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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으로 살다 한 발 헛디뎌 고시촌으로 돌아온 어느 중년의 이야기

[6411 사회극장 ④] 고시원에 사는 중년 남성들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노회찬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협력 운영하고 소셜 디자이너 '두잉'이 진행하는 '6411 사회극장'입니다.

 

'사회극'은 집단이 공유하는 문제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에 기초해 역할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인식의 개선과 확산 때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합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합니다.

 

'6411 사회극장'을 준비한 우리는 '사회극'을 통해 올 한해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조명하려 합니다. 이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합니다.


 

어쩌면 당사자들의 시선 속에 그들의 삶을 개선할 소중한 단서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번째 기록은 고시원에 사는 중년 남성들과 함께한 사회극입니다. 

 

중년이 돼 돌아온 고시촌...1.5평 방에 공용 부엌도 없어


 

장주영(가명, 60)씨는 2년 전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으로 돌아왔다. 그는 20대 때 5년 동안 이곳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일방향 통행길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윗동네에는 옛 고시원들이 남아있다. 사는 사람은 바뀌었다. 전국 고시원 평균 월세는 33만 4000원(2018년 국토교통부 실태조사), 사법시험이 폐지 된 뒤 이곳엔 그 평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40~60대 독거 중년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주영 씨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 원인 1.5평짜리 방을 잡았다. 이불을 깔려면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야 했다. 공용부엌도 없었다. 화기는 절대 금지였다. 밥은커녕 라면도 끓여먹을 수 없었다. 40년 전엔 고시원에서 계란프라이와 소시지도 줬는데 다 사라졌다. 10여명이 사는 한 층에 화장실 하나, 샤워기 한 대, 세탁기 한 대가 다였다. 에어컨은 복도에만 있었다. 여름엔 다들 방문을 열고 살았다.


 

대학동 고시촌으로 돌아온 뒤 6개월 동안 그는 고시원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팠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하지정맥류…. 당뇨 탓에 식사조절을 해야 했지만 엄두도 못 냈다. 한끼에 3500원 정도 하는 식당에서 사먹거나 사단법인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에서 공짜 점심을 먹었다. 점심과 함께 받은 빵은 저녁을 위해 남겨뒀다. 몸뿐 아니라 마음을 다쳤다. 중산층에서 한발 헛디디니 허방이었다. 시작은 부인과 갈등이었다. 함께 학원을 운영했다. 재산은 모두 부인 명의였다. 그는 맨몸으로 집을 나왔다. 그 6개월 동안 그는 자살을 생각했다. 이혼하지 않은 상태고 부인이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없었다. "창피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고시촌으로 돌아오기 전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해피인'에서 자꾸 찾아왔다. 이들을 도와 마을 전시회를 꾸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다보니 사는 재미가 살아났다. 2년 전엔 '해피인'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이 20~30명이었는데 그새 100명으로 늘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다. 40년 전 고시공부를 하던 '형님'은 70대가 된 지금도 고시원에 살았다. 사람들이 보였다.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여기 아니면 더 갈 곳이 없다는 건 같았다. 혼자 살며 대체로 몸이 아프다는 점도 비슷했다. '수급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노인도 청년도 아닌 이들은 복지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지난 4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윗동네에 '참 소중한...' 센터를 열었다. 공용부엌이 없는 고시원 거주자들이 이곳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탁구도 쳤다. '참 소중한...' 센터 이영우 신부 등과 함께 주영 씨는 '소행모(작은 행복을 모으는 모임)'를 꾸렸다. 윗동네 주민 20여 명이 참여한 자조모임이다. 함께 나무 상자를 만들고 꽃을 심어 꽃길을 만들었다. 사진 강의도 같이 들었다. 연말엔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대학동 기록을 남기려고 소식지 만들려고 한다.

 

▲ 서울 시내의 한 고시원. ⓒ연합뉴스

"갈 곳 없어 왔지만 이곳이 제2의 고향"
 

 

지난 6월 24일 주영 씨는 '참 소중한...' 센터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에 참여했다. 그를 포함해 윗동네 주민 8명이 모였다. 참여자들은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담은 가상의 주인공을 상상해 즉흥극을 만든다. 그 즉흥극 안에 기쁨과 슬픔, 바람을 담는다. 이 '상상 놀이'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 최대헌 '심리상담 청자다방' 대표,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주영 씨는 홍길동이란 인물에 자기 삶을 담았다.


 

"제 이름은 홍길동이에요. 고시촌이 만들어질 초창기에 이 동네에 살았어요. 몇 년 전에 인생의 쓴 맛을 보고 돌아왔어요. 오갈 데가 없었어요.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저는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해요."

참가자들은 각각 주인공을 떠올렸다.
 

 

"제 이름은 이도령. 12년 전에 이곳에 왔어요. 저는 몸이 굉장히 안 좋아요."


 

"제 이름은 갑돌. 나이는 60대 초반이에요. 고시 공부하러 들어왔다 여기 눌러 앉게 됐어요. 고시원 일 봐주고 잡일도 하면서 살았는데 노후가 걱정이에요."


 

"김호탕이라 불러주세요. 나이는 50대 초반이라고 하죠. 이름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요. 오래 전에 사시를 준비했는데 1차 붙고 2차 떨어지고를 반복했어요. 돈 떨어지면 지방 내려가 돈 벌어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거의 10년 한 거 같아요. 나이가 드니 아예 이곳을 떠나 지방으로 가야할지 고민 중이에요."

 

"순돌이에요. 40대 중반이고요. 사장이 임금을 안주고 날랐어요. 돈이 없어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막우입니다. 50대 초반이고요. 여기 온 지 3년 됐어요. 30대까지 잘 나갔어요. 40대에 학원을 차렸는데 무리하게 확장하다 접게 됐어요.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나이가 드니 버티기 힘들더라고요. 그 뒤에 보험, 부동산 중개업 일도 했어요. 경제적 문제가 풀리지 않아 주거비가 저렴한 이곳에 왔어요."


 

"최 씨라고 불러주세요. 40대 중반이고요. 고향이 신림동이에요. 사업했는데 동업자가 돈을 갖고 날라 쫄딱 망했어요."


 

"60대 후반입니다. 이름은 이선비고요.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나버렸어요. 다른 데선 방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버스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 여기 내렸어요. 방값이 정말 싸더라고요.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려고요. 동네 사람들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사회자는 참여자들에게 누구 얘기를 더 듣고 싶은지 물었다. 다들 주영 씨를 가리켰다. 주영 씨의 홍길동이 오늘 사회극의 주인공이 됐다.


 

"인생의 쓴맛, 그건 죽을 맛이었어요.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였죠. 여기 다시 온 날, 그날 기억이 없어요. 날씨가 어땠는지 그런 걸 기억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어요. 아들 둘과 아내가 있는데 관계가 깨졌어요. 형이 한 분 계시고요." 

 

홍길동은 어느새 주영 씨 자신이 됐다.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아이들과 아내, 형,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자신의 역할을 맡을 참여자를 뽑아보라고 했다. 무대에 주영 씨를 포함해 6명이 섰다.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이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어떻게 서 있을 거 같냐"고 물었다. 주영 씨는 자기를 이해하는 작은 아들 역할을 맡은 이를 자기를 바라보도록 세웠다. 주영 씨와 사이가 틀어진 큰 아들은 반쯤 뒤돌아 세웠다. 아내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형님은 그를 바라봤다.


 

"이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 같아요?"(사회자)


 

"보고 싶지 않아."(아내), "건강하기만 하세요"(큰아들), "나중에 제가 모실게요"(작은 아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니까 나아질 거야."(형님)


 

사회자는 그에게 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착잡한데 이제 덤덤하기도 해요. 팔자려니 생각해요. 그런데 제 팔자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기 서 있는 옛날의 나는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거 같아요?"(사회자)


 

"참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살아가는 모습이 괜찮아 보여. 잘 될 거야."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혼자 방에 있는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1~2년 뒤에 내가 원하는 모습은?"(사회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일하는 게 즐거워요. 그 순간만큼은 제 존재감을 느껴요"


 

▲ 6월 24일 '참 소중한...' 센터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 네 번째 시간. ⓒ프레시안(최용락)

"건강, 취업 등 문제 복합적...종합지원센터 만들어줬으면"


 

즉흥극의 상황이 바뀌었다. 참여자들은 주민센터, 주거복지센터, 보건복지부 공무원 등의 역할을 맡았다. 그들에게 대학동 독거 중년 남성 대표로 홍길동 곧 주영 씨가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다.
 

 

"공유부엌, 공유작업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기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어요.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건강문제, 취업문제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이 동네 75%는 1인가구인데 그분들은 목소리를 잘 못내요. 위쪽 동네가 쪽방촌이 돼 동네 질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인식을 좀 바꿨으면 해요. 여기를 좀 더 발전시키도록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사회극장이 끝날 때쯤 참여자들은 포스트잇에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지 써서 붙였다.
 

 

'교통(일방통행이고 길이 좁다)', '소음', '공동생활 에티켓(야간에 세탁하지 않기 등)', '독거 가구끼리 교류', '종합지원센터'….


 

홍길동의 큰 아들 역할을 맡았던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의 삶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홍길동이 저희 아버지랑 비슷한 상황인 거 같아요. 제가 아버지를 완전히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저랑 아버지 사이엔 벽이 있어요. 홍길동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돌아섰다고 그게 진심은 아니라는 걸요."


 

'참 소중한...' 센터 앞에는 자조모임 '소행모'에서 꽃을 심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다. 그 나무 상자에 주영 씨가 심은 금잔화는 곧 만개할 테다. 한번 자라면 확 퍼져 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2.1평 이하 공간에서 한 달 137만 원으로 사는 고시원 거주자


 

- 한국도시연구소, <서울시 고시원 실태조사>


 

고시원의 주거 환경은 어떨까. 고시원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지난해 4월 서울시 연구 용역을 받아 한국도시연구소가 작성한 <서울시 고시원 거처상태 및 거주 가구 실태조사 통계보고서>에 대략적인 답이 나와 있다. 연구진은 서울 5807개 고시원, 15만 5379가구 중 661개소 2102개 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해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 10가구 중 5가구는 2.1평 이하 공간에 산다. 월 평균 가구소득은 137만 1000원이다.

 

고시원 주거환경...좁고, 환기 안 되고 소음, 악취도 
 

 

고시원 가구의 주거 전용면적은 7제곱미터 미만이 53.2%로 가장 많다. 7~10제곱미터 넓이 공간에 사는 가구 비율은 29%, 10제곱미터(3평) 이상 거주 가구 비율은 17.8%다. 10명 중 5명이 두 평 이하, 8명이 세 평 이하 공간에 사는 셈이다.


 

고시원 생활환경을 묻는 5점 척도 주관적 인식 평가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도 비좁음(3.1)이다. 그 뒤는 채광(3.42), 소음(3.53), 환기·악취(3.87) 등 순이다.


 

'창문이 없거나 작아 빛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으며, 얇은 벽 탓에 옆 방 소리가 들리는 좁은 방'이라는 고시원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결과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이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2.5시간이다. 가구주의 연령대가 높고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이 시간은 길어진다. 100만 원 미만 가구는 하루 중 14.8시간, 60세 이상 가구는 하루 중 15.5시간을 고시원에서 보낸다.


 

고시원 거주자...소득 낮고, 남성, 30대 미만이 높은 비율


 

고시원 거주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37만 1000원, 평균 월세는 33만 5000원이다. 소득의 25% 정도를 월세로 쓰고 있는 셈이다. 

소득 분포를 보면, 고시원 거주 가구 중 37.2%가 100만 원 미만을 번다. 이밖에 100~200만 원 36.6%, 200~300만 원 18.1%, 300만 원 이상 5.7% 등이다. 고시원 거주자의 근무형태는 임시 일용 노동자 34.1%, 상용 노동자 16.8%, 자영업자 3.2% 순으로 나타났다. 거주자 중 44.7%는 무직이라고 답했다.
 

 

고시원 거주자의 성별은 남성이 76.6%로 여성(23.4%)보다 많다. 연령대로 보면 30대 미만이 29.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60세 이상 19.8%, 50~59세 19.6%, 40~49세 15.9%, 30~39세 14.7% 등이었다.

 

가족과 연락이 단절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가구도 꽤 됐다. 고시원 거주 가구 중 가족, 친척과 연락을 끊고 산다고 답한 비율은 20.8%다. 20.9%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계속 살겠다 83.1%, 절반은 경제적 이유...주거복지, 사회복지 절실


 

고시원 거주 가구 중 83.1%는 고시원에서 '계속 살겠다'고 답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경제적 이유를 댔다. 주거비가 저렴해서 30.3%, 임차보증금 마련이 어려워서 22.9% 등이다. 통근통학에 좋은 위치라서 계속 고시원에 살겠다고 답한 사람은 22.9%였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주거복지로 공공임대주택 20.7%, 월세 보조 10.4%, 전세자금 대출 5.9% 등을 꼽았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바라는 사회복지는 소득보조 48.2%, 일자리 지원 32.3%, 의료 지원 16.5% 순으로 나타났다. 

 

최용락 기자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011611006895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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