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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04 09:53
  • 수정일
    2013/07/04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의 특별교화소는 어떤 곳?
 
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04 [07: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과 중국에서 1,500명의 조직원을 두고 간첩행위를 한 사건으로 15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씨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소개 됐다.

재일동포 신문인 조선신보는 특파원 기자의 기획 취재를 통해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시작한 미국공민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 1968년 8월 1일생)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하루일과와 대담까지 싣는 등 이례적 보도가 주목된다.

조선신보는 “《특별교화소》 교화인의 일과대로 배준호는 아침 6시에 기상하고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로동하고 있다. 그사이에 점심시간과 2번의 휴식시간이 있으며 하루 8시간로동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과를 보면 6시~7시 세면 및 청소, 7시~8시 아침식사, 8시~10시 로동, 10시~10시 30분 휴식, 10시 30분~12시 30분 로동, 12시 30분~13시 30분 점심식사, 13시 30분~15시 30분 로동, 15시 30분~16시 휴식, 16시~18시 로동, 18시~19시 휴식, 19시~20시 저녁식사, 20시~22시 문화시간, 22시 취침 일요일과 명절은 휴식일로 정해져 있다.”는 구체적 일과 계획표도 공개했다.

▲ 배준호씨가 보안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사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
이 신문은 “지난해 11월 3일 라선시를 통해 입국하였던 배준호는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한 것으로 하여 해당기관에 억류되고 수개월간의 예심 끝에 재판에 회부 되였으며 올해 4월 30일 최고재판소에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았다.”며 “지난 시기 조선의 법을 위반하여 억류된 미국공민들은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평양에 와서 사죄, 재발방지약속을 한데 따라 조선측은 인도주의적견지에서 관용을 베풀어 놓아주었으나 이번에 미국공민이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하는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이날 본인의 동의밑에 이루어진 본사기자와의 면담에서 배준호는 자신의 죄행은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이지만 조선정부가 선처해주고 미국정부가 노력해주어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고 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기를 부탁 드린다“는 말을 보도해 배준호씨가 미국으로 돌아 걸 것을 희망하며 미국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또한 배준호씨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였다.》고 하면서 《건강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내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고 알렸다.

이어 ‘외국인범죄자수용시설’ 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초병이 지켜서있는 《특별교화소》 출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어 커다란 중압감이 느껴졌다”며 “교화소 관계자에 의하면 《특별교화소》는 일반 범죄자가 아니라 반국가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관계자의 안내로 배준호가 생활하고 있는 건물로 향하는 길에 잠시후 길옆의 콩밭에서 허리 굽혀 김매기를 하는 중년남자가 보였다. 밭 둘레에는 여러명의 보안원들이 서서 그를 날카롭게 감시하고 있었다.”며 “관계자는 그가 배준호라고 알려주었다. 배준호는 푸른색 교화복을 입고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왼쪽가슴에는 《103》이라는 번호가 달려있었다.”고 배준호씨의 교화소 노동모습을 소개했다.

조선신보는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특별교화소》에서의 기본노동은 농사일”이라는 말과 함께 “배준호는 5월 14일의 입소 이래 콩 씨를 뿌리고 지금은 두엄(거름)내기와 감자, 강냉이, 콩 등의 밭의 김매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업은 소농기구를 가지고 하는 손노동이다. 농사일을 처음 해본다고 하는 배준호는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는 배준호씨의 발언도 실었다.

이신문은 배준호씨가 노동하는 동안 그가 갇혀있는 감방 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약 12㎡(약 3평)의 감방에는 침대, 책상, 텔레비젼 등이 구비되고 변소와 세면장이 있으며 창문에는 쇠살창이 설치되어있다.”고 개인의 교화시설의 규모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감방 안에는 《교화인의 생활준칙》이 게시되어 있었다.”며 “《교화인의 생활준칙》에는 교화인은 교화소안에 제정된 일과질서 및 행동질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교화인은 매일 노동과제를 무조건 수행하여야 하며 태공(태만) 할 때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 교화소안의 보안원들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그들의 정당한 요구와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여야 하며 불복종하거나 반항하였을 경우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되어있었다.”고 썼다.

또한 “배준호는 지난해 11월에 구속되고 《특별교화소》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가족 등 외부사람과의 전화통화가 허용되었으나 《특별 교화소》에서는 전화통화는 규정상 불허 되고 있다.”며 “다만 가족, 친척, 친우들과 서신거래는 할 수 있으며 가족측이 보내오는 차입품을 검사한 기초위에서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관계자에 의하면 배준호가 《특별교화소》 입소 후 교화소 측에서는 배준호가 쓴 편지를 2차례 내보내주었으며 배준호 앞으로 보내온 편지를 5차례 접수하였다”고 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어 “규정에 의하면 필요한 경우 조선주재 자국의 외교 및 영사일꾼들과 면회할 수 있다. 조선과 미국사이에 국교가 없는 조건에서 주조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이 대신하여 배준호를 1차례 면회하였다”고 전하고 “배준호는 조선에 입국하여 구속된 이후 전화통화, 편지, 면회들을 통하여 거듭 자신이 풀려나올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게재했다.

아울러 “이번 면담에서 더 할 말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배준호는 7월 4일에 아버지가 칠갑을 맞는다며 외아들로서 꼭 찾아가 축하해드리고 싶다, 부모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심려를 덜어드리고 싶다”고 말한 소식을 강조했다.

조선신보가 미국공민 배준호와 대담요지 내용 전문을 게재한다.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하여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고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 수용된 미국공민 배준호가 6월 26일 본사기자와의 면담에 응하여 현재의 교화생활과 심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일문일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건강상태는?

▲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 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었다.

-여기서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가.

▲ 주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노동하고 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점심시간도 있다. 농사일은 평생 처음으로 하는 일이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

-지난해 구속된 이후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 성원과 여러 번 만났다고 하는데.

▲ 제가 공화국법을 위반하여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했고 조사받고 있는 내용의 골자를 이야기했다. 어떤 내용으로 기소가 될 것이며 결국 재판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재판(4월 30일)을 받게 되였고 여기에 들어와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스웨리예(스웨덴)대사관 성원을 통하여 가족들에게 알렸다. 편지로도 여기에 있는 상황들을 알렸다.

제가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미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도 하였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했는가.

▲ 2번 했다. 재판전에는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렸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위해서 노력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교화소로 입소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했다.

▲ 조선신보 기자와 대담 중인 배준호씨는 "하루 속히 가족에게 돌아갈 수있도록 조선정부에 선처를 구하고 미국정부에는 석방 될 수 있도록 노략해달라고 요청했다. 배준호씨 왼쪽 옆에는 난방을 할 수있는 보일러 시설이 보인다. ©


-가족들에게 전하고싶은 말이 있는가.

▲ 비록 건강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여기서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 내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면 좋겠다.

(가족들은) 조속히 좋은 조치가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기도해주시고 사면요청을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에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재판에서 변호인의 변호를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 3개월에 걸친 예심이 있었다. 라선시에 입국해서 조사를 받으면서 제가 법을 위반한데 대한 진술서를 썼고 예심과정에서도 그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굳이 재판에서 따로 변호인을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7월 4일이 저의 아버지의 70살 생일이다. 공화국정부에서 선처해주시고 미국정부도 더욱더 노력해주셔서 조속한 시간 내에 제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제가 외아들로서 꼭 (부모가 사는 미국 씨애틀에) 가서 아버지를 축하해드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배려와 보살핌 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제가 한 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들이지만 원만히, 조속히 해결되어 가족들을 다시 만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다.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위로해 드리고 싶고 제 걱정 때문에 어려워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염려, 심려를 덜어드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탁드리겠다. 좋은 결과가 있을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시고 노력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한편 조선신보가 이례적으로 조선의 노동교화소를 방문 취재하며 배준호씨와 대담을 한 것은 조선이 반인권 국가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과 더불어 배준호씨가 미국정부에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의지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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