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매체, 차별금지법 폐지 주장하는 단체 의견 광고 게재
의견 광고 요청받은 한겨레 “신문 논조와 맞지 않아 싣지 않기로”

“차별금지법 반대, 낙태법 개정안 입법”. 

지난 10일자 한국일보 22면에 실린 전면 ‘의견 광고’ 제목이다. 오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낙태법 개정안을 입법할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단체 770곳이 연합해 광고를 냈다. 같은 날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국민일보·한국경제·매일경제·서울경제 등에서도 같은 광고를 실었다. 

▲ 1월 10일자 한국일보 22면 전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광고.
▲ 1월 10일자 한국일보 22면 전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광고.

해당 광고가 실린 날 한국일보는 1면과 6면에 대선 국면에서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의 목소리와 정책이 사라진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한국일보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임푸른 정의당 트랜스젠더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수정 탈시설장애인당 대선 후보 등을 인터뷰했다.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며 장애인 등 약자 정책이 부재한 이번 대선은 퇴행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같은 날 광고와는 상반된 내용의 기사를 낸 것이다.

▲ 1월 10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여성,소수자 등 약자 정책 빠진 대선...차별적이고 퇴행적'(위), 6면 기사 '"李尹, 소수자 목소리 들을 생각 없는 듯...정치인은 '차별' 문제의식 있어야"
▲ 1월 10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여성,소수자 등 약자 정책 빠진 대선...차별적이고 퇴행적'(위), 6면 기사 '"李尹, 소수자 목소리 들을 생각 없는 듯...정치인은 '차별' 문제의식 있어야"'

한국일보 논조와 상반된 광고가 실리자 한국일보 기자에게 항의가 있었고, 내부 논의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는 미디어오늘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이 지향해야 할 인권의 영역이라는 측면에서 차별금지법 폐지 전면광고가 실린 건 적지 않은 문제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전했다. 아울러 “이번 일을 광고 게재와 관련한 내부 방침이나 기준 마련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손용석 한국일보 광고전략국장은 미디어오늘에 “기본적으로 광고 지면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한국일보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너무 배제돼서는 안 되고, 의견 광고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광고국 내에서 게이트키핑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일보의 가치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독자분께 심려 끼치지 않도록 더 신중한 판단을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겨레는 해당 의견 광고 게재 요청을 받았지만, 싣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환봉 한겨레 소통데스크는 미디어오늘에 “차별금지법 반대 광고 사안에 대해서는 편집과 광고 분리의 문제보다는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택희 한겨레 광고국 상무는 “독자와 충돌이 벌어질 만한 사항은 내부에서 토론하고, 광고심의위를 거쳐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2016년부터 광고 게재 세부준칙을 마련해 가동해왔다. 준칙은 게재 의뢰를 받은 광고가 기준에 부합하는지 자체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자사 광고심의위원회를 소집하도록 했다. 광고심의위는 편집인과 광고 담당 부서 임원, 편집국장, 논설위원실장, 전략기획실장 등 5명으로 구성한다. 

한겨레는 2015년 10월19일 1면에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선전하는 교육부 의견 광고를 실었다가 논란이 일었고, 내부 토론 끝에 해당 준칙을 세웠다. 당시 해당 광고를 두 번 게재하기로 했었지만, 한 번은 내부 토론을 통해 싣지 않았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소수자 목소리 하나하나 언론에 나가는 게 소중하고 별로 없는 기회인데, 돈을 모으면 폭력적 발언을 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정”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이어 “언론은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발굴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면 어느 정도 폭력적인 목소리는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뒤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실을 수 없는 광고는 싣지 않는 언론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신문과 광고. 사진=gettyimages.
▲ 신문과 광고. 사진=gettyimages.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허위 정보가 아닌 의견 광고를 사회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평소 신문사의 방향과 많이 상반되는 광고를 내는 것은 독자에게 혼란을 주고 보도의 신뢰성 문제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사무처장은 이어 “평소 인권지향적인 보도를 추구하는 언론사가 광고는 반인권적인 광고를 실으면, 독자가 해당 신문 보도 내용에 대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광고가 수익과 직결되는 사안일지라도, 언론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 자율학부 교수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건 (그들의) 권리이기도 하다”고 짚은 뒤 “광고에 실리는 내용이 반사회적 또는 반인륜적이면 의견 광고라도 광고 지면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해당 광고를 집행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한겨레, 경향신문은 우리 광고를 늘 안실어준다. 몇번 시도를 했는데 안실어줘서 접촉을 아예 안하려고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