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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 벌어 절반 넘게 갚는데도…‘빚의 족쇄’ 찬 청년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9/13 11:36
  • 수정일
    2022/09/13 11: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2-09-13 05:00수정 :2022-09-13 11:01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기자가 직접 대부업체에 취업
대출 연체 상환 추심업무 맡아
독촉전화 건 채무자 절반 20·30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비롯한 ‘도덕적 해이’부터 자산도 직업도 불안정한 ‘세대의 비극’까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사실도 있다. 빚이 임계에 달한 2030의 비율이 11.3%로 전 세대 평균(6.3%)의 두배에 가깝다는 통계, 그리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역시 위태롭게 한다는 경험칙이다.
시각이 갈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안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청년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 3주일 동안 일했다. 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빚을 진 채 살아가는 16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청년 부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30대에 진 빚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중장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겨레>는 청년 부채 문제를 해부한 ‘저당 잡힌 미래, 청년의 빚’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두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일부러 전화 안 받은 게 아니에요. 휴대폰 요금을 못 내니 정지가 되어서요…. 월급날 돈 받으면 정지 풀어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유난히 작은 목소리로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34살 ㄱ씨는 대부업체의 오랜 고객이다. 지금 이 순간 그를 주눅 들게 하고 있는 빚은 고작 100만원. 그것도 8년 전인 2014년에 빌린 돈이다. 당시 ㄱ씨의 나이는 26살이었다. 8년 동안 낸 이자는 225만원으로, 이미 원금의 두배를 넘겼다. 하지만 8년 동안 갚은 원금은 3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성실한 채무자였던 그의 연체가 잦아진 것은 2018년 상반기 이후부터였다. 그의 직장 기록에 드문드문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과 같다. 일자리가 위태로웠던 와중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구직난을 겪어온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사는 친구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전화가 안 되면 그쪽으로 걸어주세요.” 어렵게 구했을 직장에서 추심 전화를 받은 그의 황급한 부탁이 이어졌다. 1만6천원 남짓의 한달 이자를 제때 구하지 못한 ㄱ씨는 휴대전화 착신 정지를 뚫고 직장으로 걸려온 추심 전화에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가진 재산이나 신용이 없을 때, 또는 대출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서는 돈을 빌리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찾는 제도권 금융기관이다. 그다음은 사채나 일수나 불법 사금융만 남는다. 그렇기에 대부업체에서 빚을 시작하는 이는 드물다. ㄱ씨의 다른 채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소액의 이자마저 갚지 못한 것은 다른 곳에서 빌린 돈 때문으로 짐작된다. 대부업체를 찾은 대부분의 채무자가 그랬다.
 
지난 7월 기자는 3주 동안 서울의 한 대부업체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맡은 일은 약정일(이자 및 원금 납입일) 직전이나 약정일, 연체가 시작된 날에 매일 300명 정도에게 전화를 걸어 이자나 원금을 갚으라고 말하는 추심 업무였다. 그중 절반인 150여명은 20~30대 청년이었다. 명단은 날마다 바뀌지만 청년 비율은 변함없었다. 전화를 받는 경우는 10% 남짓이었고 청년들은 그 비율이 더 적었다.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20~30대 빚진 청년 100여명을 만났다. 저마다 빌린 액수와 기간, 연체 횟수는 달랐지만 힘없고 위축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
 
대출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대출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500만원 때문에 채무 불이행자 되는 청년들

 

또 다른 공통점은 ㄱ씨처럼 소액의 빚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것이었다. 애초 신용이나 담보가 튼튼하지 않으니 많은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간신히 대출 승인이 나더라도 최대 20%의 대부업체 이자를 내는 데 허덕이느라 원금을 갚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출 만기가 다가왔다는 안내 전화를 할 때 원금을 갚겠다고 답변한 청년 고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만기 연장하고 이번 달에도 이자만 내도 되죠?”라고 모두 되물었다. 빚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만기 연장은 수월했다. 직장과 자택 주소에 변동이 없는지 확인한 뒤 온라인 계약서만 받으면 된다. 연락을 받지 않을 경우엔 자동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그렇게 쉽게 채무자의 신분 역시 만기 없이 연장됐다.

 

자산이 없고 직업이 불안정한 청년에겐 몇백만원의 대출도 풀기 어려운 족쇄였다. 50만원 이상을 3개월 넘게 연체하는 등 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되는데, 20대 금융채무 불이행자 중 41.8%는 500만원 이하의 대출금 때문에 각종 금융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30대는 그 비율이 29.4%이지만, 500만원 이하 대출로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는 비율은 청년층이 전 세대(평균 25.5%)에서 가장 높다.(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 한국신용정보원) 그만큼 적은 대출금의 적은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청년 채무자가 많다는 의미다.

 

연체 독촉했던 청년 90%는 다중채무자

 

적은 돈을 10년 가까이 갚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중채무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ㄴ씨는 10년 전인 2012년에 500만원을 빌린 뒤 원금은 한푼도 갚지 못한 채 이자만 1천만원 넘게 냈다. 다른 곳에서 받은 대출까지 포함하면 대출 원금은 2억원이 넘는다. 연체가 잦았던 그는 그날도 연체 안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3주간 통화한 청년들의 90% 이상은 ㄴ씨와 같은 다중채무자였다.

 

다중채무의 악순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30대 초반이던 2016년 4건의 채무가 있었던 ㄷ씨는 6년이 지난 지금 대출이 28건으로 늘었다. 빚이 늘어나도 청년들은 계속 추가 대출을 시도한다. 20대 초반에 2500만원의 대출을 안은 채 대부업체 문을 두드렸던 ㄹ씨는 3년 만에 55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ㄹ씨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대부업체는 그의 추가 대출 신청을 11차례나 거절했다. 대출 신청이 한번 거절되면 두 달 뒤에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ㄹ씨는 2년을 넘게 추가 대출의 문을 두드려온 것이다.

 

약정일 안내 전화를 걸었던 20~30대 청년 30명을 무작위로 뽑아 살펴보니 이들은 평균적으로 150만~200만원 정도의 월소득을 거뒀고 그 돈의 52%를 빚을 갚는 데 썼다. 또 10건 가까운 채무에 얽혀 있었다. 빚을 갚는 데 쓰고 남은 돈으로는 생계마저 꾸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많게는 월급의 80% 혹은 100%를 이자 상환에 써야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미 몇천만원, 심하게는 1억원대의 빚을 갖고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으로 대부업체를 찾았다. “이 정도면 돌려 막기도 쉽지 않고, 빚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이지. 좋은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같이 채권을 살펴보던 한 직원이 말했다.

 

청년층 다중채무 문제의 심각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대부업을 포함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한 다중채무액 증가율은 전 연령에선 22.1%이지만 청년층(39살 이하)에서는 그 수치가 32.9%로 치솟았다.(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금융감독원) 그사이 늘어난 청년층의 다중채무액만 39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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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추심이 필요했던 이유

 

대부업체 직원은 독해져야 한다. 한명의 다중채무자에게서 이자를 받아내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과 대부업체가 달려들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일한 대부업체는 약정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안내 전화를 돌렸다. 업무 시작 첫날, 아직 연체도 안 했는데 독촉하는 것이 미안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더니 팀장이 바로 호출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얕보이면 안 돼요. 여러곳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먼저 갚을 채권자를 태도에 따라 가릴 수도 있어요.” 꾸지람을 듣고 난 뒤 같은 팀 직원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팀장 편을 들었다. “기싸움을 잘하는 직원이 성과가 좋긴 하더라. 채무자들 입장에서 ‘이런 전화 받느니 갚고 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현재 대부업법은 과거보다 추심에 대해 훨씬 엄격해졌다. 고객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해 사생활이나 업무의 평온을 해칠 경우 처벌을 받는다. 고함이나 폭언은 내규에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 때문에 합법과 기싸움의 경계를 오가며 빚을 독촉하는 게 대부업체 상담원의 기술이다. 채무자들에게 돈이 생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날 채권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부지런한 독촉’뿐이다.

 

실적이 저조해 단체로 질책을 받은 옆팀은 하루 종일 언성을 높였다. “이번달은 그래서 언제 주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기다리기 곤란할 것 같은데요.” “매번 이렇게 늦으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저희도 바쁜데 고객님은 매번 핑계만 대시고. 이유도 제대로 대답 안 하시잖아요.” 냉랭한 어조가 뿜어내는 긴장감은 채무자가 아닌 직원들까지 숨을 죽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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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독촉 전화에 대한 대응도 세대별로 갈렸다. 중장년층에선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이른바 ‘상담 유의’ 고객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청년층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집세가 없어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어요.” “월급만으로 이자를 갚기 어려워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티브이(TV) 수신료 2500원이 이중인출되어 이자를 갚을 통장 잔액이 남아 있지 않아요.” 말을 잇는 침묵에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빚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막연하기에 청년들은 그저 죄송할 뿐이다. 지루한 줄다리기 같은 통화음 끝에 전화를 받은 청년들이 무턱대고 말했다. “너무 죄송해요. 꼭 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월급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어쩌죠. 내일까지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간곡히 부탁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약정일 이전에 안내 전화를 할 때는 “아직 돈 내는 날도 아닌데 전화를 하냐”고 투덜댔던 한 청년은 연체가 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통화에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얼굴도 모르는 상담원에게 간절하게 죄송해야 할 정도로 그들 수중에는 몇만원이 없었다. 그 몇만원을 약정일을 이틀 넘도록 납입하지 못하면 이들의 추심은 다른 팀으로 넘겨진다.

 

맥없는 목소리들을 상대하다 덩달아 울적해져 전화를 끊을 때면 교육 기간에 상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마 화내고 욕하는 고객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반응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상담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인생에 화가 나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추심 전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고함이 아니었다. 얕은 한숨 소리였다. 끈질기게 전화를 시도하는 상담원 때문인지 혹은 이번에도 제때 입금을 하지 못한 자신을 향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향도 없이 들릴 것이란 기대마저 없는 한숨. 채무의 덫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청년들은 화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지쳐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취재했나?

<한겨레> 기자는 법률 검토를 받아 대부업체에 취업해 1주일 교육을 거쳐 2주일간 추심 업무를 맡았다.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출 시장에서 청년 채무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사자 취재와는 다른 구조적 측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부업체에서 받은 임금은 청년 부채 해결을 돕는 단체에 전액 후원한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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