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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히스패닉 동네 벽화는 '진실하고 투쟁적'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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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페루 이민자 사회의 반응 스케치 ③]

마르케스의 말과 리베라의 그림 살아 숨쉬어

무기 수출 중심의 라틴 아메리카 접근은 단견

인권옹호, 환경보호, 빈곤퇴치에 관심 가져야

"고귀하고 진실되며 투쟁적인" 공동체 자부심

자연에 순응하는 삶, 물질 부족 메우는 상상력

한국 방산과 중남미 극우 정권들의 밀착 우려

미국과 하나된 치안과 안보=번영 등식에 반감

"우리는 강대한 지배자들에게는, 그들이 경멸하는 이 아메리카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하고, 부정적이고, 불경스럽고, 격동적인 것을 대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민중의 거대한 대중, 즉 우리의 아메리카, 리오 브라보 남쪽에서 시작되는 그 아메리카에게는, '메스티소'라고 경멸적으로 불리는 이 민족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고귀하고... 모든 진실하고 투쟁적인 것을 대표한다."

(Representamos para los amos poderosos todo lo que hay de absurdo, de negativo, de irreverente y de convulso en esta América que ellos deprecian, pero representamos por el otro lado, para la gran masa del pueblo americano, del americano nuestro, del que empieza al sur del Río Bravo, todo lo que hay de noble... todo lo que hay de sincero y de combativo en estos pueblos llamados despectivamente 'mestizos'.")

체 게바라의 외침이다.

필자는 최근 흔히 '히스패닉'이라 불리는 중남미 카리브해 유역 출신 이민자들이 밀집된 뉴욕 맨해튼 동남부 '로어 이스트 사이드'(스페인어로 로이사이다: Loisaida)를 돌아다녔다. 체 게바라가 말한 "고귀하고 진실되며 전투적인" 이민 사회의 모습을 찾아 나섰다.

 

어네스토 체 게바라(위키미디아)

이번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 책방, 교회 등에 가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 '벽화 탐험'이었다. 중남미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특징 중 하나다. 소수민족이며 적지 않은 주민들이 '저소득층'으로 구분되는 이들이 사는 곳에는 갤러리 같은 '고급 문화'의 전당은 흔치 않다. 하지만 누구나 지나가며 구경할 수 있는 벽화가 많다. 이 지역 밖 사람들은 낙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눈과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동네가 문화 공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취감에 취해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초토화한 전쟁을 치르고 50년도 되지 않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강국이 되었다.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도 최소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먹거리'로 인공지능(AI)를 정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투자를 준비 중이다. 전국을 반도체 클러스터화할 기세이다.

이 와중에 국가 개발의 성공이 주는 열매를 다른 나라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국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국가 담론으로 부상했다. 부를 퍼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나선다.

페루가 대표적인 예다. 광물을 받고 잠수함과 탱크를 주는 데 기술을 이전하니 페루의 미래를 위한 교환이란 합리화다. 페루 산업의 미래를 디자인해 주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이런 관계 속에 개발 독재와 압축 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잠수함 건조 기술을 페루에 전수하면 페루인들의 삶이 향상될 것이란 주장은 공허함을 넘어 기술력을 앞세운 오만으로 느껴진다.

 

디에고 리베라 (위키피디아 커먼스)

라틴 아메리카를 향한 한국의 방산을 앞세운 개발과 번영의 청사진이 놓치는 것이 있다. 페루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은 아사 선상에서 대한민국의 시혜를 기다리는 나라들이 아니다. 가난해도 깊은 문화, 정서, 예술성을 품고 산다. 고향의 멋과 맛이 살아 숨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이다."("La vida no es la que uno vivió, sino la que uno recuerda y cómo la recuerda para contarla.")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말이 이 동네에 살아있다. 필자가 찾아간 중남미 이민 밀집 지역의 벽화들이 말해 주었다.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예술은 민중을 속이는 거짓말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로 바뀔 수 있다. 예술의 내용을 통해 [민중이] 권력자가 자신들을 착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짓말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길주 시민기자)

중남미는 침략, 침탈, 정복을 경험한 사회이다. 위 벽화의 가운데 스페인은 왼쪽 원주민 사회를 정복해 파괴했으며, 그 후 세계 시장과 연결된 상업농을 통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 오른쪽 아프리카 노예를 잡아왔다. 스페인 점령자들은 사회 질서를 잡겠다면서 피부색에 가치를 부여했다. 물론 백인이 우월하고, 유색은 천하니 백인의 지배를 받아도 된다는 정당성을 만들어 냈다. 빈곤, 종속, 인종 등 사회 문제의 철책에 갇힌지도 모른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오늘 중남미 사회의 현실이다. 중남미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은 아마 가운데 그려진 투구를 쓴 흰 피부색의 정복자 후손들과 교류할 것이다. 중남미 보통 사람들에게 한국인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이길주 시민기자)

역사의 아픔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회이지만 중남미 이민자들에게서 증오심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현재 진행인 미국을 제외하고 말이다.) 위 벽화처럼 모든 벽화에 빠지지 않는 환한 꽃이 역사적 증오심을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중남미도 그렇고 중남미 이민사회도 다인종 사회이다. 흑인, 백인, 아시아인들이 섞여 산다. 세대가 자연 속에서 꽃피우고 사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높은 건물들은 벽화를 품은 채 실루엣으로 서 있다. 고층 빌딩보다는 흙이 더 귀한 사회란 메시지인 듯하다. 나무와 하나 된 흰 머리와 검은 머리 여성, 또 나무 심는 부자는 자연 속에 하나 된 세대를 말한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길주 시민기자)

 

(이길주 시민기자)

중남미계 이민 사회의 벽화에는 사람, 짐승, 새, 곤충, 꽃, 풀이 하나가 된다. 흔히 말하는 원초적 특성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의 토대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인간, 동물, 초자연적 존재가 거부감 없이 공존하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를 중남미 이민 커뮤니티의 벽화에서 만난다.

아마존의 파괴로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감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아마존 파괴는 동물의 사료로 사용될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태워 농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가 고기 더 싸게 먹자고 인류의 공기 정화기를 부수고 있다. 이러다 인류 공동체는 바비큐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에 콜록여야 할 수도 있다.

 

(이길주 시민기자)

로이사이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많다. 업타운의 고급 아파트들과 달리, 비용이 많이 드는 건물 관리 시스템이 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 건물 외양과 주변 환경이 아파트 가격과 직결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는 건물 또는 아파트 소유주가 쓰레기 처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저소득, 이민자 밀집 지역 로이사이다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로 누군가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통, 캔, 철제 쓰레기로 아마존의 꽃과 풀, 나무를 탄생시켰다.

 

(이길주 시민기자)

로이사이다에는 재활용품 상점 쇼윈도도 범상하지 않다. 이 지역을 감싸는 자연과 환상이 하나 된 모티브가 눈길을 끈다.

 

(이길주 시민기자)

중남미 가정은 대가족이다. 세대가 하나 될 수 있게 하는 매체가 음식이다.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은 간단한 음식 나눔이 세대와 이웃을 묶어준다. 중남미는 가난해도 굶는 사람 없는 사회란 평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헤어스타일이 잉카 제국의 상징, 작열하는 태양과 같은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음식을 만든 것인가? 큼직한 튀김 만두 같은 엠파나다가 먹음직해 보인다.

 

(이길주 시민기자)

'비보이'는 중남미의 즐거움 문화가 만들어낸 장르이다. 삶이 팍팍하고 벅차도 흥은 있다. 쭈뼛거리거나 감추지 않고 적극 표현하는 문화 속에서 몸이 악기가 되어 비트와 아크로바틱이 결합했다.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좌우로 흔들리는 폭발적인 공연 문화가 탄생했다.

 

1970년대 라틴 이민자들이 주거하는 게토라 불린 브롱스에서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음악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며 힙합 문화를 탄생시켰다. 가열된 앰프를 가정용 선풍기로 식혀야 했다. (The Gotham Center for New York City History)

레코드판을 앞뒤로 문질러 예상하지 못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스크래칭은 고전적 음반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통의 파괴이고 도발이었다. 70년대 라틴계 젊은이들이 중남미, 카리브해 이민 사회인 뉴욕의 브롱스에서 힙합, 랩, 비보이를 예술, 문화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가난이 만들어낸 음악이 지금 세계의 주류가 되었다.

 

(이길주 시민기자)

뉴욕 로이사이다에서는 중남미 사회에 팽배한 비공식 경제 행위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과연 이런 물건을 누가 사나 걱정까지 되지만, 무허가 비공식 노점 "사장님"은 근심이 없다. 오늘 아니면 내일 팔면 되고, 그래도 안 팔리면 기부한다고 했다. 그에게 도로법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뒤 벽화에 살짝 손을 잡은 시니어 커플의 눈길이 은밀하고 따뜻하다. 왼쪽 아래 개구리가 시샘하는 듯하다.

 

(이길주 시민기자)

중남미 주민들이 밀집되어 있다고 해서 물론 다른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종적으로 흑인, 백인, 아시아인의 피가 섞여 있어 오히려 텃세가 덜하다. 맨해튼 동남쪽 중남미계 커뮤니티에 위치한 아랍계 식당인데 "우린 역사를 만든다"가 상호이다. 이보다 더 웅장한 식당 이름은 세계에 없을 것 같다. 먹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일이란 메시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밥상 공동체'란 의역도 가능하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곳엔 성업 중인 팔레스타인 식당도 있다. 중동의 오아시스를 모티브로 꾸몄다. 식당 이름은 '아이앗(Ayat).' 신의 표징 또는 기적 등의 뜻을 갖고 있는 아랍어이다. 중동 사태로 민감한 시기에도 당당히 "팔레스티니안"이라 밝힌 이 식당을 유대인들도 많이 찾는다. 살사(salsa) 음악이 대변하는 유연성이 동네 분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길주 시민기자)

중남미 이민 사회에는 조그만 땅이 있으면 꽃밭을 만들고,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고 무엇인가 설치한다. 왜 남의 벽을 침범했냐는 건물주의 항의나 투정은 없는 것 같다. 그림이 닳아 없어질 만큼 오래 그 자리를 지켜왔다. 역시 독특한 파란 눈의 원숭이 모습이 아마존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와 희망, 정의는 세대를 거쳐 계승되어야 한다"("Peace, Esperanza, Justicia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는 메시지가 오른쪽에 보인다.

 

(이길주 시민기자)

로이사이다에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벽화가 있다. 기존 화단으로부터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서인지 제목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건물 한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웅장함이 압권이다. 태양신을 섬겼던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평이 있다. 비록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 종족은 사라졌지만, 원래의 모습은 크고 웅장하고 위대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앞에 언급한 체 게바라의 말을 제목으로 달았으면 좋겠다. "고귀하고 진실되며 투쟁적인 사람들."

중남미 이민자가 다수인 로이사이다의 벽화를 바라보며 내린 결론이 있다. 과연 중남미 사회를 국민소득, 교역량, 경제성장률 같은 수치로 재단하며 찾아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반문이었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을 외화 획득의 엘도라도 또는 대한민국 방산의 거점 따위로 접근하지 말고, 상상력과 문화의 보고로 바라보는 겸손과 성숙함을 갖추기 바란다.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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