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2019년 한 해 동안 2020명이 사망하고 10만 9242명(고용노동부 통계)이 다쳤지만, 같은 기간 산업안전보건법 위한 혐의로 피소된 피의자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건 고작 2건이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통해 15년 치 재판 결과를 훑어본 결과도 궤를 함께 했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1심 형사 재판은 총 7946건 열렸다. 이 가운데 5482건(68.36%)이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1000건(12.58%)이 집행유예를, 251건(3.16%)이 선고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무죄도 465건(5.85%)으로 집계됐다. 징역형은 15년 동안 고작 42건(0.53%)뿐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만9881명(고용노동부 통계 합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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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재판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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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결말
산업재해 관련 주요 사건들의 판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1)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 경, 충남 당진시 KISCO 홀딩스 계열사인 환영철강 직원 김아무개씨가 쇠를 녹이는 작업 중 실수로 발을 헛딛고 섭씨 1600도의 쇳물이 흐르는 전기용광로에 빠져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 누리꾼 '제페토'는 댓글로 추모시를 남겼다.
그 쇳물 쓰지 마라.<br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br />그 쇳물은 쓰지 마라. <br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br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회사 측 관계자는 "쇳물이 있을 때 용광로 가장자리에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게 기본이다, 그 사람이 가서는 안 될 곳을 갔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며 '개인 과실'을 주장했다고 한다. 비난 여론에 밀린 회사는 유족에게 위로금과 장례비 등을 지급하며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2) 2012년 9월 27일, ㈜휴브글로벌 경북 구미공장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불산 탱크 위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에어밸브 손잡이를 열다가 실수로 사고를 당했다. 공장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인근 지역에도 가스가 퍼져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였다. 안전관리책임자는 현장 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관련, 대구지법은 2013년 9월 ㈜휴브글로벌 회사 대표 허아무개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3) 2017년 11월 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고교생 이민호군이 기계를 정비하던 중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사고 당일 이군은 혼자 일했으며 이군이 기계에 깔리고 몇 분이 흘렀음에도 동료 직원들은 사고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2020년 6월 열린 항소심에서 제주지방법원은 업체 대표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4) 2018년 10월 20일, 제주 삼다수 공장 직원 김아무개씨가 페트병 생산 기계를 수리하던 중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김씨가 기계 수리에 들어갈 당시 기계 운전을 자동으로 정지하는 장치가 해제돼 있었고, 해당 기계가 노후 돼 오류가 자주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제주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주개발공사 전 사업총괄 상임이사 구아무개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공장 간부 박아무개씨와 강아무개씨에게 각각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5)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이에 용역업체 은성 PSD 직원 김아무개씨가 끼어 사망했다. 김씨는 당시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2019년 11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에게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다. 2019년 8월, 은성 PSD 대표 이아무개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노동자들이 끼어 죽고, 용광로에 녹아 죽고, 깔려 죽었지만 책임자는 벌금을 냈을 뿐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다. (2019년 5월 14일 한겨레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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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이 원·하청 대표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대전지검 서산지청에서 벌이고 있다. |
ⓒ 신문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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