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 중 대다수가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해있다.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잡월드에서 직업체험 강사 이주용(26) 씨와 김자영(27) 씨를 만났다. 어린이 체험관에서 일하는 자영 씨와 청소년 체험관에서 일하는 주용 씨에게 잡월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들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이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한국잡월드 자회사 결사반대 집회에 참석해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이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한국잡월드 자회사 결사반대 집회에 참석해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필수인력·핵심인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인 이유로 인정 못 받는 현실

이곳을 찾아온 방문객이 건물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마주한 대부분 노동자가 직업체험 강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업체험 강사는 잡월드 운영의 가장 중심에 있는 필수인력이자, 핵심인력으로 꼽힌다. 때문에 그만큼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직업의 가치’를 교육하는 노동자가, 지금껏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처우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일해 왔다. 강사 직군 노동자는 매년 새로운 사직서와 계약서를 쓰며, 개관 이래 7년 동안 여전히 용역 계약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 왔다. 

기관이 운영되는 동안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집을 만드는 건 강사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공로는 모두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아갔다는 게 강사직 노동자들의 한탄이다.

이들에 따르면, 강사직 노동자가 몇 년을 일해도 대우는 1년 차일 때와 똑같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문성은 도외시 됐고 임금은 매년 최저임금에 머물렀다. 기관이 설립될 때부터 일한 7년 차 노동자는 호봉제는 꿈꿀 수도 없었고, 상여금은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업무 시행착오를 통해 현장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을 기관 측에 건의하면 “그 정도면 할 만하지 않아요?”, “적절히 알아서 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의 보호자에게서 들어온 불만 사항은 모두 ‘알아서’ 대처해야만 했다. 이미 강사 직군 노동자 사이에선 ‘사측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업무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이 공연히 돌 정도였다. 

자영 씨는 안전에 대한 문제점을 아무리 얘기해도 “비정규직의 말은 사측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안전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해 일어났다고 그는 꼬집었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노경란 이사장은 13일째 기관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노경란 이사장은 13일째 기관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민중의소리

본보기가 돼야 할 고용노동부의 졸속 ‘비정규직 정규직화’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노경란 이사장은 13일째 기관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노동 가치’ 존중을 되뇌는 새 정부가 출범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질 듯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산하기관 잡월드는 강사 직군 노동자에게 직접고용이 아닌 ‘한국잡월드 파트너즈’란 자회사의 설립을 알렸다.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에 따르면, 자회사 전환 채용에 대해 사측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제대로 된 노·사·전 협의도 없었다. 당사자의 의견을 묵살한 채 졸속 합의로 사측은 자회사 설립을 공표했다. 

주용 씨는 “지난해 9월, 10월, 11월에 3차까지 노·사·전 협의회가 진행됐다. 그 당시 우리는 협의회가 열리는지도 몰랐고, 우리가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 속하는지도 몰랐었다”며 “사측은 6차부터 9차까지 협의회를 1달 만에 졸속으로 끝냈고, 그렇게 자회사 설립 방안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사 직군 노동자들은 반발했다. 기관은 ‘자회사에 가야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늘어난다’, ‘자회사로 가야 직접고용 시 봐야 하는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자회사에서 일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자회사 전환 뒤 다른 사람이 그만두면 그 자리를 채우지 않고, 기존 인원의 노동력으로 채워 그만둔 사람이 받을 돈을 너희가 나눠 갖게 해주겠다’는 말로 노동자들을 종용했다.

지난 8일까지 자회사 전환채용의 서류접수가 강행됐다. 졸속합의에 동의할 수 없었던 140명의 강사 직군 노동자는 사측에 노동자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서류접수를 하지 않았다.

사측은, 12월 초 강사 직군 결원 인원만큼 공개경쟁 채용을 하겠다고 알린 상태다. 노동자들이 서류접수를 하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140명의 노동자는 자회사 전환 채용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김원창 열사정신 계승!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자회사 전환 중단! 노정교섭 촉구! 총파업 투쟁승리!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에서 잡월드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김원창 열사정신 계승!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자회사 전환 중단! 노정교섭 촉구! 총파업 투쟁승리!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에서 잡월드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해고 위기에도 지키고 싶었던 것 
“수익 좇는 잡월드가 민간 기업이 되어간다” 
아이들의 응원에…“내가 해야겠구나” 다짐
 

강사 직군 노동자는 대부분 20대~30대 청년, 여성의 비율이 높다. 파업에 동참한 140명의 노동자 중 18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여성이다.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잡월드의 자회사 설립을 막고, 직접고용을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주용 씨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잡월드는 더욱 수익 창출을 추구하고, 공공기관이 아님을 자처하는 상황이다. 잡월드가 공공기관으로서 발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우리 편하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며 “현재 3만 원이 넘는 하루 입장료도 적은 돈이 아니며,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소외계층에게 직업체험 기회를 주도록 잡월드는 꼭 공공기관으로 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영 씨는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며 근무시간이 줄었음에도, 잡월드는 사람을 더 뽑지 않았다. 강사의 업무강도는 높아졌고, 기관은 고객을 더 유치하려 수업 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 간격마저 줄였다”며 “기관이 민간업체로 바뀌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되면 교육의 질도 떨어지고 아이들이 겉핥기식 직업체험을 하고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사 직군이 파업에 돌입한 뒤, 현재 잡월드 직업체험관에는 직업체험 강사 관련 업무를 해오지 않은 몇몇 정규직 직원, 단기 아르바이트노동자 등이 해당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주용 씨는 “아이들이 와서 제대로 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여기 별거 없네’라고 생각할까 봐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래도, 우리가 농성하고 집회하는 모습을 보며 ‘힘내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투쟁을 왜 해야 하지’보다 ‘해야겠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파업하고, 농성하는 이유는 정규직과 같은 연봉을 달라는 것도, 그 사람들과 똑같이 근무하게 해달란 것도 아니다. 잡월드가 공공기관으로서 성격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라며 “노조를 설립하며 평소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정말 유능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강사들을 기관에서 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자영 씨는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과 활동하고 체험하며 얻는 에너지가 있어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사람들이 우리가 욕심낸다고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잡월드 직접고용’ 촉구하며 단식농성 돌입한 양경수 경기본부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경기본부장은 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지난 13일부터 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양 본부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잡월드 강사 직군 노동자는 아이들의 안전까지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로드맵으로 하는 상시지속업무, 생명·안전 업무에 100% 부합하는 업무”라며 “이 업무까지 자회사로 전환한다면, 아무 업무도 직접 고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잡월드 노동자는 가장 앞순위에서 직접 고용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부마저 (비정규직 노동자) 자회사 전환 채용을 한다면 다른 공공기관, 민간기업도 ‘노동부도 이렇게 하는데’라는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만큼 잡월드의 직접고용은 전체 노동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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