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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 드는 것도 서러운데 산재 승인도 쉽지 않은 노동자들

[6411 사회극장] ⑥ 산업재해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노회찬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협력 운영하고 소셜 디자이너 '두잉'이 진행하는 '6411 사회극장'입니다.

 

'사회극'은 집단이 공유하는 문제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에 기초해 역할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인식의 개선과 확산 때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합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합니다.

 

'6411 사회극장'을 준비한 우리는 '사회극'을 통해 올 한해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조명하려 합니다. 이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합니다.


 

어쩌면 당사자들의 시선 속에 그들의 삶을 개선할 소중한 단서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섯 번째 기록은 노동자들과 함께 산업재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사회극입니다.


 

"급식노동자 몸은 목부터 발바닥까지 종합병원이에요."


 

임채정(51,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경남지부 노동안전위원장 (창원지회장)) 씨는 14년 차 급식 노동자다. 노조 전임을 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일했다. 초등학교는 학생 145명당, 중학교는 120명당, 고등학교는 100명당 1명씩 조리실무사가 배치됐다. 임 씨가 일한 고등학교에선 6명이 600명의 점심과 저녁을 지었다. 오전 8시 출근해 재료를 검수하고 업무지시를 받은 뒤 12시 20분에 점심 배식을 했다. 배식이 끝난 뒤가 더 전쟁터다. 식판, 음식을 담았던 스테인리스통 등을 씻고 급실실 전체를 청소한다. 이 일은 오후 2시 30분까지 끝내야 한다. 오후 3시부터는 저녁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점심이야 10분 만에 먹죠. 후루룩 말아먹는 거죠. 동료들이랑 눈 마주칠 시간도 없어요." 저녁까지 맡은 날은 오후 7시 30분, 점심까지만 맡은 날은 오후 4시 30분에 퇴근했다.


 

임 씨는 일찍 퇴근한 날엔 병원 순례를 돌았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손목터널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밤에 쥐가 나면 풀리지 않아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깨, 팔, 손목을 계속 움직여야 하니 무리가 왔다. 통배추를 자르다 손가락 근육이 끊어지기도 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하면 30kg 넘는 고기를 계속 저어줘야 타지 않는다. 기계가 있어도 재료를 눌러 넣어줘야 한다. 식판 애벌 세척하는 데 1시간 넘게 걸린다. 요리할 때는 상체를 15도 앞으로 숙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허리, 어깨, 손목 안 아픈 곳이 없다. 다행히 그는 하체가 튼실한 편인데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다. "산재로 어깨, 손목, 팔목은 승인이 잘 나는데 무릎은 계속 불승인이에요."

 

2008년 38살에 한식조리 자격증을 따고 급식노동을 시작했다. 오후 4시 30분이면 퇴근하니 아이 키우면서 다닐 수 있을 거 같았다. 당시에 기본급 80만 원 받았다. 여름엔 에어컨이 돌아도 소용없었다. 물앞치마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일하다 보면 하루에 옷을 6~8번씩 갈아입어야 했다. 최소한 인원으로 수백 명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데는 '합'이 중요했다. 사이가 끈끈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50대 언니들은 막내인 그를 친동생처럼 대해줬다. 멤버들끼리 눈빛만 봐도 통했다.


 

9년 넘게 함께 일했던 이 멤버들은 이제 모두 흩어졌다. 지난해 다른 학교로 전보됐다. 임 씨는 전보조처 이후 사고 소식을 더 자주 들었다. 학교마다 조리 방법이나 배치가 다르다 보니 사고가 일어났다. 식판 400개를 배식대로 돌리다 식판이 쏟아져 손가락 절단된 사례도 보고됐다. "모두 기계 같이 일해야 그 인원으로 배식을 마칠 수 있어요. 동료들끼리 호흡을 맞추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현장 상황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보 발령을 내버려요. 인원 충원 이야기하면 그 인원으로도 배식하고 있지 않으냐고 그래요. 사람을 인건비로만 생각하는 거죠."

 

그는 올해 초 경남교육청과 함께 10개 학교 환경실태조사를 나갔다. 10개 학교 모두 유해연기 등을 빨아들이는 후드를 제대로 달지 않았다. "유방암, 갑상샘암, 폐암 암 환자가 많아요. 저희가 3년 투쟁해서 폐암만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았죠."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은 조리 중에 나오는 연기인 이른바 '조리 흄'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며, 폐암으로 숨진 급식실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폐암 걸린 분이 있는데 산재신청을 안 하겠대요. 학교에 피해 줄까 봐, 또 복귀했을 때 눈치 보일까 봐. 어깨 수술한 분이 계셨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당사자에게 현장 사진을 찍어오라고 요구하기도 했어요." 그는 노조 전임을 맡은 뒤 17개 시도, 15군데를 돌며 산재 교육을 했다. 


 

'골병' 드는 노동에 임금은 박하다. 기본급이 184만 원, 위험수당이 5만 원 나온다. 10년 차 정도 되면 월 250만 원 정도 받는다. 그나마 오랜 '투쟁'으로 오른 액수다. 그래도 그는 급식노동을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우리 집 아이 또래들을 보면 제 자식 같아요. 우리 애들 밥 해주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설거지하고 있는데 졸업반 아이들이 3년 동안 고마웠다고 찾아왔어요. 그럴 땐 눈물이 나요."


 

1만1166명이 2015년부터 6년 동안 산업재해로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5114건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 중 29건만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았다. 떨어지고 끼고 질식해서 숨지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빼지는 등 누더기가 됐다. 지난 25일 창원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 노동자 10명이 6411 사회극장 '죽지 않을 권리'에 참여하려 모였다. 우체부, 환경미화원, 조선사 노동자이거나 노조에서 산재 관련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급식노동자인 임채정(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경남지부 노동안전위원장 (창원지회장))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들 앞에 촛불 20여 개가 일렁였다. 즉흥극을 만들며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이 날 사회극장에서 10명은 먼저 떠난 이들의 슬픔과 소망을 대신 전했다. 최대헌 '밸런스라이프' 대표,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뇌출혈, 근골격계 질환, 화상곁에 있는 산재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6명은 주변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본 적이 있고 그 경험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그룹에 섰다. 나머지는 주변에서 산재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거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쪽에 섰다.

 

"저는 집배원이에요. 집배원들이 장시간 근무 탓에 뇌출혈, 심정지로 숨지고 있어요. 오토바이 사고가 빈번해요. 지난 5년 동안 100명 넘게 돌아가셨어요."


 

"우리 회사에서는 한 해에 산재사고가 20건 정도 일어나요. 산재 보고서 보면 다 비슷해요. 작업자가 잘못했다, 안전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그래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실수하잖아요. 근본적으로 설계를 개선해야 하는데 아무도 강제하지 않아요."


 

"저는 환경미화원이에요. 여러 사고가 많이 일어나요. 쓰레기 수거할 때 돌아가는 청소차 회전판에 튕긴 병뚜껑을 눈에 맞아 시력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근골격계 질환은 흔해요. 제가 노조 사무위원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우리 조합원들이 재해를 덜 겪게 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돼요."


 

"저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이에요. 근무한 지 11년 됐어요. 비정규직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하는 처지예요. 국가에서 의무사항으로 정해놓은 위험성 평가 같은 것들은 우리한테는 해당이 안 돼요. 산재가 나와도 산재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사람이 아니고 부속품이기 때문에 자비로 치료하고 무급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2017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많이 바뀌긴 했어요.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아파도 가족의 일상이 깨지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활동 하면서 느낀점이 많아요."


 

"저는 세 가지 죽음을 경험했어요. 1999년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아파서 치료 중인 노동자가 현장 복귀하라는 말을 듣고 너무 힘들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조선소 폭발사고로 숨진 시신을 봤어요. 의사가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하더라고요. 유해가스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마지막은 한 활동가의 죽음이었어요. 부산중공업에서 지게차에 깔려 사망하셨어요."


 

"온몸이 종합병원이 되는 직종이 급식노동이에요. 손가락 절단, 화상 사고야 많이 봤지요. 치료는 힘들지, 임금은 없지, 산재 인정 과정이 길어지면서 포기하고 학교 복귀하시는 분들 많이 봤어요."


 

이들이 모인 공간 벽엔 흰 얼굴들을 그려 넣은 검은 천이 걸려 있었다. 얼굴들은 비어있다. 최대헌 사회자는 참가자들에게 이곳에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물었다. 산재로 세상을 떠난 사람, 산재를 인정받았으나 여전히 아픈 사람….

 

"2008년에 돌아가신 선배가 생각나요. 작업하다 청소차에 끼어 돌아가셨어요." 

 

"예전에 급식소에서 볶음 요리하다 큰 솥에 떨어져 숨진 분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을 초대하고 싶어요."


 

"친구가 2년 전 금요일에 동료들하고 조퇴했다가 그날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 병상에 있어요. 일의 연장이 아니라고 해서 산재 인정을 못 받았어요."
 

 

"광주 집배원이 추석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다쳤어요. 추석 때 많이 바쁘거든요. 아픈데도 출근 강요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도 계세요." 

 

"학교에 영어회화전공강사라고 있어요. 이분들은 1년 계약직이에요. 고용이 불안하다보니 갑질 피해를 많이 겪어요. 그중 한분한테 교무주임이 밤에 전화해서 그랬대요. '선생님 섹스 좋아하세요?' 저는 터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용이 불안정하다보니 피해자가 문제 삼길 바라지 않았어요. 저는 그 피해자를 초대하고 싶어요."

 

참가자들은 한 사람씩 나와 초에 불을 붙였다. 검은 천 위 흰 얼굴들을 촛불이 밝혔다.


 

"이제 그분들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무슨 부탁을 할 거 같나요."(최대헌 사회자)

 

"생명이 중요하니까...생명은 가장 첫째니까... 더 이슈화시키고.."


 

한 참가자는 목이 메 문장을 다 끝내지 못했다.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말할 거 같아요."


 

"가족들의 안녕과 편안함을 바랄 거 같아요."


 

"돌아가신 지 오래된 분들은 포기하셨을 거 같아요. 아직도 세상이 이런 걸요. 저희한테 세상을 바꿔달라고 더 이상 말씀 안하실 거 같아요. 차라리 이러실 거 같아요. 네 능력껏 죽지 말고 다치지 말라고."

 

사람으로 대해주면 마음의 상처는 안 남을듯


 

이제 본격적인 즉흥극에 들어갈 시간이다. 참여자들은 산재를 둘러싼 네 그룹으로 나눠 앉았다. 당사자, 가족, 사측, 노조다. 눈을 감았다 뜨며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그 역할 속으로 들어갔다.


 

산재 당사자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상황을 상상했다.


 

"저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요추 3번, 4번 수술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산재 1차 불승인이 났고 재심을 고려하고 있어요."


 

그러자 노조 쪽 역할을 맡은 참가자가 말했다.


 

"노조에 와서 상담하고 접수부터 세밀하게 하셔야지. (옆에 앉은 노조 역할 다른 참가자가 자기가 전달을 못 한 거라고 상황을 바꿔버린다. 잠시 당황) 2차 승인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조가 같이 하겠습니다."

 

산재 당사자 역할 참가자가 물었다.

 

 

"조합이 일관성이 있습니까? 집행부에 따라 바뀌는 거 아니에요?"


 

사측 역할을 맡은 참가자가 따졌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친 거 맞아요? 집에서 테니스 친 거 아니에요?"


 

산재 당사자 역할을 맡은 두 번째 참가자는 대못으로 손을 찔린 상황을 설정했다.


 

"신경에 조금 문제가 생겼는데 산재 신청할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공상처리 받으면 앞으로도 회사랑 별일 없이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산재 신청했다가 회사와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걱정이 됩니다."


 

노조 쪽 역할을 맡은 참여자는 이렇게 받았다. 


 

"저는 이런 고민이 잘못된 거 같아요. 교통사고 나면 당연히 자동차 보험으로 처리되잖아요. 일하다 다치고 아프면 산재로 처리하는 게 당연한 권리예요. 절차를 갖춰서 산재처리를 해야 회사에서 더 만만하게 보지 않아요. 갈굼은 본인이 감수할 수 있으면 하고 힘들면 노조와 함께 대처해야죠."


 

"노조에서 확실하게 같이 해주신다면 저도 같이 갈 의향은 있는데 얼마 전 직장동료 보니까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사쪽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이 상황이 반갑다.


 

"우리 파워가 커질 거 같은데요. 저런 노조를 왜 믿나? 우리를 믿어야지. 우리야 말로 가족으로 생각하지."

 

'현실 연기'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가족들이 목소리를 냈다. 아들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다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학 갈 때까지만 회사 잘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자는 피해 당사자 역을 맡은 참가자 2명에게 지금 기분을 물었다.


 

"혼자가 된 거 같아요. 절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제 손을 더 잡아 줬으면 좋겠어요. 사고 난 뒤에도 그전과 똑같이 대해준다면 그 삶을 충분히 견디고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손을 예전처럼 못쓴다고 눈치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원1, 조합원1 아빠1 이렇게만 보지 말고 사람으로서 따뜻한 말 한마디 손 한번 건네 줬으면 좋겠어요. 사람으로 대해준다면 몸의 상처는 남아도 마음의 상처가 안 남을 거 같아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산재신청 간소화, 홍보가 필요해


 

참여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했다.


 

"노동자들이 산재신청 절차를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특히 노조가 없는 중소 사업장에는 홍보나 교육 캠페인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지금은 산재 신청자가 업무로 인한 재해인 걸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사업주가 업무로 인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추가로 묻고 직업환경과로 넘겨 자동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승인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은 피해자가 동영상 직접 촬영하고 재해조사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해요. 산재 시스템 전반을 간소화해야 합니다."
 

 

"노조에서 산재 승인을 받은 동영상 자료 등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집행부가 누가 됐든 산재 관련 노하우는 축적이 되도록 독립기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한 번 당했는데 그 뒤로는 반대쪽에서 차가 오면 운전을 못 하겠더라고요. 회사에서 다친 분들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복귀 뒤에 같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면 회사에서 적절하게 업무변경을 시켜줘야 합니다.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노조와 사측이 협의해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여러 개선책을 쏟아낸 참가자들은 이제 검은 천 위 흰 얼굴들 앞으로 돌아왔다. 그 앞에 놓은 촛불들을 하나씩 껐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의 의미였다.


 

산재 사고 사망은 OECD 최고 수준인데 발생률은 OECD 평균 1/4?


 

- 통계로 보는 한국사회 산재 은폐 현실과 산재 승인 과정의 어려움


 

산재 신청과 심사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6411 사회극장 참가자들의 말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산재 3건 중 2건은 은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 재해자 10명 중 4명 가량은 산재를 신청하고도 승인받지 못한다.

 

일단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산재 사고 사망률과 발생률의 차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OECD 국가의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 실태 비교 분석>을 보면, 2017년 한국의 노동자 10만 명 당 사고 사망자는 3.61로 OECD 회원국 중 5위(회원국 평균은 2.43)였다. 반면, 한국의 산업 사고 발생률은 OECD 평균의 1/4 정도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두 비율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망 사고는 감추기 어렵다. 사망에 이를 만큼 큰 산재 사고가 아니면 신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망 사고만큼은 아니지만 은폐가 어려운 '치명적 산재 사고(발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사망이 발생한 산재 사고)' 수도 전문가들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한국의 노동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재 사고 수는 5.3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8.2)와 터키(6.9) 다음으로 많았다.


 

실제 산재 은폐 건수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월 발표한 논문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2011년 ~ 2017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해 산재 은폐 비율을 66.6%로 집계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산재 은폐·미신고 적발현황'을 보면, 최근 5년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신고하지 않고 건강보험 진료를 받다 적발된 건수는 18만 9721건이다.

 

은폐의 문턱을 넘어 근로복지공단에 신고된 산재는 대부분 승인받는다. 근로복지공단이 2019년 발표한 '최근 10년간 산재 통계'를 보면, 2018년 산재 인정률은 91.5%다. 

 

 

단, 질병 산재로 한정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63%에 그쳤다. 종류별로 보면, 정신질병 73.5%, 근골격계질병 70%, 기타 64.8%, 뇌심혈관계질병41.3% 등이다.

 

질병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하기까지 긴 기간이 걸린다는 점도 한국 산재 보상 제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업무상 질병의 산재 처리 기간은 평균 172일이었다. 산재 처리 기간이 길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노동계에서는 업무상 질병 인정까지 최장 8단계를 거쳐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의 까다로운 심사 과정이 산재 피해자의 어려움을 가중한다고 비판하며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용락 기자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011428225383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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