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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초 '코로나 선거'... 이대로면 또 세계표준

3개 키워드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총선... '방역 성적표' 어느 정도 반영될까

20.04.14 19:27l최종 업데이트 20.04.14 21:02l

 

21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했다.
▲ 21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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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터지기 전만 해도 정치권은 '정부심판' '야당심판' 등의 이슈를 제기하면서 각자에게 유리한 어젠더를 총선에 장착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역대 선거와는 달리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제조한 이슈는 바이러스 앞에서 맥없이 꺾였다. 대신 후보자와 유권자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했다. 객관적 심판의 거리가 유지됐지만, 속도는 여러모로 빨랐다.

선거를 앞두고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을 3개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키워드 ① 사회적 거리두기] 또 다른 세계 표준... 자가격리 투표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10일과 11일, 마스크를 쓴 채 1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투표 행렬이 많은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투표소 앞에서 손소독제로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비닐장갑을 끼었다. 기표소 앞에서도 투표 안내인들은 가급적 말을 삼갔고, 몸짓과 눈짓으로 1미터 거리 유지를 부탁했다.

35개 정당이 기재된 비례대표 투표용지도 48.1cm. '거리'로 표현할 만큼 길었다. 많은 선택지로 인해 잘못 찍었다며 투표용지를 다시 달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유권자들은 가급적 사람들이 밀집한 기표소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집에서 나올 때부터 마음 속으로 결정한 듯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질서'를 요구했고, 시간도 절약했다.

자가격리 수준으로 치러진 사전투표에 이어 15일은 최종 투표일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중인 유권자는 5만명에 달한다. 이 중 투표 의향을 밝힌 자가격리자들은 1시간 40분 동안 합법적으로 거리로 나올 수 있다. 단, 다음과 같은 지침을 지켜야 한다.

"지자체에서 자가격리자를 1:1 동행해 투표합니다. 이를 집행하기 어려운 지자체의 경우, 자가격리앱을 통해 이동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GIS(지리정보시스템) 상황판으로 관리합니다. 이동경로에서 벗어나면 이탈로 간주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앱이 깔리지 않은 분은 출발할 때 '출발한다'는 의사를 이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담당공무원에게 통보하고 집에서 나섭니다.

이때 추정 가능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도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탈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거꾸로 집에 돌아갈 때도 집에 도착할 추정 시간이 있는데 도착했다는 통보를 해야 합니다. 통보가 없으면 역시 이탈로 간주하고 신고를 합니다." (박종현 범정부대책지원본부 홍보관리팀장)


투표 의사를 밝힌 자가격리자는 발열·기침 등의 증상이 없으면 15일 오후 5시 20분부터 7시까지 외출할 수 있다. 4.15 총선 출구조사는 자가격리자들의 투표 시간을 감안해 투표마감 15분 후인 오후 6시 15분에 방송 3사를 통해 공표된다.

한편, 프랑스와 영국은 지방선거를 연기했고 폴란드는 대선을 우편투표로 진행한다. 미국의 15개 이상의 주에서는 대선 경선이 연기됐다. 이 때문에 세계가 한국 총선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일정정도 성공해온 가장 큰 중요한 키워드는 '봉쇄'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2020년 4월 15일 우리는 방역선거라는 또 다른 실험을 벌인다.

코로나19 검진키트에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선거'의 세계 표준을 만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게시한 투표인증샷 유의사항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게시한 투표인증샷 유의사항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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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② 조용하다] "제발 좀 쓸데없는 소리 말라"

4월 14일 0시 기준 국내 확진환자는 하루동안 27명이 늘었다. 최근 10여일 동안 이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31일 0시부터 4월 14일 0시까지 2주간 신고된 778명의 확진환자 중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는 3.6%인 28명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인원이 5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 100명당 1명꼴로 음성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14일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숫자가 계속 줄어들며 증가폭이 완연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감소세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략) 내일은 총선으로 인한 휴일이고 날씨가 완연한 봄날이 계속되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더욱 약화되지 않을지 방역당국으로서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방역당국이 계속 경고음을 날리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환자도 모르는 사이 무증상, 경증에서도 전염되기에 조용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이번 선거도 바이러스의 특성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선거 때마다 여론을 들썩이게 했던 '뜨거운 한 방'이 없었다. 미래통합당은 한 때 '텔레그램 n번방' 관련한 폭로가 있을 것이라고 군불을 지폈지만, 불발됐다. 지난 11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황교안 대표를 만나 "당 지도부에 '제발 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 달라'고 지시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에 차명진 전 미래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막말도 터졌다. 과거 선거 때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선거막판까지 여야간 격렬한 공방이 오갔을 법한 이슈다. 하지만 더 큰 공방으로 확전되지는 않았다. '조국 대전'을 치르려 했던 미래통합당의 의지도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서 시끌벅적한 후보자 선전전을 볼 수 없었고, 바이러스의 침투 때문에 인증샷을 찍기도 부담스러운 선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정치권의 작은 공방도 모바일을 통해 빠르게 전파될 개연성이 많은 선거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온라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혔고, 여론 전파 속도를 높였다.

[키워드 ③ 코로나19 성적표] 바이러스가 마술처럼 짜놓은 선거 프레임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원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원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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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코로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당초 미래통합당 등 야당은 '문재인 정권 심판' 프레임을 짜려 했지만, 방역당국과 국민들이 일군 코로나19 대응 성과를 정권이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 프레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령 부산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진갑 국회의원 후보는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사태를 악용하고 있다"면서 "국민들과 의료진이 대처를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자신들이)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그 공을 가로채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후보들도 비슷한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방역당국이 움켜쥔 코로나19 방역 성적표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총선 하루 전인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거가 다가오자, 의심증상이 있어도 X-레이로 폐렴이 확인돼야 코로나 검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총선까지는 확진자 수를 줄이겠다는 건데 선거 끝나면 확진자 폭증할 거라고 전국에서 의사들의 편지가 쇄도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중앙일보>가 보도한 "총선 다가오자 마술처럼 급감…" 기사의 의혹을 다시 재점화하려는 발언이다. (관련기사 : 총선 앞둔 '중앙'의 3가지 의혹 제기... 방역당국 "강한 유감")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이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런 보도가 나간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강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면서 "검사대상 환자의 예시로 원인미상 폐렴 등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며, 의사의 의심에 따라 진단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음을 누차 설명드린 바 있다"고 밝혔지만,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또 다시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또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대거 국회에 들어온 소위 '탄돌이'들이 지금도 이 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며 "이번에 코로나를 틈타서 청와대 돌격대 '코돌이'들이 대거 당선되면, 국회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 나라는 진짜 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내다본다며 기고만장하고 있다"면서 "나라를 망쳤는데도 180석이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이라고 호소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180석 논란'을 부추기며 문재인 정권의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미래 권력에 대한 우려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다. 

미래통합당은 이처럼 총선에서 코로나19와의 거리 두기를 호소하고 있지만, 표의 향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여당은 사사건건 국정에 발목 잡은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조용하고 빠르게 총선 프레임을 마술처럼 짜놓았다. 야당은 이 프레임을 깨려고 하고 있고, 여당은 지키려 하고 있다. 누가 덕을 볼 수 있을지는 곧 알 수 있다. 그 결과와 상관없이 코로나19에도 추가 확진자를 억제하면서 사전투표에서 보여줬던 역대 최고 투표율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성적표를 거머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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