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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세기의 폭로'는 안 보이고 '잿밥'만 보이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10 15:31
  • 수정일
    2013/07/10 15: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取중眞담] 한국 언론이 스노든을 '소비'하는 법

13.07.10 11:03l최종 업데이트 13.07.10 11:16l
홍현진(hong698)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여러분들은 기레기들이 낚시로 역관광당한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9일 오후 쓴 기사 <스노든이 UFO 극비문서 공개? '패러디 뉴스'에 낚였네>에 달린 한 포털사이트 댓글이다. 여기에서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이고, '역관광'은 '상대방에게 공격하려 하거나 공격을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크게 당하는 경우'라고 포털사이트 '오픈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썼다가 '관광'을 당하고 있다는 것.

이날 포털사이트 검색어에는 '스노든'과 지구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지구공동설'이 계속해서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광범위하고 무차별한 정보수집을 폭로하고 있는 스노든이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EjosephSnowden)를 통해 'UFO 극비문서'를 공개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트위터에 링크된 '인터넷 크로니클(www.chronicle.su)' 사이트는 "지구의 맨틀 속에 인간보다 더 지능이 높은 종족이 있으며, 미국 대통령은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일일 브리핑을 받고 있다"는 스노든과의 인터뷰를 전하고 있다. 국내 매체들은 '충격', '멘붕'이라는 반응과 함께 관련 내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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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노든이 'UFO 극비문서'를 공개했다고 보도한 언론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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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뉴스 사이트, 한국 기자들 단체로 '낚시'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인터넷 크로니클'은 진짜 뉴스 사이트가 아닌 패러디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가 가장 많이 쓰는 뉴스는 주로 '죽음' 관련 기사다.

저스틴 비버가 19살에 죽었다, 릴 웨인이 29살에 죽었다, 셀레나 고메즈가 19살에 죽었다, 에이콘이 38살에 죽었다.

이들은 현재 모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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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지구공동설' 기사를 실은 패러디 뉴스 사이트 '인터넷 크로니클'. 이 사이트는 에드워드 스노든, 저스틴 비버, 릴 웨인, 셀레나 고메즈 등이 죽었다는 '가짜' 뉴스를 실은 바 있다.
ⓒ 인터넷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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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 6월 23일 스노든이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드론(무인공격기) 공격을 받아서 사망했다는 기사도 썼다. 스노든의 '특종 파트너'인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의 '가짜' 트위터 계정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기사를 링크했고, 많은 이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자세히 보면, 가짜 트위터 계정 아이디는 '@ggreenwald'가 아닌 '@ggreenwild'로, 'a'가 'i'로 바뀌었다.

전직 <로이터> 통신 소셜미디어 에디터 앤소니 데 로사도 '낚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스노든이 죽었다'는 트윗을 리트윗했고 이는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더 뉴욕 옵서버>는 인터넷 크로니클이 풍자 뉴스사이트며, 가짜 트위터 계정은 주류 언론인들을 낚시질해서 인터넷 크로니클의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데 로사는 잘못된 정보를 전한 것을 사과했다.

전 <로이터> 통신 소셜미디어 에디터이자, <써카(Circa)>의 편집국장을 감쪽같이 속인 '인터넷 크로니클'이 이번에는 한국 기자들을 단체로 낚았다. 한나절 넘게 온라인 공간이 '지구공동설'에 휩싸였으니 이 정도면 '월척'이다. 인터넷 크로니클은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진지하게 다룬다. 크로니클에서, 진실이 아닌 것은 신체절단, 죽음으로 처벌받는다.

슬프게도, '크로니클'은 이 지구의 것이 아니다. 1976년 12월 30일 소행성에 불시착한 이후, 크로니클의 편집자인 에일리언들은 지구의 기후와 세균 식물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들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남을 수 있고 자유롭게 번식할 수 있다.

여기 크로니클에서, 우리는 약물 남용, 지적 재산 절도에 리버럴(기자주 : 자유로운, 개방적인, 관대한)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리버럴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리버럴(기자주 : 자유주의자)들은 호모들이고 우리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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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크로니클'은 에드워드 스노든을 '최고의 현장 리포터'라며 '스태프'로 소개하고 있다. 화면 우측에는 '집에 있는 테러리스트가 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아이패드'를 패러디한 '아이지하드'를 광고하고 있다.
ⓒ 인터넷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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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에드워드 스노든을 인터넷 크로니클의 '스태프'로 소개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크로니클 최고의 현장 리포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첫 번째 시위, 그리고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전쟁 최초의 시위에서 스노든은 '엘프 왁스 타임스'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 실시간으로 뉴스를 중계했다.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이트에 걸려있는 광고배너는 더욱 이상하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무슬림의 모습과 함께 '집에 있는 테러리스트가 되세요. 아이지하드(iJihad) $1.99'라는 광고문구가 보인다. 아이패드를 패러디한 것이다. '지하드'는 '이슬람 성전(聖戰)'을 뜻한다. 또 다른 광고를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오바마가 돼지플루에 걸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이곳은 패러디 사이트다. 그리고 다수의 한국 언론이 이곳의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였다.

'스노든의 불가능한 트위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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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칭 트위터 계정이 논란이 되자,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 <버즈피드>에서는 지난 6월 12일 '글렌 그린월드와 에드워드 스노든 가짜 트위터 계정에 대한 매우 도움이 되는 안내서'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 Buzz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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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스노든의 트위터라고 보도한 트위터 계정 역시 '인터넷 크로니클'이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15일 '에드워드 스노든 되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신들이 '@ejosephsnowden' 계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작성자는 '인터넷 크로니클' 최고의 리포터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이 글의 부제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불가능한 트위터 여행'. 인터넷 크로니클 '스태프' 에드워드 스노드은 이렇게 적고 있다.

스노든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트위터 계정의 존재는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다.

'가짜' 스노든 트위터는 지난 6월 29일 "브래드는 동성애자이고, 줄리안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강간하고, 엘즈버그는 미쳤고, 글렌 그린월드는 포르노를 판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여기에서 브래드는 미국 군사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 일병, 줄리안은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엘즈버그는 '펜타곤 페이퍼' 내부고발자 대니얼 엘즈버그, 그린월드는 <가디언>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다.

6월 11일에는 헐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에게 구애를 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이 '스노든이 러시아 미녀 스파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면서 인용한 트위터 역시 이 계정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더 뉴요커>는 이 계정을 '가짜 계정(Fake Account)'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스노든이 정말로 '인터넷 크로니클'에서 활동하면서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기관 출신으로, 혹시 모를 도청에 대비해 호텔 방 문을 베개로 막고 컴퓨터에 접속할 때 빨간 천을 뒤집어 쓸 정도로 치밀함을 보였던 스노든이 이러한 트윗을 올렸을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아 보인다.

사칭 트위터 계정이 논란이 되자,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 <버즈피드>에서는 지난 6월 12일 '글렌 그린월드와 에드워드 스노든 가짜 트위터 계정에 대한 매우 도움이 되는 안내서'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자신이 에드워드 스노든이라고 주장하는 어떠한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도 모두 가짜"라는 글을 올린 바 있는 그린월드는 6월 11일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ejosephsnowden'은 가짜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자 앞서 스노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던 '그린윌드' 계정은 '@ejosephsnowden'이 단 하나의 진짜 계정이라고 트윗했다.

'미녀스파이' 'UFO'... 선정적 이슈에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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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녀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청혼했다는 내용을 전하는 언론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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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CIA(중앙정보국) 요원이자, NSA(국가안보국) 외주업체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서 '감시받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며 NSA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 정보기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전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도청하고 해킹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보기구와의 공조도 이루어졌다. 조지 오웰의 소설 속 '빅브라더'는 현실이었다.

최근에는 미 정보기구가 38개 국가 주미 대사관·대표부의 전화를 도청하고 전산망을 해킹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여기에는 '우방국'인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워싱턴 소재 EU 사무실, 뉴욕 UN본부 EU 대표부 사무실, 브뤼셀 EU본부 감시는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스노든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책상에 앉아서 누구나 도청할 수 있다. 당신, 당신의 회계사, 연방판사, 심지어 대통령도."

스노든의 '폭로'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찌됐건 그는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내부고발'을 했다. 현재 그는 고국을 떠나 망명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의 관심은 그의 폭로 내용보다는 '미녀스파이', 'UFO', '외계인'과 같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에 더 쏠려 있는 듯하다. 스노든은 또 말했다.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폭로 후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부디, 그의 폭로가 한국사회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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