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터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중심에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권은비 총괄감독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0-07-24 10:04:32
수정 2020-07-24 10:04:3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남성은 공적인 자리에서 그 피해가 이야기되잖아요. 경력이 되기도 하고, 역사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여성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나요?” (국가보안법 피해자)

"국가보안법 철폐 없는 통일논의 기만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임수경 면회자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가 진행될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벽에 붙게 될 사진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없는 통일논의 기만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임수경 면회자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가 진행될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벽에 붙게 될 사진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용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다. 다른 민주화 운동이 그랬듯, 구속과 수배 등 고초를 겪은 남성 서사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피해자의 어머니, 아내, 누이, 딸로 호명된 이들은 ‘빨갱이’ 꼬리표가 붙은 삶을 견뎌내며, 당사자들을 대신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고애순, 권명희, 김은혜, 김정숙, 배지윤, 안소희, 양은영, 유가려, 유숙렬, 유해정, 정순녀. 피해 당사자거나 피해자 가족으로 위치한 11명의 여성이 용기를 내어 말하기에 나섰다. 1970년대 대학을 다녔던 70대부터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여성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30여 년을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며 일상을 살아낸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목소리는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통해 전달된다. 구술 기록을 오디오와 텍스트로 전환한 방식이다.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했다.

지난 23일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권은비 총괄 감독을 만나 전시회 준비과정을 들었다.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역사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없음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권 감독은 독일 베를린 유학 시절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체감했다고 했다. “베를린에 북한대사관이 있어서 북한 사람들이 살았어요. 독일 친구가 북한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제가 순간 망설였어요. 북한 사람을 만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백림사건으로 유명한 도시잖아요”

1967년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한자음 동백림) 유학생과 교민 등 194명이 북한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 활동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간첩으로 지목된 작곡가 윤이상 등이 고문을 받거나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당시 정부가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고 판단했다.

권 감독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영화 ‘유령을 기다리며’를 촬영했다. 베를린에서 북한 사람은 ‘유령’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실체는 알 수 없고 소문만 무성한, 왠지 모를 무서운 느낌까지. 국가보안법 때문에 북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담겼다. 이 영화는 2018년 제10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권 감독이 전시회 추진위에 합류하게 된 계기기도 하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권은비 총괄감독. 당시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들여다보는 걸 중심으로 전시회가 기획됐다. 피해자가 많은데 개인의 아픔으로만 정체돼 있다. 국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억압했는데, 그 피해는 개개인의 몫이었다.전시에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보다는, 당사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민주화운동 안에 여성들 목소리 담는 게 전시회의 과제였다. 감금됐던 사상의 자유, 억압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물었다. 국보법 폐지 운동을 주되게 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권은비 총괄감독. 당시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들여다보는 걸 중심으로 전시회가 기획됐다. 피해자가 많은데 개인의 아픔으로만 정체돼 있다. 국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억압했는데, 그 피해는 개개인의 몫이었다.전시에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보다는, 당사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민주화운동 안에 여성들 목소리 담는 게 전시회의 과제였다. 감금됐던 사상의 자유, 억압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물었다. 국보법 폐지 운동을 주되게 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여성들이 국보법 폐지 운동 이끌었다”

국가보안법 전시회에서 여성 서사가 중심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들을 살펴보는데, 1970~90년대 다른 민주화 운동과 달리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사진 속에 여성들이 자주 등장했어요. 민주화 운동이 남성 중심이었던 탓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 대부분은 남성이었죠. 이들이 감옥에 가면 실제 생계를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하는 건 여성이었어요”

피해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였다. “수배 생활을 하거나 구속돼 고문받은 사람만 피해자인 건 아니에요. 가족들 모두가 피해자였어요. ‘빨갱이 딱지’는 직접 피해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까지 파탄 냈어요. 여성들은 남은 가족과 본인의 삶을 일궈가며 국가보안법과도 싸웠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투철한 열사로서 투쟁만 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투쟁으로 만들었어요”

여성 서사의 힘은 국가보안법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온다. “구술에 참여한 분들 모두 평범한 여성이었어요. 교사, 작가 등 각자 꿈을 갖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국가보안법의 굴레에 씌어 아픔을 겪게 된 거죠. 국가보안법 문제는 최전선에서 사회운동을 한,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없음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없음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없음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2년이 지난 지금, 관련 사건도 불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시회가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2년 가까이 전시를 준비한 권 감독은 피해자들의 삶을 마주한 뒤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많이 울면서 작업했어요.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야 해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언제 이야기해도 생뚱맞지 않아요”

짙은 패배감을 지우는 작업도 필요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열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4대 입법의 맨 앞에 내걸었다. 당시 300여 명이 단식하는 등 폐지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결국 여당의 분열과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때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72년간 싸웠는데 아직도 폐지 안 됐다’라는 식으로요”

“그보단 ‘이렇게 오랫동안 싸우고 있다. 대단하지 않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은 1992년부터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목요집회를 개최하고 계세요. 세상은 관심이 없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시위. 전시회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원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시위. 전시회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원본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태원

여성들은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에 맞서 싸웠지만, 스스로 경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결합한 단체가 없어요. 민가협이나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이 전부죠. 이유를 생각해보니, 살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는 점도 있었어요. 법을 통한 국가폭력을 개인들이 감당하고 있었던 거죠”

여성들의 말하기는 힘든 과정이었다. “스스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간이었을 거에요. 구술 과정에서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 처음 한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가족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면서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말의 세계의 감금된 것들’이다. 정희진 여성학자가 저서에서 인용한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의 세계에서 내쫓기는 것도 비참하지만 그것에 감금당하는 건 더욱 비참한 일이다’라는 말에서 출발한 제목이다. 여기서 ‘말’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상징한다. 넓게는 ‘빨갱이, 간첩’과 같이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말들이다. 목표 문구는 ‘나의 말이 세계를 터트릴 것이다’. 이때 ‘말’은 용기 있는 나로부터 출발한 말이다.

“목표 문구를 고심해서 정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용기 내서 해 준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어요. 여성으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이야기를 힘들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화려한 예술 작품 대신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전시회는 크게 1부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과 2부 ‘국가보안법 연대기’로 구성됐다. 화려한 예술가의 작품보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공포의 5층 취조실에서 메인 주제인 1부가 시작된다. 국가보안법 사범들이 과거 고문받던 각 방에서 피해자들의 구술 기록을 읽거나 배우 목소리·영화감독 임순례·래퍼 슬릭 등이 기록을 낭독한 음성을 듣는 방식이다.

“전시의 전형적인 방식은 예술가를 섭외해서 그의 작품을 설치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전시에서 과감하게 다른 방식을 선택했죠. 구술에 참여한 여성들, 국가보안법 사건을 변론한 변호사들, 자신의 사건을 내놓은 당사자들, 폐지 운동을 한 활동가들 등. 현장에서 국가보안법을 경험한 사람들로만 참여자를 구성했어요. 작품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기보다 그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직접 들여다보는 전시에요”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민중의소리

관객들이 오랫동안 그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권 감독은 의도했다. “보통 전시장에 가면 작품을 30초는 볼까요? 민주인권기념관이 경찰 인권기념관으로 사용될 때, 사람들은 문밖에서 취조실을 쓱 둘러보고 갔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그곳에 앉아서 10분 20분 피해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됐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싸워가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에요”

피해자들의 서사를 들으며 취조실에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참여형 예술이 될 수 있다. “전시된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를 보는 사람들을 관찰자로서 보는 것도 중요해요. 가만히 앉아서 구술을 듣는 다른 관객들을 보며, 좁은 방에서 누군가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음을 연상할 수 있어요. 그 공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부는 4층에서 펼쳐진다. 72년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9개 사건을 세세하게 볼 수 있도록 준비된다. “민변에서 기증한 국가보안법 사건 변론 자료를 검토하면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어요. 그동안 우리는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 정도로 소비했는데, 사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슬프고 아팠어요”

공개될 사건 중 하나는 한국대학 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사건이다. 한총련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계승해 1993년 만들어진 단체로,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상 이적 단체로 확정됐다. 한총련에 가입된 전국 대학교 단과대 학생회장은 수배가 떨어져 많은 이들이 구속됐다.

“당시 이틀에 한 번꼴로 20대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이 잡혀갔어요. 수배 대상이 된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죠. 함께 전시를 준비한 조용신 진보 공동대표는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수배 대상이 됐는데, 암 선고받은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걱정하다 돌아가셨어요. 사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떤 사건이 더 중요하고 특별할 것 없이 다 마음 아파요”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1층으로 내려오면 ‘검은 방’이 나온다. 국가보안법 조항이 소리로 반복해서 재생된다. 관객들은 이를 들으며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를 필사할 수 있다. 이 시는 나 시인이 동독의 방첩기관 슈타지에서 사상검열을 받은 독일 시인의 글을 보고 쓴 시로, ‘자유를 빼앗기지 않겠다’라는 선언적 성격이 있다. 관객들의 쓰기는 일종의 저항 퍼포먼스인 셈이다.

옛 대공분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동그란 정원엔 12개의 문이 세워진다. 5층 취조실의 초록색 철문을 상징하는 이 문들엔 ‘법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습니까?’ 등의 질문이 쓰여있다. 피해자들을 감금시켰던 문을 열 수 있는 물음이다. 숫자 12는 시계처럼 반복되는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상징한다.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의 ‘국’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회를 강력추천한다고 말했다. “전시회 타겟은 2030 세대예요.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가 있었으며, 피해자들은 이런 삶을 살았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정치적 관심이 없다고 해도 ‘탈조선’처럼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본인이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잖아요. 이 세계를 감금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고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구술에 참여한 분들을 피해자로만 보고 안타까워하는 시선보다는 연대하고 응원하고 함께 힘내자고 전시를 본 관객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전시회는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코로나19로 관객 방문이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전시물을 설치하고 온라인 형태로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된다. 대공분실 특성상 장애인의 접근이 불편해 사전에 신청하면 별도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전시에 앞서 8월 3일까지 텀블벅이 진행 중이다. 펀딩에 참여하면 전시회 후원인으로 전시장 1층 한편에 기재될 예정이며, 11명의 여성 서사가 담긴 책 ‘여성 사사로 본 국가보안법’을 만나볼 수 있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