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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 미국에 속고, 지역패권국 터키에 채이고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미국에 토사구팽 당하자 아사드와 손잡은 쿠르드
2019.10.14 22:46:05
 

 

 

 

2011년부터 9년째로 막바지에 접어든 시리아 전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시리아 정부군이 나서서 터키군 진격을 막기로 쿠르드 반군 쪽과 합의했다. 터키 정부군이 지난 9일 쿠르드족 무장세력을 퇴치한다는 명분 아래 시리아 국경을 넘어 '평화의 샘' 군사작전을 펴온 닷새 만에 일어난 큰 변화다. 터키의 침공에 맞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손을 잡은 모양새다.

2011년 아랍의 봄바람을 타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총을 들고 일어난 뒤로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부는 서로 총을 겨누어온 사이였다. 시리아전쟁이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의 승리로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쿠르드족은 시리아 서북부 지역을 장악하곤 자치를 누려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나빠졌다. 쿠르드족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한 터키가 공격해 들어온 탓이었다. 쿠르드족은 위기를 벗어나려고 그전까지 앙숙이었던 시리아 정부군과 손을 잡았다.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부는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에 시리아 정부군을 진주시키는 것에 합의했다. 쿠르드 당국은 "터키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터키와의 국경을 따라 시리아 정부군이 배치돼 시리아민주군을 돕도록 시리아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배신'으로 독재자와 손잡다 

최근 터키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을 치른 쿠르드족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0명 규모의 미군과 함께 극단적 이슬람 무장집단인 '이슬람국가'(IS)를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이들이다.  

다마스쿠스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에 맞선 시리아 민주군(SDF)의 주력 가운데 하나가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다. 2017년 10월 IS의 본거지 락까를 점령할 때도 주력군은 YPG였다. IS와의 전투에서 1만 1000명의 YPG 대원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점에서는 YPG는 미국에겐 중요한 동맹자였다.
 

▲ 2017년 10월 미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 세력을 공격해 락까를 점령한 시리아 쿠르드족 YPG 대원들의 행진 모습 ©Kurdishstruggle


그 무렵 쿠르드 사람들은 미국이 쿠르드족의 독립 또는 자치를 도와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곧 헛된 희망이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면서, 나토(NATO)의 중요한 동맹국인 터키의 군사적 공세에 대해 말로만 비난할 뿐 사실상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는 모습이다. '배신'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쿠르드족은 왜 이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미워하던 독재자 아사드와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됐을까. 미국은 왜 터키의 무력 공격으로부터 쿠르드족을 지켜주질 않을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말로만 터키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하니 어쩌니 하면서 사실상 구경만 하는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에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당하는 위기 상황에서 독재자 아사드와 손을 잡게 된 쿠르드족의 슬픈 역사를 돌아본다.

인구 3000만으로 '쿠르디스탄' 국가 못 세워 

전 세계에서 나라를 이루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민족들은 많다. 1948년 유대인들이 그때까지 지도상에 없던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팔레스타인 땅에 세우면서 밀려난 팔레스타인 민족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머릿수로 따지면, 쿠르드(Kurd)족은 약 3000만~37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구상에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다.

정확한 숫자는 통계자료마다 다르고, 쿠르드 사람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라크, 이란, 시리아 취재를 갔다가 만난 쿠르드족 사람이나 터키 여행을 갔다가 만난 쿠르드족 여인들, 또는 한국에서 만난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쿠르드족 총인구는 제각각이다. 심지어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을 붙잡고 물어봐도 "글쎄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네요"라며 손을 내젓는다.  

유엔에 가입한 193개 국가 가운데 인구가 겨우 몇 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들도 여럿이다. 쿠르드족은 흔히 '국가를 이루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라 일컬어진다. 앞서 적었듯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수가 3000만 명쯤에 이른다면 어엿한 국가를 이루고도 남을 만한데도 그러질 못했다.  

쿠르드족은 아랍인, 페르시아인(이란인), 터키인의 다음으로 중동 지역에서 많은 인구를 차지한다. 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은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이 국경으로 맞닿아 있는 산악지대로, 면적은 30만km² 정도로 한반도의 약 1.5배다. 이 지역을 쿠르드족은 흔히 '쿠르디스탄'이라 부른다. '쿠르드족의 땅'이라는 뜻이다. 

500년 전에만 해도 이곳엔 '메데'라는 이름의 쿠르드족 왕국이 있었다. 하지만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와 페르시아의 사파피 왕국(지금의 이란)이 메데 왕국을 둘로 갈라 나누어 차지하는 바람에 지도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 중동지역의 쿠르드족(Kurds) 분포 ⓒ김재명


2018년부터 터키군 공세로 피란길 

쿠르드 족은 터키에 가장 많다. 터키 동남부 지역엔 무려 1500만 명의 쿠르드족이 터키 동부지역에 살고 있다(터키 전체 인구의 20%). 이란 서부 지역에 사는 쿠르드족은 약 800만(이란 전체 인구의 10%), 이라크 북부 지역의 쿠르드족은 약 600만 명(이라크 전체 인구의 약 17%), 시리아 서북부 지역에는 쿠르드족이 약 200만 명(시리아 전체 인구의 약 12%)에 이른다. 이를 비율별로 정리하면, 쿠르드족 전체 인구의 45%는 터키에, 24%는 이란에, 18%는 이라크에, 6%는 시리아에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 종교를 믿고 있으며 수니파에 속한다.  

200만 시리아 쿠르드족은 아랍의 봄바람을 타고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터지기 전에도 다마스쿠스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로부터 탄압을 받아 왔었다. 그렇기에 내전을 기회로 삼아 시리아 중앙정부로부터 분리 독립을 하거나 적어도 자치정부를 세우길 바랐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초강대국인 미국이 바라는 대로 극단적 이슬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무너뜨리기 위해 총을 잡고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아직 얻은 것이 없다. 오히려 터키로부터의 군사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 중이다. 터키의 공격은 이미 2018년부터 벌어졌다.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던 시리아 북부 아프린 지역이 터키군에게 점령당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쿠르드족 민병대원들이 죽고 1000명 넘게 포로로 잡혔다. 오래 전부터 그곳에 살던 많은 쿠르드족 민간인들은 터키군의 공세를 피해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가야 했다. 

터키는 터키대로 명분이 없지 않다. 터키 동부지역에서 오랫동안 쿠르드족 분리운동을 펴온 쿠르드 노동자당(PKK)과 시리아 쿠르드 무장세력 '인민수호부대'(YPG)가 손을 잡고 세력을 불리는 것을 선제공격으로써 막겠다는 것이다. 터키 쪽에서 말하는 이른바 '예방전쟁' 논리다. 터키 국경과 맞닿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구역을 공격함으로써, 만에 하나 터키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에 걸친 쿠르드족 독립국가의 탄생을 막는 것이 터키의 전략목표다.

"우리의 꿈은 독립국가" 

중동 지역 취재 때 만난 쿠르드 족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가장 큰 희망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꿈은 독립국가를 이루는 것이에요"라고 입을 모은다.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서러운 역사를 지녔다.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서 오랫동안 유목민 생활을 해온 쿠르드족이 어엿한 나라를 이루지 못한 것은 따지고 보면 결국 서구 강대국들의 냉혹한 패권 논리 탓도 크다. 이들이 살던 쿠르디스탄 지역은 중세시절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 (지금의 터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었으나 전쟁에서 패한 뒤, 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 지역의 국경선을 멋대로 그었다. 오스만제국의 분해와 더불어 터키와 이웃나라인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걸쳐 살던 쿠르드족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나라 국민으로 바뀌었다.

중동국가들은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노릴까봐 저마다 무력으로 눌러왔다. 만에 하나 그 많은 인구를 지닌 쿠르드족이 독립할 경우 국경선에 큰 변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이 하나로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려고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힘이 모자랐기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나마 이라크 쿠르드족은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자치를 누리고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터키, 쿠르드어 방송과 교육 금지 

중동 지역의 다수는 아랍어를 쓴 아랍인인데 비해, 쿠르드족은 자신들의 언어인 쿠르드 말을 하는 민족이다. 비록 같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기는 해도 이란을 빼고는 아랍족이 대부분인 중동지역 사람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중동 4개국(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이 20세기 내내 보여 왔던 공통점은 쿠르드족의 독립 또는 자치 요구를 묵살하고 탄압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많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터키는 오랫동안 쿠르드어 방송과 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탄압 정책을 펴왔다. 쿠르드족의 독립 국가 건설을 투쟁 목표로 삼은 쿠르드 노동자당(PKK)은 터키 정부에 맞서 30년 넘게 무장투쟁을 벌여 왔기에, 터키 정부를 이들을 테러 단체로 낙인 찍어왔다. 1984년 이후로 지금까지 터키 정부와 PKK 사이의 유혈분쟁으로 4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인민수호부대(YPG), IS 근거지 함락시킨 주역 

시리아에 사는 200만 명의 쿠르드족도 다른 지역의 쿠르드족과 마찬가지로 모진 시련을 겪어왔다. 1946년 시리아가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뒤 이웃나라 터키나 이라크의 쿠르드족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1986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 정부의 탄압정책에 맞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시리아 경찰의 곤봉과 정부군의 총탄이었다. 쿠루드족 봉기는 많은 사상자들을 내면서 곧 진압되었다. 그 뒤로 시리아 쿠르드족은 아사드 독재정권의 강력한 정치적 탄압 아래 독립은커녕 자치권을 늘려달라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2011년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쿠르드족에게 다시 기회가 다가왔다. 곳곳에서 일어난 유혈사태로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의 통제력이 예전에 견주어 훨씬 떨어졌다. 쿠르드족은 이 전쟁을 기회로 삼아 시리아 정부로부터 독립을 하거나, 독립국가를 못 이루더라도 적어도 쿠르드족의 자치권을 늘릴 기회가 주어졌다고 판단했다. 무장조직인 인민수호부대(YPG)를 꾸려 적극적으로 자치 활동을 벌였고, 2014년에 '로자바'라는 이름의 쿠르드족 자치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는 "협상을 통해 쿠르드족에게 자치정부를 허락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전쟁으로 다마스쿠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나온 얘기라서, 쿠르드 사람들은 100%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막상 전쟁이 아사드의 승리로 매듭지어진다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 쿠르드족 병사에게 포로로 붙잡힌 이슬람국가(IS) 조직원 ©Ahmad Shamlo Fard


'평화의 샘'이 아닌 전쟁, 살육 

터키 정부는 시리아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오랫 동안 터키 동부지역에서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문제로 유혈충돌을 빚어왔었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고 시리아 정부의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쿠르드족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극단적 이슬람 무장세력인 IS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면서 세력을 키우자,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터키 정부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웃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터키 안의 쿠르드 족과 손을 잡고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상황은 터키로선 악몽과 같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결국 2018년 1월 터키군은 쿠르드 테러분자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리아 국경을 넘어섰다. 군사 작전에 붙인 이름은 '올리브 가지' 작전.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운 터키군은 '올리브 가지' 작전을 편지 2개월 만에 시리아 북서부 요충지인 아프린마저 차지했다. 시리아 안의 쿠르드족은 터키군에 쫓겨 시리아 북동부로 밀려났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19년 가을, 터키군은 '평화의 샘'이란 이름의 작전을 펴고 있다. 작전명에 평화와 샘을 담았지만 쿠르드족에게는 전쟁이고 살육이다.  

트럼프에 토사구팽  

시리아 쿠르드족은 바로 얼마전까지 IS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손을 맞잡았던 미국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사실상 고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족이 IS 세력과의 전투에 앞장 선 것은 고맙지만, 터키가 쿠르드족 공격에 나서는 것을 무리하게 막고 나설 수도 없다.

터키는 미국에게 나토(NATO)의 중요한 동맹국이자 돈벌이가 되는 큰 시장이다. 트럼프가 터키를 겨냥한 경제 제재를 말하지만 립 서비스 수준의 겉치레로 그칠 것이다. IS 격퇴전이 끝나자 쿠르드족은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자 주인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내몰린 모습이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속고, 지역 패권국인 터키에 채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릴 이용만 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IS와 격전을 치르면서도 그 '피의 대가'로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정부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도 쿠르드족이 장기적으로는 정권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기기에, 지역 패권국인 터키군이 시리아 영토를 침범해 들어와서 쿠르드를 공격하지만 이를 못 본 체 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그렇다면 우린 미국에게 이용만 당한 거냐?"라며 울분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구상의 약소민족이 역사상 되풀이해서 느꼈을 설움을 곱씹을 뿐이다. 미국은 IS 섬멸 과정에선 쿠르드 무장세력을 이용하고, IS 세력이 쇠퇴한 지금 상황에선 그들을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잘 알려졌듯이 모든 것을 이해타산의 돈으로 따지는 물신주의자다. 명분이나 신의는 제쳐두고 악착같이 실리를 챙겨온 트럼프에게 쿠르드 족의 시련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배신'이란 말이 나온다. 쿠르드족 위기를 통해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단면을 또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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