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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나의 겸손함은 두 표가 되고, 나의 오만함은 반 표가 된다

이완배 기자 

발행2022-01-10 06:58:32 수정2022-01-10 07:02:09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명예교수가 과거 쓴 글 중 한 대목이다. 이 교수가 대입 수시모집 면접관이 되어 면접을 봤다. 한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을 너무 잘 하기에 이 교수는 속으로 ‘만점을 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면접을 마치려는 순간, 그 학생이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면접관들을 돌아보며 “입학식 날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란다. 성적으로 보나 면접 실력으로 보나 자기는 합격이 분명하다는 뜻이었을 게다.

순간 면접관들이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교수는 “우리가 그 친구에게 몇 점을 줬는지는 영원한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모른다”고 회고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 학생이 이 교수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교수는 그 글에서 “왜 그 학생은 그런 쓸모없는 말을 해서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의 제목은 ‘역시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다’였다.

겸손함의 진짜 위력

흔히 우리는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경영학자와 심리학자 중에서는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꽤 많다.

대표적 학자가 비즈니스 심리학의 전문가로 꼽히는 토마스 샤모로-프레무직(Tomas Chamorro-Premuzic) 런던대학교 교수다. 그는 “높은 자신감 덕분에 능력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능력 환상’에 빠져 노력을 게을리 해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무슨 뜻일까? 일단 자신감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어떤 점이 부족한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모르는 것조차 알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이게 바로 능력 환상이다.

이런 능력 환상에 빠지면 당연히 자신감과 진짜 능력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자신의 능력은 1쯤 되는데 자신감은 10쯤에 이르는 것이다. 프레무직은 이 9의 격차를 ‘자신감과 능력 사이의 격차(confidence-competence gap)’이라고 부른다.

진짜 문제는 자신감이 높은 사람의 경우 이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무리 자신의 약점에 대한 신호가 와도 그걸 고치려 하지 않는다. 왜? 나는 위대하니까! 내 전략이 안 먹힌다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잘못이니까!

반면 겸손함의 진짜 위력은 자신의 약점에 관한 신호가 왔을 때 그 약점을 메우려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데 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실제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겸손한 사람일수록 유능한 반면,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일수록 무능할 확률이 높다.

.ⓒ김철수 기자

두 학자는 실험 대상자들을 상대로 독해와 문법 능력, 운동 능력, 자동차 운전 실력, 남을 웃기는 유머 능력 등 다양한 영역의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런데 사전 설문에서 “내 능력이 상위 40% 안에 들 거야”라고 자신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 능력 측정에서 하위 25%에 속했다. 반면 “내 능력은 상위 30%에 못 들 거야”라고 겸손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 능력 측정에서 상위 25%에 속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겸손한 척 하는 것과 진짜 겸손한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은 겸손을 ‘성공의 스킬’ 정도로 인식하기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진심으로 보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겸손한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고치려 하기에 개선과 발전의 삶을 살 수 있다.

나의 한 표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

난데없이 겸손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다. 올해가 바로 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유권자로서 중요한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열망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꼭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리가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한, 나의 한 표를 물리적으로 두 표로 늘릴 방법은 없다. 1인1표제는 평등선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방법은 없어도 나의 한 표를 두 표로 늘릴 정서적인 방법은 분명히 있다. 유권자로서 겸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겸손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거 때 특정 후보 지지자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아는 척으로 가득 찬 거만한 설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설득하면 표가 늘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늘기는커녕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표를 깎아먹기 십상이다.

이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 지금 이따위로 살면 조만간 불지옥에 떨어져. 당장 내가 믿는 신을 믿어야 해!”라며 아는 척과 허세로 가득한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는다면, 그 종교가 믿어지고 싶던가?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또 열정이 강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이 허세 가득한 훈계질을 하고 다닌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믿는 신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그 신을 욕보이는 것이다.

선거 운동을 직접 해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돌아다닐수록 표가 불어나는데, 어떤 사람은 돌아다닐수록 표를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정치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일수록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사람은 자신감이 과도해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아예 모른다. 그래서 그의 열정은 지지하는 후보에게 득이 되지 않고 손실이 된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한 표 한 표가 더 소중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가 되면 지지자들은 진심으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은 성과를 내기를 열망하게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 아는 척 대신 경청을 선택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상대가 하는 말을 듣자. 나의 한 표는 때에 따라 두 표가 될 수도 있고, 반 표가 될 수도 있으며, 마이너스 표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우리에게 진정으로 그 한 표가 더 필요하다면,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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