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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 불평등한 '소파' 개정이 먼저다

[박병일의 Flash Talk]

이에 국내 보수언론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을 불과 100여 일 앞둔 시점에 지지율이 저조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을 '재선용 지지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즉, '부자나라인 한국'을 지키는데 소요되는 많은 돈이 미국인의 지갑에서 지출되는 걸 두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미국 우선주의'를 재(再)점화시키는 복안으로써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이 같은 모습은 한국이 국방에 관한 한 미국에게 온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지난 3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방위비 5년 계약을 하되 전년 대비 2020년에 13%를 우선 인상하고, 2024년까지 연간 7∼8%씩 인상한 뒤, 5년째 마지막 해에 13억 달러(약 1조 5918억 원)를 부담한다는 우리로서는 최선의 안(案)을 미국 측에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마치 시혜하듯 50억 달러에서 깎아주겠다는 자세를 취하며 대신 "2020년부터 당장 13억 달러를 지출하라"고 강압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왜 우린 미국에 '주한미군 주둔 사용료'를 받지 못할까) 따라서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에게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이성적 태도를 함께 공유하고 한국 사회가 다 같이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미관계는 마치 갑을관계와 유사하다.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갑'인 미국이 감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철수하겠다고 떠나는 미군에게 더 있어 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어차피 천년만년 미군이 한반도 안보를 지속적으로 책임져줄 수 없기에 장기적으로 우리 안보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만 북한의 핵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는 감축 시기의 연기를 모색할 필요는 있다. 동시에 안타깝게도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갑을관계의 불균형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군 지상군 감축을 검토하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는 첫째, 유럽산 군사기술 도입의 가능성을 미국에게 암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부분 철수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 공백을 미국은 첨단화된 자국의 군사기술로 메우려고 할 것이다. 

실제 한국의 올해 국방 예산 규모는 건군 이래 최초로 50조 원을 돌파했고, 연구개발을 포함한 무기 구매 등 대부분 전력 증강에 투입할 방위력 개선 부문이 증가했다. 대형무기를 구매함에 있어서, 우리는 늘 미국산과 유럽산을 비교하는 듯하다가 결국 미국산을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패턴을 보여 왔고, 미 행정부는 앞으로도 한국은 미국산 무기를 구매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편 내년엔 1조 원 규모 이상을 투입하여 항공통제기 2대를 추가 확보하는 계획이 확정되었는바, 미국 보잉사와 스웨덴의 사브사 제품이 유력하게 경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병력 수가 아니라 군사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일부 시각에 대해 미군 감축이 한국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질 경우 그 '군사능력'이 자칫 유럽산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올해 하반기 실시될 항공통제기 구매제안서 평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감축 규모에 비례해서 우리가 제안하는 방위비 규모도 삭감하여 다시 제안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중국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억제력 약화와 중국에 의한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강화만 부추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비록 문재인 정부 들어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하기는 하지만, 주한미군이 감축된 후 각본상 다음 차례는 일본일 것이라는 사실을 아베 정부에게 인지시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일본의 반대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 일방적인 병력감축에 대한 고려가 한미 간 기울어진 관계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점에 비춰 불공평한 소파협정의 개정을 한미 양국의 새로운 현안으로 올려야 한다. 한미 군사동맹이 성문화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한반도에 미군을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해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했다. 즉,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1967년 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을 만들어 한국 정부가 각종 편리를 주한미군에게 제공하는 사항을 규정한 한미 간의 협정이다.(☞ 관련 기사 : 지금, SOFA 개정을 말하는 이유)


 

하지만 언급한 소파협정으로 인해 한국 국민들은 그간 미군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를 목도해야 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여중생에 대한 미군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피해자가 반항하려고 하면 라이터로 가슴을 지졌으며, 여러 차례 반복된 성폭행으로도 모자라 무려 4시간 동안 볼펜으로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일삼았다고 한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보수언론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5일 만에 미군에 신병을 요청하였으며, 사건 발생 12일 만에 피의자를 구속했다며 이전 사례에 비춰 굉장히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해자가 범행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2주가 다 되어서나 구속 수사한 것이 진정 '신속'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렇듯 미군 범죄자에 대해 신속하게 신병 처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정하게 균형 잡히지 않은 협정에 기인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불평등한지 함께 살펴보자. 첫째, 미국과 주둔군 협정을 맺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군의 공무수행 중 발생한 범죄에 대해 미군 측이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공무수행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정기간 공무수행 여부에 대해 미군 측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독일은 양 정부 간 검토를 규정하고 있고, 미·일 소파에 의하면 일본 역시 이 경우 일본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도록 명시되어 있는 반면, 한국은 자동으로 미군 측에 재판권을 넘기도록 합의되어있다. 둘째, 대한민국이 1차 재판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미군 측이 요구하면 예외적인 중요 사건을 제외하고 재판권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셋째, 범죄자 인도시기와 관련해서도, 살인, 강간 등 12가지 강력범죄를 제외하고는 기소 시점에서 미군의 신병을 인도받을 수 없다. 넷째, 협정 적용 범위에 있어서 우리의 경우 미군의 직계가족 외에도 기타 친척이나 초청계약자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협정을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다섯째, 미국 관리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여섯째, 환경조항과 관련하여, '한국의 관계 법령을 존중한다'고 되어있을 뿐, 강제력은 전혀 없다. 미군이 정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염된 땅을 그냥 우리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이유이다.(<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건설>(박병일 지음, 서울경제경영 펴냄) 인용)


 

앞서 언급했듯이, 주한미군 감축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된 이후에나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으로 인해 발생할 동북아의 안보 공백을 일본 자위대 군사력 증대로 메우겠다는 복안을 미국이 갖고 있다면 이 역시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미일뿐만 아니라, 한미 간의 관계도 끈끈한 동맹관계라고 한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미군 감축안을 백악관에 보고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음에도, 정작 그러한 보도에 대해 동맹의 한 축인 한국 정부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국의 관계가 동맹인지 주종인지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만약 추후 한국 정부와 전혀 사전논의나 교감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선언한다면, 이는 양국이 최소한 대등한 동맹관계가 아님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꼴이 될 것이기에, 한국이 최소한 미국에 대한 종속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대외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군사기술 도입에 있어서의 다변화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다행히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국방수권법이 현지시각 7월 24일 미국 하원에 이어 상원도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다만 주한미군 감축을 위한 예외 조항이 있어 미 행정부의 지상군 일부 철수 강행 여부는 두고 봐야 하고, 따라서 감축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어차피 우리의 가야 할 길은 자주국방에 있음을 앞으로 우리는 항상 유념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61930131760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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