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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이 ‘대망’ 품고 수사 지휘했다면?

등록 :2021-03-14 08:53수정 :2021-03-14 09:01
 
[토요판] 뉴스분석
검찰총장 퇴임 뒤 공직 제한했던 이유

1995년 사정정국 주도 김도언 검찰총장
퇴임 4일 만에 여당 지구당 위원장
“YS, 통치 뒷받침한 직할부대 배려”
국회, ‘2년간 공직·정치 금지’ 입법

1997년 헌재, 시행 6개월 만에 “위헌”
‘검찰총장=마지막 공직’ 굳어졌지만
윤석열, 정치 입문하면 관행 깨져
‘별의 순간’ 찾아 떠나도 논란 계속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한 4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윤 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차에 오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한 4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윤 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차에 오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퇴임 직후 대선후보 적합도 1위에 오르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1996년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르면, 윤 총장의 대선 출마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법은 시행 6개월 만에 효력을 잃었고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에는 윤리적·도의적 비판만 가능할 뿐이다. 25년 전 국회는 왜 검찰총장의 정치 입문을 금지했을까. 당시의 입법 정신은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잔여 임기는 4개월, 대선으로부터는 1년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맞설 강력한 대항마를 기다리던 야권 지지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그에게 환호했다. 사퇴 이튿날 <티비에스>(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18살 이상 10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1위(32.4%)로 뛰어올랐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본인의 의지, 대중적 호응을 종합하면 윤 전 총장의 정치권 입문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2000년대 들어 굳어진, ‘검찰총장은 마지막 공직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검찰총장, 퇴임 4일 만에 여당 정치인

“진정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려면 검찰총장이 퇴임 뒤 정치는 물론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는 데 많은 검사들이 동의해왔다.”

윤 전 총장을 비판한 게 아니다. 26년 전인 1995년 9월20일 <한겨레>는 김도언 검찰총장의 여당행에 ‘대검의 한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전 총장은 그해 9월15일 임기 2년을 채우고 퇴임한 뒤 4일 만에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부산 금정을 조직책(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정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성인 부산의 지역구를 받았으니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건넨 ‘금배지 선물’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외부 수혈 성격이었던 민자당의 조직책 선정을 두고 “김도언 전 검찰총장(부산 금정을), 정형근 전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부산 북·강서갑) 등 검찰과 안기부 등 핵심부서에서 김 대통령의 통치를 직접 뒷받침해온 ‘직할부대’ 인사들도 발탁됐다. (…) 부산 동래고 출신의 김 전 검찰총장은 김 정부 출범 후 첫 임기제 검찰총장으로서 임기 만료와 동시에 지역구를 맡겨 공백기를 주지 않으려는 김 대통령의 ‘배려’가 있었다”고 풀이했다.

검찰의 공정성·중립성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찰총장의 법무부 장관 영전은 허다했지만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희귀했다. 게다가 당시는 문민정부 시절 사정 바람이 불어 야당을 몰아치던 시절이었다. 1995년 야당의 승리로 끝난 6·27 전국동시지방선거 뒤 검찰은 민선 자치단체장 수사에 열을 올렸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싱크탱크인 아태평화재단 후원금 수사에도 착수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5천억원 비자금 내사는 조용히 덮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김도언 검찰총장’이 있었다. 그랬던 검찰총장이 퇴임 4일 만에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재직 중 편파수사’와 ‘퇴임 뒤 자리 보장’ 간의 대가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야당인 국민회의는 “야당에 대해 표적사정의 칼을 휘두르던 김 전 총장이 임기를 마치자마자 조직책을 받은 것은 야당 탄압에 앞장섰던 공로에 대한 표창”이라며 비판했고 검찰총장의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5월22일 전국공안부장회의를 주재한 김도언 검찰총장. 그해 6월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집한 회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5년 5월22일 전국공안부장회의를 주재한 김도언 검찰총장. 그해 6월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집한 회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검사 출신 반발 뚫고 ‘공직·정치 제한’

이듬해인 1996년 4월11일 15대 총선이 치러졌고, 김도언 전 총장은 부산 금정을에서 당선됐다. 민자당이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의 당선자 139명 중 1명이었다. 신한국당이 총선 직후 인위적으로 단독과반을 채우기 위해 야당 당선자 빼오기에 착수하자 야권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은 ‘15대 총선이 편파수사, 편파방송에 따른 부정선거였다’며 관련 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야당이 15대 국회 원구성 협상과 이 사안을 연계하면서 결국 정치권은 여야 동수로 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이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1996년 8월 정치관계법·방송관계법 소위가 꾸려졌고, ‘선거 관련 공직자의 중립성 제고를 위한 관계법률심사소위’의 핵심의제가 검찰·경찰의 중립화 방안이었다. 특위에서 야당은 검찰총장·경찰청장 임명 시 인사청문회와 국회 동의, 퇴임 뒤 4년간 공직 취임 제한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지역 기반을 잃고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여당에 검경 중립화는 달갑지 않은 과제였다. 야당은 여당의 태업을 비판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고, 구체적 수치를 들어가며 검찰의 선거법 위반 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1996년 11월19일 열린 특위 회의록을 보면, 그해 9월9일 기준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된 국회의원 후보는 신한국당이 76명으로 월등히 많았고, 국민회의는 21명, 자민련은 18명 차례였다. 그러나 실제 기소된 이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각각 2명, 자민련 3명, 무소속 1명이었다. 입건 대비 기소율로 따지면, 자민련이 17%, 국민회의 9.5%였지만, 신한국당은 2.6%에 그친 것이다. 직무 관련 수사선상에 오른 자치단체장도 전체 49명 중 40명이 야당, 기소된 6명 중 5명이 야당이었다. 김진배 의원(국민회의)은 “야당 당적의 자치단체장들만 나쁜 짓을 골라서 하고 여당에 있는 자치단체장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겠느냐”며 검찰의 표적수사를 비판했다.

검경 중립화 방안은 선거법·정치자금법·방송법 개정안 등과 함께 그해 12월9일 여야 3당 원내총무 간 합의로 결론이 났다. 검찰총장·경찰청장은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모든 공직 취임을 금지했고, 검찰총장은 같은 기간 정당 입당이나 발기인 참여도 제한했다. 제한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규정을 빼면서 여야 간 절충이 이뤄진 것이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입법에 합의했지만 검사 출신 여당 의원들은 이 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1996년 12월13일 열린 제도개선특위에서 홍준표 신한국당 의원은 “공무담임권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검찰총장을 전과자와 동일시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며 “정당의 발기인이 되거나 당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도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안상수 의원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 법 같지도 않은 법”이라고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재섭 법사위원장이 “동료 의원끼리 추궁하는 것처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조용하게 질의하자”며 진정을 시켜야 할 정도였다. “부드럽게 하겠다”며 발언을 이어간 안 의원은 검찰청법 개정안을 성안한 이건개 자민련 간사와 설전을 벌였다. 이 의원도 검사 출신이었다. 요약·정리한 논쟁에는 퇴임한 검찰총장이 2년간 모든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한 이 법의 명분과 이에 대한 반발 논리가 응축돼 있다.

이건개 검찰총장이 그만두고 나서 공직 취임이나 당적을 평생 제한하면 위헌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직 중에 검찰권 행사를 불공정하게 했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주기 위해서 짧은 기간 동안에 그런 희생을 강요한 것입니다.안상수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도 본질적인 권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에 그쳐야 되는 겁니다.이건개 2년간 제한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제한입니다.안상수 ‘모든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것은 본질적인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 아닙니까?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면 ‘검찰총장의 직무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법무장관이라든가 국회의원이라든지 한정해서 2년간 취임할 수 없다’, 이 정도면 검찰총장의 중립성 확보하기 위해 제한을 했다는 이해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이건개 집권여당의 총재가 국가원수를 하면서 막강한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모든 공직에 임명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권한이 (대통령) 1인에게 과잉되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검찰총장은) 최소한 모든 공직에 대해 2년간 제한을 해야 됩니다.안상수 외국에 검찰총장이 퇴임 후 2년 이내에 모든 공직에 취임을 금지하는 이런 입법례를 봤습니까?이건개 외국의 예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현실이 중요한 것이지. 막강한 검찰권을 행사하고 그것이 특정 정당을 위해서 검찰권을 행사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입법이 된 겁니다.

이런 토론 끝에 검찰청법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가결됐고 그날 본회의에서도 통과됐다. 앞으로 검찰총장은 퇴임 뒤 2년간 다른 공직에 오를 수 없고 정치 활동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헌재, 검찰 주장대로 위헌 결정

그러나 이 법은 곧바로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1997년 1월 시행 직후 김도언 후임인 김기수 검찰총장과, 고검장 7명이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에 검찰 수뇌부가 불복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뒤따랐지만 ‘검찰 불신을 전제로 한 이 법률이 검찰 수뇌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리고 6개월 뒤인 1997년 7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검찰총장 퇴임 후 2년 이내에는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 직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공립대학교 총·학장, 교수 등 학교의 경영과 학문연구직에의 임명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며 “직업 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입법 목적에 비춰보면 그 제한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 과잉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정당 가입 금지도 “정치적 결사의 자유, 참정권(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합리성이 결여된 차별취급규정”이라고 했다. 검찰 수뇌부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조승형 재판관만이 “검찰총장이 유혹될 수 있는 퇴임 후의 보다 나은 공직은 국무총리·국무위원 기타 임명공직 중 선거 관련 정보·수사·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기관의 장이라 할 수 있을 뿐 이 범위를 벗어난 임명공직에 대해 (검찰총장이) 연연하리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며 “금지기간 2년은 입법 목적이나 국민 법감정에 비춰 직업 선택의 자유나 공직담임권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지만 외로운 소수의견이었다. 이렇게 검찰총장 퇴임 뒤 2년간 공직과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은 6개월 만에 효력이 사라졌다.

윤 전 총장을 제외한 대한민국 역대 검찰총장 42명 중 퇴임 뒤 다른 공직을 경험한 이는 모두 19명이다. 16명이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고, 국회의원 경험자가 3명, 정보부장(중앙정보부·안기부) 2명, 대법원장, 감사원장, 감사원 사무총장, 내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 1명씩 있다.

검찰총장이 다른 공직의 징검다리였던 사례는 1999년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옮겨간 김태정이 마지막이다. 그 뒤 검찰총장에 오른 14명(박순용~문무일)은 모두 정치권·공직과 거리를 뒀다. 검찰이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수사지휘권자인 검찰총장이 마지막 공직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 이 관행은 깨지게 된다.

검찰총장들이 정권에 빌붙어 더 좋은 자리로 보상받았던 과거 행태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와 불화하고 사퇴한 윤 전 총장은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윤 전 총장이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고 해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윤석열 검찰총장’의 과거 수사지휘는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은 ‘별의 순간’을 찾았을지 몰라도 검찰에 남아 수사해야 하는 검사들도 똑같은 의심과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의 사퇴설이 나온 뒤 검찰 내부에서는 “중대범죄수사청 반대의 진정성이 훼손될 텐데 왜 지금 사퇴하느냐”, “사퇴의 진정성이 왜곡되지 않도록 ‘정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함께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떠났다. 한 중견 검사는 “윤 전 총장이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을 하겠다는 뜻이 생긴 것 같지만, 검찰 조직과 후배를 생각하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윤 전 총장이 개인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욕심이 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6645.html?_fr=mt1#csidx7b4d513958a5f9f944eb6bf6be09a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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