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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도처에 지뢰밭…한국, L자형 침체 빠질까

등록 :2022-10-03 05:00수정 :2022-10-03 09:01

 
미 인플레 전쟁 통화긴축 장기화
의존도 높은 중국침체 ‘겹악재’
유럽 ‘가스 쟁탈전’에 불똥 튀어
“당국, 통화·금융 최적정책 펴야”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까. 세계 각 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싹튼 위기가 서로 뒤엉켜 각지로 전파되며 지뢰밭이 퍼져가고 있다. 미국의 공격적인 통화 긴축, 중국의 가파른 경기 둔화, 유럽 에너지 위기 등 세 갈래로 밀려온 먹구름에 한국 경제의 앞날은 한층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환율·주식·채권 등 금융시장 쪽은 물론 기업의 수출·생산·투자 및 민간 소비 등 실물경제까지 동반 경고음이 커지면서 당장 향후 몇 개월이 가장 어려운 시절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분석가들 사이에서 ‘내년 국내외 경기침체 진입’은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당국이 급격한 경기 위축 방어를 위해 최적의 통화·금융정책 조합을 펼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 물가 ‘종속변수’ 된 세계 경제
 
 미국의 통화긴축 행보는 점차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발표한 8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2% 올라 시장예상치(6.0%)를 넘어섰다. 미국 물가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것이 확인된 이날,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은 뉴욕 연설에서 “통화긴축의 후퇴를 피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에도 인플레이션과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화긴축이 길어질수록 한국은 여러 위험을 동시에 맞닥뜨려야 하는 처지다. 당장은 원화 가치 하락과 금융시장 변동성을 관리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연준이 ‘감수’하려는 미국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 ‘강달러’ 때문에 단기외채 지불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도 무시 못할 위험 요인이다.
 
 
 
 

 

세계 경제가 일제히 미국 물가의 종속변수가 된 상황에서, 현재까지 한국의 정책대응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 차례 구두개입과 한국은행-국민연금 외환스와프 체결,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방안 발표, 국채 긴급 바이백 등 순차적으로 시장 안정화 카드를 꺼내놨지만,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을 돌파했다.

 

외환당국은 금융기관 등이 달러 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달러 유동성 경색’ 발생 징후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장마가 오는데 장마를 안 오게 할 방법이 우리 힘으로는 없다”며 “부실한 곳에서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가 지난달 30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컨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한 것도 “만일의 경우 양국이 유동성 공급장치를 긴밀히 협의해 실행하자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외환당국 관계자는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해서는 “깊이와 길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경기가 완만하게 둔화했다가 회복하는 유(U)자형이 아닌, 긴 시간 이어지는 엘(L)자형이 될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당장 긴축의 고비가 지나더라도, 이제는 과거와 같은 저물가 시대를 뒤로하고 중물가 시대에 적응해야 하고, 구조적인 경기 변화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며 “이런 경우 세계적으로 성장률이 한 단계 주저앉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금융위기 땐 세계 경제 회복 이끌었지만…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의 회복세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세계은행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전망한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8%로, 중국 정부가 올 3월 제시한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5.5%)의 절반에 그친다. 미국 등 주요국과 정반대로 금리를 내리며 경기 부양책을 썼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고강도 코로나 방역정책을 고수하는데다 중국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진 탓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9월 133억7천만달러로 1년 전보다 6.5% 줄어 4개월 연속 감소했다.

 

현재 상황은 2008∼2009년 금융위기 때와 대조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2008년 11월 ‘2년간 4조위안’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고, 그 결과 2009년 경제성장률이 1분기 6.4% 저점을 찍고 4분기 11.9%를 기록하며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했다. 1조9천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와 재정 흑자, 낮은 정부부채, 금리 인하 여력 등 다양한 경기 부양 수단을 보유했던 덕이다.지금은 중국의 경기부양 약발이 예전 같지 않다. 제로 코로나 방역 기조가 16일 열리는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완화될지,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까지 길어질지를 두고도 엇갈린 전망이 나오는 등 불확실성도 짙다.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 원화는 외환시장에서 위안화의 ‘프록시’(대리) 통화로 여겨진다. 요즘의 위안화 약세도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주요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겨울 가까운데…러시아발 세계 가스 쟁탈전

 

난방 수요가 커지는 겨울을 앞두고, 액화천연가스(LNG)는 ‘귀하신 몸’이 됐다. 이전까지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는 미국이나 호주에서 액화한 천연가스를 배로 수입했고, 유럽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PNG)를 러시아 등에서 들여와 썼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스 공급 통제로 엘엔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한국의 엘엔지 수입 가격은 지난해 8월 톤당 535달러에서 올 8월 1194.6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한국전력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를 키울 뿐 아니라, 천연가스를 생산원료로 사용하는 실리콘 웨이퍼·비료 등 화학제품 생산 원가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을 계기로 러시아가 유럽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엘엔지 가격은 추가 상승하고 최악의 경우 구매력이 약한 국가를 중심으로 수급불안이 불거질 수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세계 에너지 시장을 두고 “70년대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추 부총리는 얼마 전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매우 낮다”고 말했다. 지금은, 정부가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외환보유고 규모가 과거와 다른데다 세계 각지의 위기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대응 체계도 전보다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다양한 문제들이 예민하게 상호작용하는 탓에 한국 경제가 일시적 경기침체를 넘어서 위기로 빠져드는 것 아닌지 우려를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지금은 금리 등에서 정책 결정자들이 의사가 처방전을 쓰듯 부작용을 줄이면서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정책 선택과 정책 운용의 기술이 아주 중요한 상황”이라며,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은 금리를 올린 뒤엔 ‘강달러’ 때문에 악화된 무역수지를 개선하려고 보호무역주의로 들어가곤 했다. 이번 고비가 지나면 미국이 만들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로 중국이 장기간 침체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당장의 일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 금리 인상이 끝난 뒤 2~3년간 벌어질 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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