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현대사] 제주4.3과 3.10총파업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초등5~6학년 4.3 교재에 실린 '3.1시위' 화가 강요배 그림.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초등5~6학년 4.3 교재에 실린 '3.1시위' 화가 강요배 그림.

1947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후 제주 관덕정에서 가두시위를 구경하던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마경찰이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을 그대로 빠져나가려 하자 군중들이 항의했고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6명이 숨졌다.

“해방된 우리 땅에서 경찰 총에 맞아 죽다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고 또 넘었는데”라는 절규가 쏟아졌다.

3.1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일제 경찰 출신이 82%인 당시 제주도 경찰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에 3월 10일 유례없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3월 13일까지 나흘간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0여개 기관과 단체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를 핑계로 미군정은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라 칭하고 군병력을 동원, 파업주모자라는 이유로 2500여명을 구금했다. 제주4.3항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을 사는 노동자라면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3.1사건 발생 열흘 만에 노동자 95%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광복 2년이 지났는데 3.1절을 기념한 이유

총파업 성사 요인을 찾기에 앞서 우선 광복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3.1절 기념행사에 제주도민 절반에 해당하는 6만 명이나 모이게 된 이유부터 알아야한다.

해방이 되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제주도민들이 돌아왔다. 그 수는 12만 제주도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6만 명에 이르렀다.

사선을 넘어 해방된 고향 땅에 돌아온 이들은 9월 15일 제주읍 인민위원회를 시발로 노동조합, 부녀동맹, 교육자동맹 등 각종 대중단체를 잇따라 조직해 과거 일본인의 재산(적산)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등 새조국 건설에 떨쳐나섰다.

그러나 9월 28일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은 적산을 송두리째 강탈하고, 일제의 밀정 출신들로 경찰을 구성해 치안을 담당케 했다. 당시 제주도(지)사 스타우트 소령 휘하의 경찰 총수 1,157명 중에 일제 경찰이 949명으로 82%를 차지했다.

미군정은 인민위원회와 노동조합 등 민주단체 인사들을 불순분자로 몰아 구속하는 등 파괴공작을 감행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군정의 비호아래 자행된 ‘한라단’ 사건(친일파들의 테러조직 한라단이 인민위원회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렇게 되자, 일제 대신 제주를 점령한 미군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인민위원회는 ‘3·1투쟁기념행사제주도위원회’(이후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이양)를 결성해 1947년 3월 1일 대규모 반미 시위를 계획했다.

3.1절 당일 “미군은 물러가라”는 시위군중의 현수막과 기념식 개회사는 당시 제주도민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 “우리 제주도민은 모두 3.1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 안세훈의 개회사 중)

▲제주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1.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세우자! 2.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3.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4.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5.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제주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1.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세우자! 2.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3.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4.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5.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95% 노동자가 총파업에 돌입한 이유

3.1사건 직후에 바로 총파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 점령군의 실체가 만천하에 폭로됐기 때문이다.

처음 미군정이 시작될 때만해도 그들의 말대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파견된 해방군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독립만세를 외치는 조선인에 총을 겨누는 미군은 결코 해방군일 수 없다.

조선총독부가 미군정청으로, 일본군이 미군으로, 친일 경찰이 친미 경찰로 바뀌었을 뿐 해방은 아직 멀리 있음이 3.1사건으로 드러났다. 이에 제주 노동자들은 미군정에 맞서 총파업을 결행했다.

총파업이 성사된 또 다른 요인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라는 강력한 노동자 조직이 제주 인민위원회와 제주 민전의 기둥으로 망라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노동운동이 금지됐던 일제치하를 벗어나자마자 조선광산노조를 시작으로 금속, 철도, 출판, 섬유, 토건, 화학, 전기, 조선 등 각 분야에 노조가 결성되었다. 1945년 11월 5일 전평 결성대회에는 1,194개의 노조, 50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한 505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

전평은 자신들의 과제를 경제투쟁을 넘어서서 정치투쟁을 통한 일제잔재 청산과 반제‧반봉건 민중혁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평이 주도한 주요 투쟁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947년 ‘3월 총파업’을 꼽을 수 있다.

철도노조에서 시작한 9월 총파업은 11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해 전국의 주요도시와 지방 60여개 군으로 확산되었다. 미군정은 전평의 요구사항을 묵살하고 강경대응 방침을 세웠다. 9월 30일 미군정은 탱크를 앞세우고 군경 3천여 명과 우익단체 청년 2천여 명을 동원해 용산 철도파업 현장을 습격했다.

2차 총파업으로 불리는 3월 총파업은 일제 부역 경찰간부 처벌과 경찰 민주화, 구속된 노조간부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이었다. 제주 3.10파업이 바로 전평의 지휘아래 제주에서 벌어진 총파업인 것이다.

2차 총파업 역시 미군정의 강경진압에 의해 2천여 명이 구속되며 끝이 났지만 전평은 1948년 다시 3차 총파업을 감행한다. 이 역시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정치파업이었다. 3차 총파업은 제주4.3으로 이어졌고, 3만 명에 달하는 제주도민이 미군정의 초토화 작전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전평은 3차례의 총파업으로 인해 수많은 간부들이 검거되거나 살해 당해 조직과 세력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단독정부 선거일에 맞춰 다시 총파업을 조직했고 전국 규모로 확산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역시 잔혹하게 진압 당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4.3항쟁을 이어 5.10단선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한다.

▲ 4·3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48년 5월 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바로 제주4.3학살의 주범들이다. 왼쪽 두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 4·3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48년 5월 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바로 제주4.3학살의 주범들이다. 왼쪽 두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제주4.3은 반제자주, 조국통일을 향한 전민항쟁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어둠을 가르는 한발의 총성은 순식간에 제주도를 흔들어 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라산의 봉우리마다 붉은 봉화가 올라가고 미군정의 탄압에 맞선 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탕’하는 총성은 5.10 분단선거를 무력으로 저지하라는 공격개시의 신호임과 동시에 제주도민 전체의 궐기를 촉구하는 호소였다.

3천여 명의 무장대원들은 각지의 산봉우리에 일제히 올려진 봉화와 총성에 동서남북으로 호응하여 봉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제주도민에게 전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경애하는 부모 형제 여러분!

4월3일 금일, 여러분의 아들 딸과 형제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적 단독선거에 반대하여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독립을 찾기 위해.

여러분에게 고난과 불행을 강요한 압제자와 그 하수인의 압제의 사슬을 풀기 위해.

여러분의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을 풀기 위해.

저희들은 오늘 분연히 떨쳐 일어섰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몸을 던져 싸우는 저희들에게 협조하시고 저희들과 함께 조국과 민중이 인도하는 길로 결연코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경찰관 여러분!

탄압하면 항쟁할 뿐이다. 제주도 빨치산은 민중을 수호하고 민중과 함께 한다.

항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민중의 편에 서라.

 

양심적인 공무원 여러분!

하루라도 빨리 선(조직선)을 찾아가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직장을 수호하며, 악질 동료와 최후까지 용감하게 투쟁하라.

 

양심적인 경찰,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있는가?

한국 민중이라면 조국과 민중을 유린하는 외적을 내쫓는 투쟁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고 애국자를 학살하는 반역자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총구는 놈들에게 향하라. 결단코 여러분의 부모 형제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

제주4.3의 전평이 오늘 민주노총에 묻는다

3만여 제주도민의 생명을 앗아간 주한미군이 76년 째 주둔하고 있다. 제주도민을 학살하라 명령한 주한미군은 여전히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다. 자신의 부모 형제를 쏴 죽인 주한미군에게 제주도민의 세금이 방위비분담금으로 지급된다.

11월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