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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 받는 돈은 내 돈이니 감사하라"던 한국 사람들

[먼저 온 통일은 왜 남한을 떠났나]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김민재 씨 下
2019.10.12 09:49:21
 

 

 

 

<프레시안>은 지난 7월 말,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간 '조난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기존 미디어에 등장하는 탈북민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이 아닌, 남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한 정부와 사회가 통일을 말하기 전에 탈북민에 대한 처우와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 4편에 걸쳐 소개할 이는 네덜란드에 사는 김민재(가명) 씨다. 북한에서 운전병으로 10년 넘게 군 복무를 했던 김 씨는 고난의 행군 시절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2000년도에 남한으로 넘어왔다. 남한에 와서 신문배달부터 시작해 감자탕 가게에서 석쇠 닦는 일까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을 했다. 가장 보통의 한국 사회를 마주한 그는 일상에서 겪었던 차별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희망을 찾아 남쪽으로 온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네덜란드 한 소도시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를 갈무리해 전한다. (☞전편 보기 : "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남한에서 겪은 건 차별") 

 

"한국 사람 흉내 내고 살아도 '피'는 안 되겠다 싶었다" 

김민재 씨는 한국에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털어놓다가도 되뇌듯 말했다.

"그래도 난 한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고맙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존재가 북조선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된다." 

하지만 그런 그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의 아들 연우가 학교에서 겪은 일 때문이었다. 

김 씨가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자신보다 하나원 아래 기수로 들어온 김희정(가명) 씨와 결혼을 했다. 1년 뒤 희정 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연우가 태어났다.
 

▲ 한국에서 거주하던 시절 김민재씨와 그의 아들 연우가 함께 찍은 사진 ⓒ프레시안(박정연)


잔인하게도 차별의 굴레는 연우에게까지 미쳤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연우에게까지 차별이 '대물림'되자, 그는 더이상 한국에서 살아갈 동력을 잃었다고 했다.

"어느 날 연우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데,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연우는 머리에 '이'가 있다고 했다. 자기도 깨끗하면 우리도 깨끗하게 씻고 사는 건데, '탈북자'의 자식이라고 애한테 그딴 소리를 하는 거다. 

선생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인데, '인테리'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니까. 심지어 한국에서 태어난 애한테도 그런 말을 하니까, 어쩌면 사람을 무시해도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몇 년 전 일인데도 연우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이한테는 씻기지 않는 상처다. 애가 무슨 죄냐. 나도 국민으로 신분증이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때 우리가 한국 사람을 흉내 내고 살아도 '피'는 이게 안 되겠다 싶더라." 
 

ⓒ프레시안(박정연)


김 씨의 아들 연우는 인터뷰하러 자신의 집을 찾은 기자와 인사를 나누러 거실로 나왔다. 수의사가 꿈인 연우는 아픈 동물을 보살펴 주고 싶다고 했다. 수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으니 연우는 "사람은 아니고, 동물이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연우에게 "그때 선생님이 '이' 있다고 한 것 기억나지?"라고 물었고 연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연우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듯 보였다. 

"남한을 떠난 이유에 그런 경험들이 다 뒷받침되는 거다.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정착을 '잘 했다'고 하는 기준은 대부분 '돈'이다. 남한에서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정착이 '잘' 된 것이라고 하는데, '정착'이라는 말이 돈인가?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한데, 돈이 있다고 잘 정착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착을 잘했다고 하는 '탈북민'들은 반공선전 잘하고, 어디 박사가 되어서 북한을 분석하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돈보다 내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중요했다. 한국을 떠난 지금은 돈이 부족하더라도 마음 하나는 편하게 살고 있다."

"너에게 주는 돈은 내 돈이니 감사하고 살라"던 한국의 이웃들

2017년 통일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거주 소재가 불명확한 탈북민 900명 가운데 746명(82.9%)이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 592명은 최소 5년 전(2017년 기준)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여 년 동안 탈북민이 국내에 정착한 뒤 해외로 이주해 난민 신청 등을 거쳐 체류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했던 것이다. 
 

ⓒ프레시안(박정연)

2012년 탈북자들의 '탈남 러시'가 줄을 이을 때, 김 씨는 아내 희정 씨와 헤어지고 아들 연우와 함께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어느새 네덜란드에 정착한 지도 7년째다.

김 씨는 한국에서는 정부 기관 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마저 "너에게 주는 지원은 내가 주는 세금"이라고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일상에서조차 이웃들로부터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탈북자들에게 세금을 주는 것에 대해 내 면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았다. 전주에서도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자기들이 지금 내게 돈을 주는 것처럼 말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너 먹고 지내는 것 내 돈'이라는 소리를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듣게 되면 기분이 팍 상했다.

'당신도 정부에 세금 내지만, 나도 돈 벌면서 세금을 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냥 말았다. 치사해서. 한국이 '자유 평등 국가'라고 하는 게 우스웠다. 내가 당신들과 똑같이 평등하다면 내게 그렇게 '감사하라'고 눈치 줬을까."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그가 한국에서 겼었던 '비아냥'이 없었다. 시혜적인 태도로 감사함을 강요했던 이웃들과는 달랐다. 

"나한테 자신의 세금을 줬다고 말하는 네덜란드 사람을 보질 못했다. 적어도 내 면전에다 대고, '고마워해야 한다'라느니 '너 먹고사는 것 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또 내 사생활에 대해서 정부든, 이웃이든 일절 물어보질 않는다. 정부에서 나에게 '여기서 일해라' 혹은 경찰 등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사는지 감시하거나 하는 게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나는 현재 일을 쉬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내게 일을 하라고 편지를 보내 독촉하거나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일이 없다고 하면 어떤 단체든, 정부든 돈을 쥐여주면서 사람들을 반공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꾐이 없다."
 

ⓒ프레시안(서어리)


김 씨는 교육 환경을 생각해보아도 경쟁을 고조시키는 한국 문화가 아들 연우에게 좋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환경에 따라 아이들마저도 평가한다. 여기 선생들은 그러지 않는다. 또 여기는 성적가지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한국은 모든 게 경쟁이지만 여기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울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시험을 쳐도 본인에게만 성적을 알려주지 성적표를 게시판에 붙여서 아이들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성적표를 공개해서 아이들 사이에 불신을 만들어 내잖아. 그 성적에도 다 집안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건데, 여기는 공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차피 우리네 처지 차별받는 게 다 똑같으면 우리 민족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게 덜 서럽지. 그런데 막상 와보니 유럽도 일부 사회주의를 받아들여서인지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 같다." 

"민족 통일을 이루려면 진실되게 북을, 탈북민을 대해야 한다"

통일부는 '3만 5천 명의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김 씨는 정부가 통일 국가를 준비한다면, 그리고 탈북민들을 통일 국가에서 먼저 온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자신들을 이념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통일부 카드뉴스 갈무리

"'먼저 온 통일'이라는 말은 틀렸어. 지금 말로는 3만 명이 탈북자라고 하지만 외국에 나가는 탈북자만 1만 명이 넘는다. 왜 나가는지 나 한사람의 인생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느냐.

정부도 북조선에서 고난의 행군을 겪은 것 알지 않느냐. 아사자가 많이 생겨났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 가족이 아사하고, 내가 아사 직전까지 간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정부 혹은 정부의 돈을 받은 단체들이 우리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하게 해서 반북조선 선전을 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이념적으로 이용하는 거다. 우리의 고통을 자신들의 정치 놀음에 이용하는 거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통일을 말하면 진실로 와닿겠냐."

그는 한국에 있는 탈북민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남한에 있는 탈북민들은 '북한인권' 떠들고 그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이 민족을 더 갉아먹고 죽이는 꼴이다. 우리를 이용해 분열을 조장하는 거다. 입으로 벌어먹으려고 하지 말고, 네 뼈로 니가 일해서 가족들을 벌어 먹여야 한다.

나도 전주에 있을 때 형사들이 어떤 학교에 강연을 한번 가라고 했다. 말하자면 극우세력들이 오는 행사인데, 반공화국 강연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겪은 고통을 얘기하면서 북한인권을 말하면 진실일 것 같으니 더 잘 듣는다는 거야.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형사가 희한하게 느껴졌다. 내 고통을 반공화국 선전하는데 이용하라고 당당하게 얘기를 하니까.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언변술을 이용해서 반공화국 선전으로 돈을 벌 기회가 이따금 찾아온다. 그렇게 돈 벌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결국 그 말이 내 생각을 세뇌시키고, 조여온다." 
 

ⓒ프레시안(서어리)


김 씨는 북과 남을 떠났지만, 통일이 될 그날을 그려본다고 했다. 그때는 북에 두고 온 배우자와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무엇보다 "진실된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족 통일을 이루려면 진실되게 북조선을 대해야 한다. 탈북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거짓으로 내 동포, 내 민족이라고 하지 말고.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는 그 태도만 있어도 탈북민들은 감동하고 북조선 인민들도 감동할 거다. 정상들이 만날 때마다 담화문을 내지만 진심으로 제대로 이행한 적이 있나, 미국과 함께 가지만 원칙을 가지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런 뚝심을 보여준다면 민족 통일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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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민을 탈북민 대하듯? 통일 때려치우라 할 것" "경상도, 전라도 사람처럼, 난 북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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