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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 덮인 손바닥 보이며 "깨끗한 마실 물이 없어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26 10:30
  • 수정일
    2013/08/26 10: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종기 덮인 손바닥 보이며 "깨끗한 마실 물이 없어요"

 
박정민 2013. 08. 26
조회수 120추천수 0
 

에코파이어니어, 환경 현장에서 배운다 ① 방글라데시 비소 오염

유니세프가 수인성 질병 막기 위해 파준 지하수가 고농도 비소 포함

영양 부족에 사회적 차별까지…3000만~5000만명이 오염 노출, 국제적 관심 필요

 

Naseer Siddique_UNICEF.jpg » 어린이들을 수인성 질병으로부터 지키려고 깊은 관정을 판 것이 비소 오염 사태의 시작이었다. 사진=나시르 시디크, 유니세프  
 
나와 비소의 인연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주던 중,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지하수 오염으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였다. 내가 마주한 첫 충격적 모습은 더할 수 없이 맑은 눈을 가졌지만 종기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손을 가진 사진 속 여성이었다.
 

놀란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방글라데시 지하수가 비소로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것이었다. 토양에 자연적으로 함유되어 있다가 물에 녹아 나오는 비소는 사약으로 쓰일 만큼 독성이 강한 중금속이다. 비소가 함유된 물을 오래 마시면 피부에 검은 종기가 돋아나고 딱딱한 살이 생길 뿐만 아니라 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
 

patient_UNICEF.jpg » 비소 오염 때문에 생긴 손바닥과 다리의 피부병. 사진=다카 커뮤니티 병원(왼쪽), 쉬자드 누라니, 유니세프

 

비소 문제 해결책을 찾다가, 비록 고등학생이지만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을 이용해서 비소를 처리하는 실험을 직접 해 보고 논문도 작성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선 충분치 않아서 방글라데시 현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글라데시 다카대학교 화학과의 샤피쿨 알람 교수에게 연락을 취해 현지 실험실을 방문하고 비소 중독 환자를 만나기로 했다
 
ba1.jpg » 다카의 거리. 낯선 모습이다. 사진=박정민

 

다카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내 앞에는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차에 매달려 구걸을 하는 벌거벗은 어린아이들, 그러나 신경도 쓰지 않는 차와 릭샤라고 부르는 수많은 인력거, 그런 도로 옆으로 매캐한 공기와 더불어 처음 보는 열대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먼저 다카대학교 화학과로 향했다. 캠퍼스는 한국의 대학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잔디밭에 앉아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 수업에 늦었는지 건물로 달려가는 학생들,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까지 활기를 띠었다. 인력거를 타고 도착한 화학과 건물은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져 허름한 모습이었다.
 

ba4.jpg » 다카대학교 화학과의 실험실. 이곳에서 비소 오염도를 측정하는 법을 배웠다. 사진=박정민

 

비소 관련 연구를 해온 알람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며 전통 밀크차인 짜를 주었다. 라마단 기간인데도 외국인인 나를 배려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알람 교수와 오후 내내 한국에서 했던 지하수 속 비소 제거 실험 결과와 다카대학 연구실의 비소 관련 연구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오염 지역 중 하나인 소나르간 지역 방문을 계획했다. 실험실에서 물의 비소 농도를 쉽게 알 수 있는 실험 과정을 배우고, 소나르간에 가서 비소 중독이 된 사람들을 만난 뒤, 그들의 관정에서 물 샘플을 구해 와서 비소 농도를 측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최고 명문 대학인 다카 대학의 실험실 환경은 충격적이었다. 비소와 같은 중금속을 주로 다루면서도 배기장치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작동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 학생들은 몇 년째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을 위해 비소 수용액을 만들 때도 학생들은 스포이트를 입으로 빨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교수에게 부탁하여 배기장치를 고치고 안전수칙을 지킬 것을 요청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찜찜했다.
 
ba2.jpg » 비소 오염지역인 소나르간의 관정 모습. 사진=박정민


며칠 간 비소 농도 측정 실험을 배우고, 드디어 오염지역으로 향했다. 수도인 다카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찾아간 소나르간은 비소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아니지만, 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심한 피부병과 두통, 복통 등을 호소하고 있었다.

 

딱딱한 검은색 종기가 손바닥을 덮고 있었고 발은 검은색 슬리퍼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쉴새 없이 몸을 긁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옆에서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며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비소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ba5.jpg » 비소 오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  


손과 발이 까맣게 변한 모하메드 불불 부얀 (40)은 네 살 때부터 약 30년 동안 비소로 오염된 물을 마셨고, 현재도 공식적으로 수질 확인이 되지 않은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2003년에 처음 염증이 생겼고, 2006년부터 세계보건기구 (WHO)의 지원을 받아 셀레늄 관련 약을 복용해 왔다.

 

그러나 7년 간의 노력에도 증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두통에 시달릴 뿐 아니라, 면역체계가 약해져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햇볕 아래서 더 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생계를 위해 건축 관련 하청업을 하고 있어 고통을 줄일 수가 없다고 한다. 구호 단체가 보장해 준 기간이 끝나면 지원받던 약도 끊기겠지만 현재 상황으론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브루나이에 있던 8년을 제외하면 평생 비소로 오염된 물을 마셨다는 모하메드 라탄 (38)은 가족 중 세 명을 비소 중독으로 잃었다. 그의 아버지와 사촌 동생은 몇 년 전 온 몸에 염증이 난 채로 두통을 호소하며 세상을 떴다.

 

여동생도 불과 열 여섯 살의 나이에 배를 움켜쥐고 숨을 거뒀다. 당시에는 가족들의 사인을 몰랐지만, 최근 그에게 나타난 비슷한 증상이 비소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염증은 몸 속의 비소 농도가 높아서 생겼고 복통과 두통은 비소중독증이 유발한 암으로 추정된다.
 

증상을 해결하려면 깨끗한 물을 계속 마셔야 하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 인력거 운전과 건설 관련 노동을 하며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그의 사정상 이는 불가능하다. 종합 비타민을 5년 동안 복용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했다.

 

SOS-arsenic.net.jpg » 비소 오염의 다양한 증상들. 피부병은 시작이고 점점 심해지면 암으로 이어진다. 사진=SOS-arsenic.net
 

손은 온통 종기로 덮여 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미나 베굼 (35)은, 한눈에 봐도 심각한 환자였다. 그는 비소 중독 때문에 시집에서 쫓겨나 홀로 움집에 살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비소에 중독된 여자들은 대부분 추방당해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비소 관련 연구원 모하메드 시디크 (43) 박사는 “임신한 상태의 여자가 비소로 오염된 물을 마셨다고 해도 태아는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임신한 여자들마저 추방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정확한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비소중독이 전염성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들도 직장을 잃고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ba3.jpg » 병원의 모습. 비소 오염은 가난의 다른 표현이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실험실로 돌아왔다. 아홉 명의 환자 가정을 방문해 최근 예전보다 좀 더 깊게 새로 판 관정에서 담아 온 지하수의 비소 농도를 측정하였다.

 

측정 결과 샘플 9개 중 6개는 안전한 수치가 나왔으나 나머지 3개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방글라데시의 비소 농도 기준치인 50ppb (ppb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 우리나라 수질기준은 10ppb)에 육박하는 오염도였다. 어쨌든 비소 농도 수치상으로 환자들이 비교적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 물을 수 년간 마시고 있음에도 피부병이 낫지 않는 현실이 더욱 염려스럽다. 재정적인 부담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 시디크 박사의 의견이다.

 

호수2.jpg » 방글라데시의 남부 지역은 풍부한 습지와 비옥한 삼각주가 있는 곳이지만 비소 오염이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박정민

 

이 재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72년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세계은행이 오염된 지표수를 마시고 설사로 고생하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지원해준 지하수 관정이 문제를 불렀다.

 

깊은 땅속의 맑은 물을 퍼올려 비위생적인 수처리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층에서 녹아든 비소가 새로운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1970년대에 인도의 서벵골 지역에서 이미 비소 오염 문제가 대두 되었으나 같은 잘못이 방글라데시에서 되풀이됐다. 1993년 방글라데시의 지하수가 비소로 오염됐음이 분명해졌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전국적인 검사를 실시하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는 방글라데시 환경 기자 포럼의 노력이 컸다. 기자들은 비소 오염 관련 책을 발간하고 매체를 통해 비소오염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정부도 지하수 비소 오염 문제를 “국가적 난제”로 규정하고 ‘국가 비소 위원회’를 소집했다. 이어 2000년대에 유엔아동기금의 도움을 받아 전체 관정의 절반에 대해 수질을 조사하고 그 중 오염된 곳에 빨간색으로 표시를 함으로써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고 발표하였다.

 

비소 오염을 검사한 관정은 전체의 55%인 475만 곳인데, 이 가운데 '안전' 판정을 받은 곳은 39%인 330만 곳에 지나지 않았고 '안전하지 않다'는 빨간색 판정을 받은 곳은 16%인 140만 곳이었다. 방글라데시 국민 가운데 이 나라 기준치 이상의 물을 마시는 인구는 약 3000만 명, 더 엄격한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를 적용하면 약 5000만 명이 비소 오염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천의 오염을 막아 지표수를 안심하고 쓸 수 있어야 위험한 지하수 사용을 막을 수 있다. 그런 근본적인 해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bangladesh1-small.jpg » 방글라데시의 지하 150m 이하 관정 비소 오염도. 붉은색이 짙을수록 오염이 심한 곳이다. 그림=영국 켐브리지대 지리학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비소가 아이들과 청소년의 지적 저하를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긴급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다고 다카 지역 병원의 의사인 카지 캄루자만은 꼬집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하수나 지표수를 정수하는 획기적인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방글라데시의 연구소나 실험실은 재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매우 열악하다. 지하수 비소 관련 연구로 유명한 알람 교수 연구실의 연구 환경이 그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몇몇 기업들은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상황을 이용하여 사전 검증이 되지 않은 의약품을 비소 중독 환자에게 투여하여 실험에 이용하기도 한다. 내가 만난 환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람잔 알리(32)도 미국 제약회사에서 무료로 약을 받고 그들이 원하는 설문조사와 테스트를 했지만, 획기적인 병세의 호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도움 아닌 도움들은 방글라데시의 비소 중독 환자들에게 오히려 더 위험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말에 있을 선거와 정치싸움으로 뒤얽힌 이 곳에서 비소 문제는 뒤켠으로 밀려 있었고, 고통 받는 환자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비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본적인 의약품을 공급하는 의료지원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재정 및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중, 우리나라의 정부나 기업에서 방글라데시의 대학들과 협력하여 물 환경 연구소를 설립하여 체계적인 연구와 적용을 도모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 중 하나로 보인다. 또한, 구호단체 등에서 방글라데시 전역에 깊은 관정을 설치해 비소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물을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 깨끗한 물은 인간이 누려야 할 소중한 기본 권리인 만큼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이 꼭 필요하다.
 
방글라데시 다카, 소나르간/ 박정민 민족사관고등학교 1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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