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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탕 사과’에 그친 윤석열의 광주 방문, 시민들도 ‘거부’

오월어머니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가로막힌 윤석열, 사과문만 읽고 퇴장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방문을 항의하는 시민들이 충혼탑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뉴시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전두환 옹호' 망언과 '개 사과'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지만 분노한 민심만 확인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진정성 있게 사과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윤 후보의 사과는 맹탕이었고, 광주 시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릎 사과도, 전두환 비석 밟기도 없었다. 결국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은 "일방통행 사과", "보여주기식 사과"라는 뒷말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오월어머니 반발에 가로막힌 윤석열
원론적인 사과문만 읽고 발길 돌려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방문을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막혀 참배단까지 가지 못한 채 도중에 멈춰 서 참배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비를 많이 맞긴 했다.ⓒ뉴시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4시 광주 북구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현장은 윤 후보가 도착하기 한참 전인 오전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오월어머니들과 시민들이 윤 후보의 참배를 막기 위해 속속 모여들면서다. 이들은 윤 후보가 오월 영령에게 참배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해 왔지만 윤 후보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오월어머니들과 시민들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우비를 입고 참배탑에 저지선을 만들었고, 경찰은 5.18민주묘지 출입구에서부터 촘촘히 스크럼을 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윤 후보가 도착한 뒤 현장은 더욱 아수라장이 됐다. 윤 후보의 방문에 반발하는 이들과 윤 후보의 지지자, 경찰이 한 곳에 모여 뒤엉켰고 한 발짝도 떼기 힘든 상황이었다. 두 세 걸음 가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한 끝에 참배탑 앞까지 다다랐으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윤 후보는 그 자리에 멈춰서 참배를 시작했다.

이후 윤 후보는 '사과문'을 꺼내 낭독했다. 윤 후보의 목소리는 오월어머니들과 시민들에게까지 가닿지 않았지만 윤 후보는 그저 준비한 대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발언"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렸다.

윤 후보는 "저는 40여 년 전 5월, 광주 시민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5월 단체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에 대한 조건으로 언급했었던 내용도 모두 빠져 있었다. 전두환 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물론, 5.18 정신을 헌법에 담아내겠다는 의지 표명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약속도 없었다.

짤막한 사과문을 읽은 뒤, 윤 후보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광주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저분들의 마음을 제가 십분 이해한다"며 "우리가 5월 영령에 분향도 하고 참배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조해주셔서, 제가 분향은 못 했지만 사과드리고 참배할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5.18 정신이라는 건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또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이 개정될 때 반드시 올라가야 된다고 늘 전부터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주장이 반복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윤 후보는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표현의 자유 문제도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5.18 정신이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허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5.18 정신이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어떤 평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본질을 허위 사실과 날조로써 왜곡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말뿐인 사과'에 분노 여론은 여전
5월 단체들 "지극히 실망, 사과 왜 하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2021.11.10.ⓒ사진 = 뉴시스

윤 후보는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하기 전,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고 홍남순 변호사의 생가를 방문해 유족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홍남순 변호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에 항의하는 행진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5.18구속자협의회장을 맡으면서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앞장선 인권변호사다.

차담회에는 홍 변호사 차남인 홍기훈 전 의원과 5남 홍영욱 씨, 종친회 인사들이 참석했다. 홍 전 의원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열린우리당,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등을 차례로 거친 정치인이다.

차담회는 예상외로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같은 날 '홍남순변호사기념사업회'에서 "고인의 시대정신과 숭고한 유훈을 정략적 정치 행보로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한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차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역대 대통령 후보 중 윤 후보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며 "영광"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일부 참석자는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윤 후보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힘을 받으시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후 윤 후보는 광주로 이동해 5.18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이 붙잡혀 와 고문과 탄압을 받았던 옛 상무대 영창을 재현한 곳이다. 홍남순 변호사 생가와 5.18자유공원을 방문하는 일정에서는 윤 후보의 지지자 수십 명이 모여 윤 후보를 응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

윤 후보가 직접 광주를 찾아 사과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윤 후보 사과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여전한 상황이다.

당장 5.18민주유공자유족회·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5.18구속부상자회 등 5월 단체들과 5.18 기념재단은 윤 후보의 광주 방문에 대해 "지극히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들은 "도대체 사과를 왜 하는지 의심스럽다. 사과를 받아야 할 5.18과 시민들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며 "윤석열 후보의 사과 행보는 분노를 넘어 '사과를 받든지 말든지 나는 나의 일정대로 갈 뿐'이라는 오만함마저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은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놓치지 않겠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며 "우리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구체적 공약을 예의주시하겠다. 사과의 마음이 어떻게 공약과 정책으로 구체화 되는지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윤 후보의 사과문은 맹탕뿐"이라며 "전두환 정치에 대한 반성 없는 광주 방문은 결국 보여주기식 정치쇼였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도 "윤 후보의 광주 방문 사과는 '억지 사과', '일방통행 사과'에 불과했다"며 "사과받을 사람을 향한 사과가 아닌 벽보고 사과문만 읽고 퉁 치려는 일방적 사과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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