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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야 강하다, 생물도 언어도

2020. 03. 10
조회수 516 추천수 1
 
금세기 말까지 생물종에 대한 지식 담은 언어 절반 소멸 위기
 
b1.jpg» 대말에 의지하는 스리랑카의 전통 어법. 생물다양성은 언어다양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특히 개발국의 의약품, 식품산업계에서 그렇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산림이나 해양생태계를 포함해, 지구 생태계를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물다양성이 필수조건일 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막아낼 최후의 보루도 다양성이 풍부한 건강한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은 산업계가 주목하는 미지의 신약 원료, 미래 식량으로서의 잠재력과 같은 직접적으로 인류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다. 
 
19세기 말 독일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개발하였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놀라운 약’으로 불리는 아스피린은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아스피린이 개발된 것은 오래전부터 해열과 진통을 위해 버드나무 껍질을 약재로 사용해온 전통에서 착안한 과학자들이 버드나무 껍질에서 아세틸살리실산을 찾아낸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버드나무 껍질에서 유용한 성분을 찾아낸 것은 1%의 영감이 아니라 99%의 오래된 전통과 경험 덕분이다. 버드나무 껍질을 약재로 사용해온 전통은 기원전 1500년쯤 고대 이집트에서 작성된 파피루스에서 언급되고 기원전 400년쯤에는 히포크라테스가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최근까지도 많은 신개발 의약품의 대다수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생물에서 발견되면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스피린 개발에서 생물다양성만 이야기 하는 것은 반쪽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스피린 개발에는 버드나무 껍질이라는 생물자원과 이를 전통적으로 활용해온 인류의 문화자원이라는 두 가지 자원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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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생태인류학자), 수전 로메인(언어학자) 지음 김정화 옮김/ 2003 이제이북스​
 
 
문화적 다양성의 지표는 언어의 다양성이다. 언어는 인간사회의 사고체계와 세계관에 관한 지식과 이해의 단위로 ’문화의 디엔에이(DNA)’라 불린다. 언어는 자연환경과 그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 이유도 언어가 단순한 의사전달 체계가 아니라 한 문화가 외부환경과 맺어 온 문화의 정수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b2.jpg» 한 이누이트 여성이 아기를 담을 수 있는 전통의상 ‘아만티’를 입고 유모차를 끌고 있다. 안스가르 워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북극 지역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은 극도로 추운 최악의 기후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이누이트인들은 어떤 종류의 얼음과 눈이 사람, 개 또는 카약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이러한 얼음과 눈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서는 가을에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나무 이름을 붙인다. 더욱이 이러한 이름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소리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최근에 와서 나무의 이름 변화가 그 지역의 산성비 영향을 과학적으로 기록한 역사였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위 책 37쪽) 이렇게 그 지역의 생태계와 맺어 온 지역민의 문화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는 온전히 대체할 수가 없다. 이것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언어의 다양성이 반드시 함께 보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은 생물학적으로 생산성이 높으면서도 외래종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특성이 있다. 또한 생산성이 높아 지역 내 여러 소규모 부족의 자립이 가능하고 외부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이 지역에서는 언어의 다양성도 높다. 따라서 세계적인 혹은 한 지역의 언어의 소멸은 생태계 붕괴의 한 현상이기도 하고 생태계 붕괴의 한 지표이기도 하다.
 
b3.jpg»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높은 ‘핫 스폿’이 위치한 곳(A)은 언어가 다양한 곳(B)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고렌플로 외 (2012)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제공.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생물다양성협약으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은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주제이지만 언어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의 필수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무시되고 있다. 공통된 언어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오래된 ‘바벨탑의 신화’가 개발국 혹은 주로 영어로 교육받은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쓰는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분쟁, 언어적 종교적 획일성이 매우 높은 소말리아의 내전, 멀리 갈 것도 없는 남·북한의 갈등은 이러한 믿음이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도 정치적 안정을 위해 언어, 종교, 문화의 다양성을 포용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정체성과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21세기가 끝날 무렵엔 현존하는 생물종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언어도 21세기 동안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에는 6000∼7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알려졌지만, 세계 인구의 90%는 100개 남짓 언어를 사용할 뿐이다(표 참조). 수많은 언어 속에 존재하는 문화와 과학기술이 21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후변화로 생태계와 인간의 삶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데 우리는 이를 해결할 자연자원과 인류의 문화자원이라는 열쇠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생물다양성이 생태계의 안정을 위해 필수인 것처럼 인류라는 종과 문화의 안정을 위해서는 그 종을 구성하는 여러 인종과 문화, 언어의 다양성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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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한 개발국과 전문가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험에 놓인 생태계가 복원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생물다양성정책이 개발국이나 도회의 엘리트에 위해 주도되는 대부분의 경우, 외부인의 작물, 언어, 우선순위가 기반이 되는 일반적인 해법이 제시되는데, 이는 소멸 위험에 처한 대부분의 취약한 생태계에 적합하지 않다. 고립돼 진화해온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의 특성상, 주류 생물종의 침입이 생태계의 붕괴에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국과 외부 전문가에 의한 생물다양성정책은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취약한 생태계를 복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붕괴를 앞당기는 일까지 종종 일어난다. 이런 실패의 경험으로 소멸 위험에 놓인 지역의 생태계 복원에 지역민이 권한을 갖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방법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1957년 ‘토착 부족민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단순히 토착주민의 보호를 목표로 하였다면 1989년 목표를 토착문화와 주민보호로 변경하여 토착문화를 보호하지 않고는 토착주민도 생태계도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b5.jpg» 파나마의 한 열대우림에서 나오는 다양한 열매. 원주민은 저마다의 이름과 쓰임새를 문화로 간직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생물다양성정책이 단지 저개발국이나 저개발지역의 참여로만 실효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지역 엘리트, 전문가의 이해와 문화가 토착주민의 이해와 문화보다 오히려 개발국의 이해와 문화에 더 가까운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착민의 지역 생태계에 대한 지식체계를 생물다양성 정책의 계획단계부터 도입하고 지역주민이 주체적으로 관할하도록 하여야 한다. 다양성의 훼손이 생물, 국가, 지역, 계층을 망라한 권력의 쏠림이 원인이므로 결국 다양성은 국가간, 지역간, 계층간의 다양한 권력의 불균형을 개선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다양성이 중요한 것은 비단 생태계와 인류문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다양성이 지구적인 안정에, 언어다양성이 인류의 안정에 중요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안정과 생존에도 다양성은 필수적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면서 지역을 ‘작은 서울’, ‘짝퉁 서울’로 만드는 지역개발로는 한국의 정체성은 물론 경제마저 발전은 고사하고 유지되기도 힘들다.
 
b6.jpg» 2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아카데미는 지역영화제일 뿐”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 통쾌해 하면서, 서울을 중앙이라 부르는 관행에는 둔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 사는 전문가와 지역 엘리트에 의해 계획되고 주도되는 지역균형발전 계획이 지역민의 이해와 필요에 무지한 것은 당연하다. 서울에서 계획된 지역균형발전도 인구분산정책도 지역민의 이해가 아닌 지역으로 내려가는 서울 사람의 이해에 맞춰지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공용어다. 그러나 우리말을 훼손한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줄임말이나 유행어보다 오히려 표준어가 우리말의 안전성을 훼손한다는 의심은 지나친 비약일까? “언어의 살해자”로 불리는 영어가 현대에 와서 다른 언어들을 소멸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처럼 “교양있는 서울 사람의 말”이라는 표준어야말로 우리말의 안정성을 해치는 주범은 아닐까? 지역 사투리와 지역 고유의 문화가 급격하게 사라지는 이유가 지역의 언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 지역의 언어를 저급한 언어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 지 물어볼 때이다. 지역균형발전은 먼저 다양한 지역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명제는 생물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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