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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 쿠데타', 이건 민주주의 문제다

[게릴라칼럼] 불법 선거 개입과 NLL 발언 부풀리기, 박 대통령 진상규명 나서야

13.06.25 09:49l최종 업데이트 13.06.25 10:46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마무리한 뒤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했으나, 이들을 구속 수사하지도 않았으며 사건에 연루된 다른 국정원 직원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폭로한 직원은 기소됐다.

선거법에 관한 한, 우리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답변을 문제 삼아 현직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 의결했던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원세훈 전 원장만 달랑 불구속으로 기소한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 또한 현실적으로 봤을 때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 국정원장 단독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고 믿기 어렵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당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이에 대해 축소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급기야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들판에 불붙듯 번져 나가고 종교단체들까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엄중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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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문화제'가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 파이낸스빌딩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책임져라' '민주주의 파괴 원세훈(전 국정원장) 구속'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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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둬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이번 사건은 국가의 힘 있는 주요 기관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 가한 정치테러이다. 집권 여당과 보수언론은 이번 사건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은 1)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여론조작에 의한 선거개입이 있었고, 2) 선거 전 의혹이 불거지자 경찰 차원에서 수사 축소와 증거인멸을 통한 사건은폐 시도가 있었으며, 3) 이를 바탕으로 경찰에서 선거 직전 허위사실을 유포하였고(이 과정에서 여당의 후보 캠프와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다), 4) 현직 법무장관이 검찰의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돼야만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일국의 정보기관과 사정기관들이 모두 합심해서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탱크 없는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둘째, 지난 대선은 원칙적으로 무효이다. 모두 기억하고 있듯이 지난 대선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연장선 속에서 치러졌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직접 영향을 주기 위해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선거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더해 자유선거의 원칙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유선거 원칙의 구체적 내용은 선거의 전 과정에 요구되는 선거권자의 의사형성의 자유와 의사실현의 자유를 말하고, 구체적으로는 투표의 자유, 입후보의 자유 나아가 선거운동의 자유를 뜻하는 것(☞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법령 정보)이다.

그러나 국가 정보기관이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은 심하게 왜곡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국정원이 이른바 '댓글 알바'를 한 이유가 바로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왜곡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를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경찰마저도 오히려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선거 직전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는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근거와 기회를 사법 당국에서 박탈한 것이므로 이 또한 선거의 기본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에 해당한다.예전의 군사독재가 총칼로 국민의 손발을 묶고 '체육관 선거'를 했었다면, 이번에는 국가기관들이 작당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장님 선거'를 주도한 셈이다.

민주당, 자기 몸 던져 싸워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선 과정의 문제점을 똑바로 인식하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국가기관에 의한 여론조작과 허위 수사결과 발표 속에서 진행된 선거가 어떻게 정상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오히려 야권에서 "지난 대선은 무효"라고 선언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전체에서는 아마도 그 결과가 불러 올 후폭풍을 우려하는 듯하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하느냐, 그리고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하느냐, 그런다고 우리가 정권을 잡을 수 있겠느냐, 하는 복잡한 정치셈법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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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가 2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정원 국기문란 사건 국정조사 실시 촉구대회에서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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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야권, 특히 민주당의 고민은 이번 국정원 사건이 오히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평소에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과 자격, 그리고 국민적 신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와 결의가 미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세간에 "10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보다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 한 명이 훨씬 더 낫다"는 얘기가 돌아다닐까. 자신의 깜냥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부딪혔을 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그 현실을 일단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나 전체 야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난 대선의 결정적 하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서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 및 관련자를 엄중하게 처벌한다면 설령 지난 대선에 결정적 하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박근혜의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24일 서한 답변형식으로 "국정원 댓글사건 왜 생겼는지 전혀 모른다"라고 밝혔다. 앞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뒤로는 법무장관이 직접적으로 검찰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의 양상이 계속 되풀이된다면 전 국민적인 저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검찰이 밝혀 낸 (몇몇 언론사들이 파헤친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지만) 공소사실만으로도 정권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임을 청와대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왜 이 현실을 두려워하는가?

국정원이 공개한 노무현 NLL 포기 발언의 진실은?

이번 국정원 사건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최근에 다시 불거진 노무현의 NLL 관련 발언이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정상회담 녹취록을 갑자기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공개했고 이를 통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국면전환을 노린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NLL 문제가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전혀 무관하게 터져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국정원에서 NLL 카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선거에 악용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폭로했다. 이는 새누리당 의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NLL 발언만 공개했어도 지난 선거에서 쉽게 이겼을 것이라며 원세훈이 "우리 편이 아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이었다.

우선 새누리당에서 녹취록을 공개한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외교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점 등은 따로 다뤄야 할 문제이다. 여기서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만 짚어 보려고 한다.

24일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 을 보면 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먼저, NLL의 국제법적·논리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팩트를 지적한 것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는 지난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NLL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보거나 (관련기사 : 여야 바뀌니 11년전과 상반된 주장…NLL 논쟁 "역시 소모적"), 당시의 <조선일보> 기사("[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 없어 논란 무의미" , 1996년7월17일자)를 보더라도 명확하다.

그리고 NLL이 헌법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현행 대한민국 헌법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NLL이 여기에 해당사항이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NLL은 안 건드리고 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NLL은 바꿔야 합니다"라는 말은 발췌록에도 나오듯이 "안보 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 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의 의미이지 이것을 "NLL 포기"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북의 군사력이 서해에서 무력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바꿔' 남북 모두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조치를 고민해 보자는 의미에서 "NLL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왜 'NLL 포기'로 해석돼야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노무현은 NLL이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발췌록이 공개되자 새누리당에서도 "NLL 포기" 대신 "NLL 무력화 무효화"라는 새로운 표현을 들고 나왔다.

"국제법적으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자"는 말과 "NLL을 포기한다"는 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약에 노무현이 정말로 NLL을 포기했다면, 예컨대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북한이 왜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2012년에 있었던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논평에서도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합의"라는 말은 나오지만 남한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거나 양보했다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NLL 논란은 북방한계선이 임의로 그어졌다는 사실과 서해 평화지대 구축 제안을 영토선 포기로 확대해석하면서 양산된 것이다. 누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확대해석을 내놓았을까? 박영선 의원에 따르면 이 또한 국정원의 공작이라는 제보가 있었다. 아직은 제보 수준이니까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명백히 밝혀져야 할 내용이지만, 우리 모두는 지난 대선 기간 내내 NLL 문제가 중요한 선거이슈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50대의 반란'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종북 빨갱이에게 나라를 넘길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특전사까지 나온 문재인 후보가 종북 빨갱이로 몰린 데에는 NLL 논란이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정원에서 만약 문재인 후보를 낙선시키기로 결심하고 여론조작에 임했다면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NLL 이슈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당시 관련 녹취록 공개 여부를 두고 검찰 등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즐겼다.

이것이 정말로 국가안보와 영토수호에 중요한 문제라면 재빨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매듭지었어야 할 일이었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해서 끌고 다닌 것은 오히려 북한에게 이로운 행위이다. 결국에는 자신들의 정략적인 이득이 목적이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그래서 국정원 내부 제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건 민주주의 문제다

검찰과 언론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내 정치 사안에 지속적으로 개입을 했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공작을 수시로 벌여왔다. 이 작업은 지난 대선을 전후해서 정점을 찍었다. 여론조작의 내용에는 4대강 사업에서부터 무상급식에 이르기까지 지난 MB 정부 시절의 온갖 첨예한 이슈들이 망라돼 있다. NLL 문제는 예외였다고 과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대통령 스스로가 지난 대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에 나서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24일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일을 (국정원이)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면서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연루가 되었는지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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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하라" 서울대생 시국 기자회견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개입 사태에 대해 20일 서울대총학생회 간부와 일반 학생들이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국가기관의 간섭없는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을 촉구하는 기지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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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일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헌정질서를 유린한 사건으로 엄중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모르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회피하는 태도는 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할 책무를 짊어진 대통령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다.

만약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공부만 하는 줄 알았던 21세기 대학가의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기말고사 기간에 거리로 나섰다. 기존 야권과 진보진영이 상대적으로 '몸 사리는'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그들의 말마따나 이건 정말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닌가.

20년 쯤 전에 내 또래는 후배들은 세상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자며 거리로 나섰다. 나는 지금 후배들의 모습이 대견하다기보다, 우리의 청춘을 바쳐 이만큼이라도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모습에, 또 다시 우리 후배들이 책을 잠시 덮어놓고 길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이 현실에 분노가 앞선다.

단죄되지 못한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된다.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하지 못하면 성공할 때까지 쿠데타 기도는 계속될 것이다. 총칼과 탱크를 앞세운 군사반란뿐만 아니라 정보기관과 사정당국이 총동원된 선거 쿠데타도 마찬가지이다. 전자의 경우를 한 번도 처단하지 못했던 우리 옆에는 전두환이라는 괴물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이 참담한 역사를 다시 반복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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