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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국선언 철저히 외면했던 언론들…

 
<뉴스데스크> 낯뜨거운 ‘박비어천가’
 
 
 
耽讀 | 등록:2013-07-01 15:04:50 | 최종:2013-07-01 15:38: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도난당해 여기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타인이 빼앗아 가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의 물건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도난당했습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도난사건입니다.

지난달 29일 충남 금산 간디학교와 인천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일부입니다.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 서정한(19) 부회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참말로 언론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실감했다"면서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 MBC<뉴스데스크>는 중국을 국빈방문 중이 박근혜 대통령 일정을 보도했습니다. <朴대통령, 칭화대서 중국어 연설…"새로운 20년 열자">기사와 <中언론, 특별방송 편성…朴대통령 인간적 면모 소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朴대통령 '패션 외교' 화제…색·디자인에 담긴 의미들> 기사는 낯뜨거서워 볼 수 없는 '박비어천가'였습니다.

▲ 지난 달 29일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뉴스데스크

흰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의 박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리며 중국에 첫 인사를 건넵니다. 흰색은 백의민족인 우리를, 옷깃과 단추 여밈 등의 디자인은 중국 인민복과 비슷해 양국의 조화와 협력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공식 자리에서는 노란색이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공식환영식에 이은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의 재킷은 황제와 권위를 상징하는 노란색이었고, 중국 관례로 공개되지 않았던 국빈만찬 때 한복도 황금빛 노란색이었습니다.

방중 기간 한중 경제인들을 만날 때는 부와 기쁨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펑리위안 여사를 만났을 때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분홍색, 그리고 오늘 칭화대 연설에서는 역시 중국 황실의 존귀함을 상징하는 보라색 재킷이 준비됐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방문 첫날인 27일에도 <"오랜친구가 왔다" 中 드문 찬사…朴대통령 팬클럽까지>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시안 방문을 앞두고 현지에선 인공 비를 뿌려서 깨끗한 공기를 선사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환영 분위기가 높다"면서 "중국 매체들은 박 대통령을 '중국을 사로잡을 준비가 돼 있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자국의 언어는 물론 문화를 이해하려는 한국 대통령에게 중국인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27일 <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 시안을 방문하면 "인공비 뿌려 맑은 공기 선물하자"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안 방문때 실제 인공비를 뿌렸다는 보도는 없다. ⓒ 뉴스데스크

하지만 시안 방문 때 박 대통령을 위해 인공비를 내렸다는 보도는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中, 박대통령 극진한 국빈예우…상무 부부장 '공항영접'> 기사에서 "공군 1호기에서 내려오는 박근혜 대통령을 중국 장예쑤이 외교부 상무 부부장이 맞이했다"면서 "부부장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장관급 인사가 이례적으로 영접해 의전의 격을 높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격이 높아진 것인 사실이지만 지난 2004년 4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영접한 인사는 중국 공산당 서열 6위인 황쥐 부총리(정치국 상무위원)였습니다. -2004.05.03 <주간경향> "1급 비상령" 조기 가동 참고

이뿐 아닙니다. 지난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공항에서 그를 영접하는 사람은 바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었습니다. 당서 서열이 6위였습니다. 우리 언론들도 이를 이례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권력서열 6위이자 차기 지도자가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중국이 미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009.11.17 <노컷뉴스> "오바마, 베이징 도착…시진핑 국가부주석 직접 영접

한 마디로 박 대통령을 영접한 중국측 '격'은 이례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외방문을 했을 때 집중 보도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외교 사안입니다. 상대국 정상과 회담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었고, 얻지 못했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 이번 중국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북핵'문제입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북핵 비핵화를 위해 얼마나 중국을 설득했는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 없이, 대통령이 입은 옷 색깔과 인공비를 내린다거나, 다른 나라 정상들은 부총리와 부주석이 영접을 한 경우도 있는 데 박 대통령은 장관급이 영접했다고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보도에 충실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29일 고등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넘어갈 수 없는 기사입니다. 하지만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얼마나 분노했으면 시국성명을 발표했겠습니까? "언론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고등학생 분노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은 충남 금산 간디학교와 인천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전문입니다.

 

시국선언문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도난당해 여기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타인이 빼앗아 가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의 물건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도난당했습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도난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 꽃입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이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교과서에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과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더 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국가의 주인이자 주체로서 우리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쉽게 모인 것은 아닙니다. 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행하는 일인 만큼 가벼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학생총회 등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직접 참여를 하지 않는 학생들과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려가 된다는 친구들의 말에 이번 선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움직여야할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될 국가기관이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와 다른 대선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마구잡이로 동원되었습니다. 국정원 정치개입의혹이 대선 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후보 측에서는 오리발만 내밀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의혹이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왜곡하여 이슈화시키며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수사에 착수했고 경찰은 신속한 수사라는 명분하에 수사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는 일, 더욱이 의도적으로 국민의 시야를 흐려 그 일을 은폐하려 드는 일은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를 비롯한 집권 여당은 그런 만행을 버젓이 저질러 왔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을 완벽히 무시하는 행위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입니다.

예로부터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아픔을 치료하고 보듬어주는 의사여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핑계로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알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연행하는 행위가 과연 국가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국선언 준비를 하는 도중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시위 중 최루액에 맞았다는 내옹의 기사였습니다. 순간 4·19 혁명의 불씨가 된 김주열 열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1960년대 수준으로 퇴보하려는 것일까요?

대학생, 교수, 퇴직 경찰, 시민 단체 등이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여당은 국회에서 그제야 국정조사 실시를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여태껏 공공연히 행해져 왔던 국정원 정치 개입을 이제는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요구합니다.

- 국정원 사건 관련자들을 지연, 학연, 기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대통령 차원의 예방책을 마련하고 국정원을 개혁할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민주주의입니다. 국가와 국민은 민주주의라는 꽃을 함께 키우고 피워 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 권력이 민주주의라는 꽃을 짓밟아 시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론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의 등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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