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미만 사업장 어려우니 적용 제외?
‘노동자 목숨 차등’은 법취지 어긋나
‘다른 세계 사는’ 정치인 움직이려면
시민이 문제를 드러내고 이슈화해야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과 권미정 사무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로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고 김용균씨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과 권미정 사무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로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고 김용균씨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겨레S] 인터뷰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권미정 사무처장

 27일, 경남 창원시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30대 노동자가 혼자 작업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23일, 서울 금천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화재 진압용 약제가 누출돼 노동자 두명이 숨졌다. 22일, 경기 시흥시의 한 금형 제조공장에선 40대 노동자 한명이 기계에 끼여 숨졌고, 인천 연수구의 한 공사 현장에선 60대 노동자 한명이 철제 빔에 깔려 숨졌다. ‘일하러 갔다 목숨을 잃었다’는 기가 막힌 사연은, 이렇게나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이런 죽음을 막아보려고, 지난해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찬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은 지난 1월 제정됐고,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내년 1월27일 시행된다(5인 이상~50인 미만은 2024년부터). 하지만 이 법은 구멍이 너무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도, 애초에 이 법을 만들고자 했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바로잡을 기회는 없는 걸까? 지난해 8월 이 청원을 올린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함께 발 벗고 나섰던 권미정 사무처장을 26일 오후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만났다.
사망 3년, 기업·정부 달라진 건 없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계기가 된, 김용균씨 사망 사고 관련 1심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다.김미숙 이사장(이하 김) 원·하청 모두 사고 당사자한테 책임을 떠넘긴다. 용균이가 사고를 당한 석탄운반시설 밀폐함 점검구는 밖에서 안 보이기 때문에 몸을 집어넣고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 했다. 그런데 회사 쪽은 ‘들어가면 안 되는 장소인데 들어갔다’고 떠넘긴다. 용균이 동료인 증인들이 ‘우리가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갔냐, 안 들어가도 되게 해달라고 28번 시정 요구해도 묵살하지 않았냐’고 해도, ‘지금은 안 들어가지 않냐’고 따진다. 용균이 사고 이후에 그렇게 바뀐 건데도 말이다. 다른 산업재해 사고 재판에 가봐도 똑같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동자가 마음대로 일해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원청이 ‘저기 뭐가 쌓여 있다’고만 했을 뿐, 직접 ‘치우라’는 말은 안 했다며 피해 가려는 식이다.권미정 사무처장(이하 권) 사고 요인이 뭔지, 누가 문제인지가 중요한데 법적으로 그런 책임을 못 묻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사고 당사자한테 떠미는 거다. 김용균씨 3주기(12월10일)가 다 되도록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그래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쉬우나마 만들어졌다. 시민들의 관심도 커지지 않았나. 기업과 정부, 정치인의 인식 변화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이 법 통과시킬 때 더불어민주당은 당론 채택도 안 했다. 찬성 여론이 72%나 됐으니 떠밀려서 통과시킨 거지. (정기국회 때 처리를 안 해서 나와 산재 사망자 유가족들이 29일 동안) 단식할 때도 주요 당직을 맡은 의원들이 와서 ‘우리 믿고, 그만 고생하시고 집에 가시라’는 말만 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해서 그런지 기업 눈치만 보는데, 뭘 믿으란 말인가. 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율해서 평지로 가게끔 만드는 게 정치인들 역할 아닌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세번째) 등 산업재해 사망자 유가족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지난해 정기국회가 끝난 12월9일 오후 국회 중앙홀 앞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세번째) 등 산업재해 사망자 유가족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지난해 정기국회가 끝난 12월9일 오후 국회 중앙홀 앞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법 처리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뭔가. (1월8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을 제외하는 걸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해서, 회의를 방청하던 유족들이 반발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등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일괄적으로 빼지 말고 추가 논의를 하자고 했는데, 김도읍 의원이 벌떡 일어나면서 ‘그럼 당신들끼리 하라’며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이랑 나가려고 하더라.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일 열악하고 사고도 제일 많이 나는데…. 그걸 빼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심사숙고할 줄 알았는데,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5인 미만은 뺄 생각이었고 그게 안 되면 엎어버리려는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법사위원장이 바로 땅땅땅 방망이 치면서 급하게 법안을 통과시키더라.(애초 법안 어디에도 없던 ‘5인 미만 사업장’이 불거진 건 1월6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5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 제외를 주장했고, 국민의힘이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해 전체회의에 이런 내용의 법안이 올라갔다. 전체회의에선 추미애 장관이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 방지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도읍 의원이 “그러면 밀어붙여서 날치기를 하시든, 그간 했던 대로 하십시오, 갑론을박하지 마시고. 저희들은 퇴장해드리겠습니다”라며 반발했다. 방청 중이던 유족들이 왜 추가 논의를 하지 않냐고 지적했지만, 법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사업장 규모 따라 노동자 목숨 차등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건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 많다.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노동자의 목숨에 차등을 두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그만큼의 국민은 사업주가 어렵기 때문에 일하다 목숨을 잃어도 된다는 건가? 소규모라 어려우니 안전조치를 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도록 강제해야 된다. 부족하긴 해도 우리가 이 법을 통과시켜야 된다고 했던 건, 산재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분명히 밝히면서 모두의 생명을 보장하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5인 미만 사업장을 뺀 건, 그 취지 자체를 망가뜨린 거다.인과관계 추정(산재 은폐를 시도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빠진 것도 심각하다. 모든 증거를 회사가 갖고 있는데, 피해자가 자료를 요구해도 안 주면 그만이다. 최소한, 피해자 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도록 피해자에게 정보 공개 청구 권한이나 현장검증 참관, 조사 보고서 공유 권한은 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진실규명 과정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

 

지난 4월28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에 참석한 김미숙 이사장. 태안/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4월28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에 참석한 김미숙 이사장. 태안/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얼마 전 통과된 시행령도 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2인1조 작업을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이 법을 만드는 계기가 된 김용균씨 사고에 비춰봐도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때도 시행령이 법보다 더 후퇴해서, 이번만이라도 안 그러길 바랐는데…. 기업이 법을 지키게 하려면 처벌이 강해야 되는데, 처벌 규정엔 하한도 없다. 기업이 법을 지키게 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갈 궁리만 하게 한 거다. 과로사,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 같은 데도 적용이 안 된다.―그런데도 경영계에선 지금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시행령도 과도한 규제라고 하는데. 노동자를 자기들 돈 버는 데 쓰는 부품으로 취급하는 거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개발이었지만, 이젠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할 의무를 다하는 게 기업 운영의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 지금은 이걸 경영계가 거부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힘을 갖고 정부와 경영계를 압박해야 한다.―일하는 사람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할 기본 규칙을 만드는 게 왜 이렇게 힘든 일일까.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없애겠다고 했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저 위에 올라가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을까. ‘손발 노동’ 운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마찬가지로 상식을 벗어난다. 정치인들 대부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것만 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우리와 거리감이 엄청나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사람들은 서민들의 삶도 모르고, 노동 문제가 와닿지도 않을 거다.

 

이런 죽음 다시는 없도록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과 권미정 사무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로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과 권미정 사무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로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동계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시행령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활동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제 대선이니, 안전한 나라를 지향하는 여러 단체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지금 법엔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빠졌는데, 이걸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뿐만 아니라 이 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김용균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이 갈수록 위험해지는 게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 구조 때문이라는 거다. 삶 자체가 불안정하고 일자리를 떠돌다 보니, 내가 어디서부터 아프게 됐는지도 알 수가 없다. 위험해서 그 일은 못 하겠다고 말할 권리도 없다. 노동자 밀어내기, 돌려막기, 일자리 쪼개기가 존재하는 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그 목소리를 조금 더 확대하는 게 김용균재단의 역할인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민을 위한 법은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시민들이 그 법을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정치인들이 받을 수 있다, 우리도 국회 밖에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누군가는 문제를 드러내고 이슈화하는 역할을 해야 정치인들도 움직인다. 사실 이렇게 큰 아픔을 갖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 만날 여기저기 가서 그 얘길 끄집어내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오히려 더 속을 긁어내야 하는 행동이라서. 새로운 유족들을 찾아가는 일도 나한테는 다 트라우마다. 그래도 활동하는 건, 이런 죽음을 막아보고 싶어서다. 자식 하나 있는 거 애지중지 키워서 억울하게 잃은 엄마가 못 할 게 뭐가 있나.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017299.html?_fr=mt1#csidx92562da489f0135b6ef11c7d34839e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