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터뷰] ‘그 쇳물 쓰지 마라’ 작곡가 하림이 늦은 밤 구의역으로 향한 까닭

프로젝트퀘스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챌린지 작곡가 하림

허지영 기자 hjy@vop.co.kr
발행 2020-09-19 11:37:18
수정 2020-09-19 11:37:18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몇천 명도 안 될 수 있지만, 음악이 이렇게 순식간에 마음의 결을 정돈하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번 챌린지는 시작일 뿐입니다. 프로젝트의 상륙 작전 같은거죠.”

펀딩 플랫폼 프로젝트퀘스천의 캠페인 음원 ‘그 쇳물 쓰지 마라’ MR(반주만 녹음된 음원)을 작곡한 하림은 “어떤 히트곡보다 이 노래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20대 청년 노동자가 발을 헛디뎌 쇳물에 빠져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는 이 사고의 10주기로, 프로젝트퀘스천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가수 하림이 MR을 작곡했으며, 노랫말은 ‘댓글 시인’ 제페토가 당시 사고 기사에 남긴 추모시에서 따왔다.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앞에 세워주게/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당시 짧은 기사 몇 줄로 잊혀질 뻔한 이 사고는 이 한 편의 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어 분노와 울분의 결을 가다듬었으며, 10년 뒤인 지금 노래가 되어 다시 시민 곁을 찾았다.

프로젝트퀘스천 '그 쇳물 쓰지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
프로젝트퀘스천 '그 쇳물 쓰지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제공 = 프로젝트퀘스천

사고 발생 10주기지만 산재 여전해...
“‘함께 부르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길 바랐죠”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해마다 2천 명 이상, 하루에 세 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일부 위험 노동 현장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절실한 외침일 뿐,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쉽게 공명하지 않는다.

하림은 이처럼 안타까운 사회 문제에 무심하고 차갑거나, 또는 빈약하게 흩어진 마음을 ‘함께 부르기’로 모아보고자 했다. 본래 음원으로 발표되고 끝일 이 프로젝트는 하림이 ‘같이 부르기’ 형식을 제안하며 생명력을 얻었다. 기사 한 줄은 그냥 넘겨도 ‘그 쇳물 쓰지 마라’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직접 가창을 권하며, 마음의 결을 함께 하자고 그는 제안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일을 오래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근본적으로 음악이 해 온 일이기도 하잖아요. 요새 챌린지는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변형된 지 오래지만, 제가 어떻게든 진정성을 가지고 해보자고 제안했죠.”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를 시작으로 젊은 인디 아티스트와 연주가, 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SNS에 속속 챌린지 영상을 올리고 있다. 최근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챌린지에 참가했으며, 하림의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던 도중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곡은 남녀노소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작곡했다고 하림은 밝혔다. 튀는 음은 없는지, 걸리는 발음은 없는지 곡을 다듬는 데 천 번 이상을 불러봤다고 한다. 잔잔한 기타 리프, 중저음의 목소리가 기교 없이 담백하게 노랫말을 읽어낸다. 일반 대중가요처럼 화려하게 고조되는 운율은 없지만, 노랫말 자체에 담긴 오래된 슬픔이 가창자를 울게 한다.

“이게 노래를 부르는 거랑 그냥 듣는거랑은 좀 다르거든요. 부르는 사람마다 곡의 분위기가 확확 바뀌어서 좋더라고요. 김용균 씨 어머님은 따로 뵙진 못했는데, 어머니도 불렀을 때 마음의 위로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다가 우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이 노래는 잘 하면 피해자들에게 닿을 수도 있겠다’라는 막연한 희망도 생겼어요.”

챌린지에 참여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윤도현이나 이승환 선배”라며 웃으면서도 “그 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큰 악플과 반대 세력에 부딪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하림도 SNS 다이렉트 메시지(DM)으로 종종 악플 세례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악플러에게도 “노래를 들어 보라”라고 차분히 응수하며 챌린지를 독려하고 있다.

“이걸 왜 물어 뜯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선배 가수 분들이 불러준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보다 중요한 건 많은 시민 분들이 참여해주시는 거예요. 노래를 잘 하는 아이를 둔 부모님이 아이를 촬영해서 보내주실 수도 있고… 좋은 노동 교육이 되지 않을까요?”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또 다른 산재 발생한 구의역에서 마음 다잡아
“저 역시 평생 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작곡이 끝나갈 무렵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스크린 도어 끼임 산재사고로 숨진 김 군의 사고 장소인 구의역에 다녀왔다. 늦은 밤 도착한 그는 사고 당시의 스크린 도어를 눈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노래를 만들고 듣는 과정에서 현장에 가보는 건 제 버릇이에요. 그 때도 코로나19 때니까 쓸쓸하고 우울하더라고요. 화내고 힘들어하고, 비틀거리고 움츠린 사람들을 보며 세상 참 살기 힘들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 현장을 보며 ‘그래, 힘들 땐 음악만 한게 없지’ 이런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더욱 마음을 다잡게 됐죠.”

앞서 하림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진료소에서 음악회를 여는 ‘국경 없는 음악회’ 활동을 3년 여간 해왔다. 외국인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다치고, 합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는 일을 매달 봐왔기에 이런 종류의 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로젝트퀘스천 측에서 여러 아티스트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다들 소극적인 반응이었나봐요. 아무래도 정치적 이슈로 포장될 확률이 높아서 그랬겠죠.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정치적 이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우리의 일이죠. 저 역시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고, 제 일터에서 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한 사회 문제가 반복되는 건 사회가 그 문제를 외면하는 데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특정 사고로 사람들이 응집하고, 응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 목소리는 그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일말의 장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산재 사고는 이 과정이 좀처럼 진척되지 못한다. 일부 위험 현장 종사자에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해서일까. 또는 너무 많이 죽어서일까.

“산재는 주변의 일이에요. 패스트푸드 점에서 감자튀김을 튀기다가도 다칠 수 있는건데, 사람들은 대부분 산재 사고를 보고 들어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금방 잊어버려요.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는 지난 10일에도 충남 당진에서 60대 노동자 분이 돌아가셨는데, 보도가 잘 안 되더라고요. 결론이 안 나서 그런건지 돌아가신 분이 나이드신 분이라 그런건지, 당한 사고가 우리가 그동안 봐온 사고보다 덜 끔찍해 그러는지… 사실 그런 건 없거든요.”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함께 부르기는 시작일 뿐, 음악가로서 최선 다하고 싶어요”
지치고 힘든 싸움에 기꺼이 음악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하림의 소신

하림은 고 김용균 씨의 사고를 비롯해 산재사고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왜곡된 고용 구조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고에 있어 책임자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작업자의 과실로 끝맺음하게 만드는 과도한 외주화는 결국 돈 문제라고 꼬집으며, 기업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뜻을 밝혔다.

“이 모든 건 사실 돈 문제라고밖에 생각이 안되는데, 그러려면 입법화를 시켜서 돈을 쓰지 않으면 벌을 준다고 해야죠. 그렇게 되려면 입법을 추진하는 사회 분위기에 힘이 실어져야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환기시키고 응집시키는 역할을 제가 음악으로서 보태는 거고요.”

또 되풀이되는 산재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흩어진 슬픔을 하나의 결로 정리해 큰 움직임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 몇 줄보다 ‘댓글 시인’의 시 한 편이 모두를 움직였던 것처럼, 하림 역시 음악가로서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부분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도 청년 가방 속 인스턴트 라면, 결혼해서 잘 살고 싶은 청년의 마음, 집에 식솔이 있는 가장 등의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여유가 없고, 약간의 분노를 품고 사는 시대니까요. 저는 이 분노를 음악이 꺼 줄 수 있다고 믿는거죠. 이 곡이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입니다.”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챌린지 이후의 계획을 묻자 하림은 단호하게 “함께 부르기는 사람들이 곧 흥미를 잃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거듭 챌린지를 ‘시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히 일회성으로 주목을 끄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가 열심히 SNS를 퍼다 나르고 댓글도 달고 관리하고 있지만, 함께 부르기도 오래 가긴 힘들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찾아 가야죠. 노동 현장으로 가서 노래 교육도 해드리고, 영상으로 촬영해서 또 이 이야기를 환기 시키고, 지치고 힘든 싸움일 거예요. 그러다 어느날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샴페인 한 병 따면서 또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죠. 이번 챌린지는 시작일 뿐이에요.”

해당 챌린지에 참여하는 방법과 음원 파일, 악보는 프로젝트퀘스천 공식 홈페이지(https://projectquestion.com)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지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