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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중증 치매’…선거판 달구는 막말, 모욕죄 해당할까?

등록 :2021-04-02 13:29수정 :2021-04-02 13:48
 
‘거친 말’로 시작된 재판, 유·무죄 엇갈리는 이유는

김성태 전 의원에 욕설 댓글 누리꾼 ‘유죄’
“피해자 모욕만 있고 사실관계나 논리적 의견 없어”

현대차 홍보성 기사에 ‘기레기’ 댓글 누리꾼 ‘무죄’
“MPDS 안전성 논란…다른 독자들도 홍보성 비판”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용산구 용문시장네거리 유세에서 각각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용산구 용문시장네거리 유세에서 각각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연설할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무슨 중증 치매 환자도 아니고’라고 지적했더니 과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야당이 그 정도 말도 못 합니까.” (3월26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자기가 내곡동 땅 개발승인계획 해놓고 안 했다고 하는 후보는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 쓰레기입니다.” (3월27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쓰레기’ ‘중증 치매 환자’ 등 막말이 쏟아지고 있다. ‘중증 치매 환자’ 발언을 한 오세훈 후보는 지난달 31일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이 시간 이후로 그런 표현을 쓰지 않겠다”면서도 “(중증 치매환자는) 강력한 비유”라고 주장했다. 오 후보를 겨냥해 “쓰레기”라고 말한 윤호중 의원은 이후 별다른 의견표명이 없다. 사람을 가리켜서 한 말은 아니지만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지난달 26일 “부산은 3기 암 환자 같은 신세”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선거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치인들의 거친 말이 ‘해프닝’처럼 지나가고 있지만, 평소 누군가를 특정해 이런 말을 쓰게 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비슷한 말을 써서 재판에 넘겨진 사례들을 분석해봤다.
사진 언스플래시
사진 언스플래시
같은 ‘쓰레기’라 해도 상황 따라 유·무죄 갈려
누군가에게 ‘쓰레기’ 같은 말을 썼을 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혐의는 모욕죄다. 대법원은 모욕에 대해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경멸적인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소 표현이 무례하더라도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하진 않았다면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고, 모욕적 표현이라 해도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위법성이 없어진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이에 따라 같은 ‘쓰레기’란 욕을 했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유·무죄가 갈린다. 2016년 강용석 변호사 관련 기사에 ‘강용석=쓰레기’라는 댓글을 단 ㄱ씨는 1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ㄱ씨가 댓글로 공연히 고소인을 모욕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쓰레기’, ‘놈’ 등의 단어를 섞어 욕 댓글을 단 ㄴ씨의 경우, 1심에서 “해당 댓글이 김 의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2심에서 벌금 30만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모욕적 언사”라며 “이 같은 댓글 작성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댓글에 피해자를 모욕하는 표현만 적시돼 있을 뿐, 어떠한 사실관계나 그에 대한 논리적 의견을 밝힌 부분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했다.반면 최근 대법원은 인터넷 기사에 ‘기레기’란 댓글을 달아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아무개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6년 현대차의 엠디피에스(MDPS) 홍보성 기사에 ‘기레기’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1, 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면서도 이씨가 댓글을 달 당시 엠디피에스의 안정성 논란이 있었다는 점, 기사를 읽은 상당수 독자가 엠디피에스를 홍보하는 듯한 기사를 비판하는 댓글을 게시했다는 점 등을 들어 이씨의 행위가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무뇌아”, “확찐자”로 벌금형 선고받기도
상대방을 ‘치매 환자’ 등에 빗댔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비슷한 취지로 상대방을 비하하기 위해 ‘무뇌아’란 표현을 써 유죄 판결을 받은 일은 있었다. 2016년 대법원은 한 인터넷 카페 게시글에 “정말 한심한 인간이네, 생각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까. 뇌가 없는 사람이야. 무뇌아”라고 댓글을 달아 모욕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은 “김씨는 상대방의 구체적인 행태를 논리적·객관적 근거를 들어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모욕적 언사가 담긴 댓글만을 게시했다”며 “‘무뇌아’라는 표현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등을 종합해 보면, 김씨는 모멸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상대에게 인신공격을 가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무심코 쓰는 표현이 모욕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청주시 공무원 ㄷ씨는 지난해 동료 직원의 몸을 손으로 찌르며 “‘확찐자’가 여기 있네”라고 모욕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확찐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살이 찐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재판부는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이뤄진 ㄷ씨의 언동은 살이 찐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비하하는 것으로 사회적 평가를 동반하는 만큼 모욕죄가 성립된다”고 봤다.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에게 ‘승냥이’라고 표현한 입주민, 경쟁사 직원을 ‘사기꾼’이라 일컬은 부동산 경매회사 직원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지난해 울산지법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의 운영비 부정 사용을 지적하며 ‘승냥이’란 글을 올린 ㄹ씨에게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운영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반복적으로 ‘승냥이’라고 한 것은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경쟁사 직원이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표절이라며 “남의 글이나 훔치는 사기꾼, 이중인격자”라고 글을 올린 박아무개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 재판부는 “경쟁자가 전문가 행세를 한 것은 기만이나, 사기는 아니다.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 전경.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법원 전경.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피고인 욕했다가 손해배상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욕할 만 하다’는 의미에서 댓글을 달았지만, 민사소송에 걸려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수 고 구하라씨를 폭행·협박한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최종범씨는 자신에게 “쓰레기” 등의 댓글을 단 누리꾼 6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6명 중 최씨 외모를 비하한 1명에게만 최씨에게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섯명에 대한 최씨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특정 유형의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나 범죄 예방 방안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차원에서 댓글을 작성했다”고 밝혔다.구조동물을 무분별하게 안락사시킨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재판을 받는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전 대표도 자신에게 비방 댓글을 단 6명에게 1인당 25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김홍도 판사는 ‘댓글이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박 전 대표의 행위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댓글을 달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각 10만원씩을 박 전 대표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9389.html?_fr=mt1#csidx23722f554241a74a2c3ef98cb642c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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