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결성 30년, 30년간 전교조가 해온 가장 큰 활동의 영역 중 하나는 ‘교육정책 개선’이다. 교육정책의 변화로 학생들의 학교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학교가 변했다.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슈 세 가지를 선정해 학교의 변화를 위한 전교조의 노력, 그리고 전교조의 활동에 담긴 참교육의 지향을 선생님에게 직접 들어봤다. 세 편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1) “경쟁교육 반대” 일제고사 폐지 |
“저는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고를 졸업했어요. 아침마다 선도부가 교문 앞을 지켰는데, 머리가 길다고, 교복이 불량하다고 지적도 많이 받고,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꼭 선생님이 돼서 이런 문화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서울 이화병설미디어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윤승 선생님. 학교에 다니면서 아침 등교 시간마다 선도부의 눈에 띈 경험이 많다며 웃었다. 그러나 자신의 학창시절과 달리 “지금의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하면서 머리 길이, 염색에 대한 자유, 자신이 더울 땐 언제든 하복을 입을 수 있는 자유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2010년 10월 경기도 교육청을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도입은 각 지역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 2011년 5월,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가 ‘학생인권조례제정 청구인 명부’를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서울시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 선생님.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은 하나의 계층”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라 표현하지 않고 ‘학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표현이지만 ‘학생’은 학교라는 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구성원, 학교의 한 주체로 본다는 인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조례를 만드는 시작이었다고 이 선생님은 강조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두발, 복장 자유화 등 개성을 실현할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이 선생님은 “헌법에 있는 내용을 구체화 시킨 것 뿐입니다. 그동안 헌법에 담겨있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학생들에게도 보장돼 있었다면 조례까지 만들 필요는 없었겠죠?”라고 되물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제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①항]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
조례(5조)에 차별의 유형이 구체적으로 담긴 이유는 “그동안 이런 이유로 인해 차별받아왔던 학생과 시민들의 마음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이렇게 해도 되나’, ‘안되는 거 아닌가’ 고민을 하게 되고, ‘학생 인권’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말이 됐다”는 게 큰 변화 중 하나라고 이 선생님은 말한다.
학생들도 달라졌다. “초창기, 학생들이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그 신고자는 대부분 부모님이었어요. 학생들 스스로가 인권침해를 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엔 학생들이 직접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요. 신고할 수 있다는 자각, 학생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인권’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는 게 학생들에게 가져다준 큰 변화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인권침해에 대한 신고내용도 다행해지고 있다. “소지품 검사 등 사생활 침해, 복장·두발 자유화 등 개성실현 문제에 집중된 시기가 있었는데, 이젠 부당징계·이중징계에 대한 피해를 신고하기도 합니다. ‘잘못한 놈이 무슨 말이 많아’라며 또 징계를 받으면 이것이 이중징계라는 걸 학생들도 아는 거죠.”
이 선생님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전교조가 많은 걸 하진 못했다”고 평했다. 시민단체들과 함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교조 선생님들도 열심히 조례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고, “전교조가 함께 해야 할 자리에 언제나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인권옹호관이 없던 시절, 전교조 선생님들은 인권센터에 파견 나와 인권침해 신고접수를 받고 센터 운영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 2015년 1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3주년 기념 좌담회. 학생·교사·학부모, 그리고 서울시 교육감이 참석했다. [사진 : 뉴시스] |
“서울시만 해도 조례가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며 교육감과 교육청에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바꿀 거냐’에서 중요한 부분은 교육감과 교육청이 지도를 잘하는 것 입니다. 조례가 지켜지지 않는 학교에 대한 강력한 관리·감독, 그리고 인권침해 신고가 들어오면 ‘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강제성 있는 시정이 필요하죠.”
조례가 잘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도 강조했다. “학생들의 인권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학생을 ‘아이들’이 아닌 ‘학생’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사와 학생들 모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더 높아져야 하죠. 우선 학생들의 머리 길이, 염색에 대한 자유, 복장의 자유를 비롯해 신체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학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복장의 자유’가 생기면서, 학생들은 더워도 하복을 입지 못하고 추워도 동복을 입지 못하고 스스로 내 체온조차도 관리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조례가 도입된 후 1차적인 변화였다.
“내 신체에 대한 관리를 시작으로, 내 시간에 대한 관리, 내 일에 대한 관리, 내 영역에 대한 관리 등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의 인권과 권리를 찾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더 많은 동조가 필요합니다.”
▲ 사진 : 뉴시스 |
1989년 창립한 전교조는 지난 28일 서른 살 생일을 맞았다. 일제고사 폐지, 무상급식 실현,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전교조 선생님들이 앞장서 변화시킨 교육정책 중 일부를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5일 전교조 창립 30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 후 청와대로 향했던 전교조 선생님들의 만장 행렬. 서른 장의 만장 속에 30년을 살아온 전교조의 성과가 고스란히, 그리고 빼곡히 담겨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교의 변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아직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고 얘기한다. 전교조는 결성 30주년을 맞아 “‘숨’을 쉬는 공간, ‘쉼’이 있는 배움, ‘삶’을 위한 교육을 향해 새로운 30년을 살겠다”고 발표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 학교의 변화, 교육정책의 변화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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