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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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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가 필요한 이유

 

<칼럼>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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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0 09: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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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북한의 전략적 선회

일본 <TV아사히> 계열의 민영 방송사인 <ANN>은 북한군 관계자에게서 취재했다면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지난달 10일자로 북한군 전체 병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0만 명의 병력을 줄이라는 명령을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에 내렸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8월말까지 장교 5만 명, 병사 25만 명 등 총 30만 명의 병력을 빼내 경제부문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라고 한다.

이 기사는 북한 김정은체제의 이른바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구체적 실행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생각하는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구체적 내용은 <조선신보> 6월4일자 기사를 통해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이 병진전략이 ‘핵 대국인 미국과 계속 대결하면서 조선이 경제건설을 하기 위한 전략’이라면서 ‘과거처럼 재래식 무기로 맞섬으로써 경제를 희생하는 것을 피하고, 대신 최종 병기인 핵 무력으로 평화를 보장해 경제건설에 큰 힘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우선 재래식 군비경쟁 시대의 비효율을 척결하여 인력과 자원의 배분을 효율화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원산 및 칠보산관광지구 개발, 그리고 각 도의 경제개발구 추진 등 대외경제 활성화 조치의 시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군 병력 30만을 감축하여 경제부문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는 재래식 전력 위주의 비효율성에서 벗어나 인력과 자원을 경제발전에 더욱 효율적 배치하는 상징적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내부자원 배분의 변화만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북-중, 북-러, 북-일 등의 외교관계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남북 당국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추진과정에서 남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비핵.개방.3000’의 ‘버전2’인가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개발이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자원의 재분배는 매우 고무적인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 북한이 핵 무력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북한은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아니라 군축과 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김정은체제의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핵무기에 의존하는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본적인 북한사회 변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회의 요소가 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위협을 감소하여 핵무기 의존 필요성을 약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를 통해 본격적인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본격적인 해체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기간 중에 “북한이 내건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의 병행 노선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고, 스스로 고립만 자초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그 ‘비핵화’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과 북한의 경제발전 노선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조평통은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기간 동안 언급했던 경제.핵무력건설 병행노선 비판발언에 대해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심히 모독하는 도발적 망발"이라고 비난하면서 "마지막 인내심을 갖고 박근혜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런 비난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사실상 ‘비핵.개방.3000’의 ‘버전2’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신뢰프로세스’와 리명박의 ‘비핵.개방.3000’을 비교하면 핵 포기와 개방을 요구하고 궁극에는 ‘흡수통일’을 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자는 (…) 선임자의 것보다 더 적대적이고 대결적이라 할 수 있다”(<조선신보>, 6.24)는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신뢰를 보이면’ 그때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것은 실제 비핵.개방.3000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박근혜정부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정책적 태도와 언술은 신뢰구축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6.15공동선언 등 남북간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민간의 6.15남북공동행사에 대해 부정적 태도로 일관했고, 6.15공동선언 등 과거의 성과가 ‘전부 북에 굴종한 결과물’이라는 식의 위험한 인식을 수시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NLL(북방한계선)의 군사대결적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안보와 힘’을 숭상하는 대결주의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고, 회담의 ‘격’ 문제에서 드러난 ‘새로운 남북관계’ 등등의 언술은 사실상 ‘철저한 상호주의’ 관철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데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발언에서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대화를 ‘상대에 대한 굴복 혹은 시혜조치’로 생각하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뢰프로세스 가동은 대북지원과 민간교류에서부터

앞서 보듯이 북한은 큰 방향에서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면서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에 대처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적 태도와 인식에서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단절과 불신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핵을 포기하는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하기 전에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려는 쪽에서 먼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신뢰를 강조하는 남쪽이 먼저 선제적으로 신뢰를 쌓아나가는 조치를 추구해야 신뢰프로세스는 비로소 선순환할 수 있다.

남쪽이 선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신뢰구축 조치의 핵심은 대북지원과 민간교류일 것이다. 이런 분야에서 먼저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를 취해나가면서 점차 비핵화와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에서 제시된 ‘비전코리아 프로젝트’)을 연동시켜나가는 것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추진의 적절한 경로이다.

민간교류가 남남갈등을 일으키거나 혹은 북한의 ‘통민봉관’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이나, 민간교류를 체육이나 문화 등 소위 ‘순수교류’에 묶어두면서 이것으로 민간교류 배제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 전략적 선회를 하고 있는 지금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추진의 중대한 기회이다. 과거에는 남쪽이 적극적인 대북지원과 경제협력 공세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체제적 차원에서 자원의 재분배를 결단하는 노선을 채택하기 어려웠다면, 지금은 북한이 먼저 자원 재분배를 통한 경제발전노선으로 선회한 상태이기 때문에 남쪽이 적절한 선제적 신뢰형성 조처를 추진하게 되면 보다 본격적인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길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편법이 아니라 대범한 선제조치를 통해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이를 ‘한반도 비핵화’와 연동시킬 선순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대북지원과 민간교류 등에서 선제적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전략적으로 선회하고 있는 이 기회를 다시 대결주의로 흘려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역시 ‘비핵.개방.3000’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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