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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공장 노동자 빈소에 보낸 파리바게뜨 빵이 ‘매뉴얼’이라는 SPC

 
SPL 평택 공장 사망 노동자 A(23) 씨의 장례식장 주방에 놓인 파리바게뜨 빵 박스. ⓒSPL 평택 공장 사망 노동자 당숙 유모 씨 
 
SPC 그룹 제빵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회사 측이 조문객 답례품으로 쓰라며 파리바게뜨 빵을 박스째로 두고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매뉴얼에 따라 상조 물품을 지급했을 뿐’이라는 회사 측 태도는 분노를 키우고 있다.

[단독] 제빵공장 노동자 빈소에 답례품하라며 ‘파리바게뜨 빵’ 놓고 간 SPC

20일 SPL 평택 공장 노동자 A(23) 씨의 당숙 유모 씨에 따르면, SPC 그룹 측은 사고 다음날 A 씨 장례식장에 빵 두 박스를 놓고 갔다. 박스에는 파리바게뜨에서 판매되는 땅콩크림빵과 단팥빵이 담겼다. 회사 측은 장례식장 주방에 빵을 놓고 가면서 ‘조문객에게 답례품으로 주시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 15일 사고를 당한 A 씨는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SPL은 파리바게뜨에 냉동생지와 빵, 샌드위치 등을 납품하는 SPC 그룹 계열사다.

A(23) 씨의 당숙 유모 씨는 “우리 애가 빵을 만들다가 죽었는데, 그 회사 제품을 답례로 주라는 것이 말이 되냐”며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회사 측은 소속 노동자가 가족상을 당할 때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상조 물품에 빵이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SPL 소속 한 노동자도 “상조 물품으로 원래 빵이 나온다”며 “나도 가족상을 당했을 때 그릇, 냅킨 등과 함께 빵이 왔었다”고 말했다.

매뉴얼을 따랐다는 회사 측 해명은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룹 계열사의 산업재해 사망 사고는 노동자의 가족상과 ‘일괄’로 놓고 볼 사안이 아니다. 빵이 상조 물품에 포함돼 있다고 해도, 제빵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장례식장에 빵을 그대로 보내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회사 측이 해명을 내놓을수록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회사 측은 ‘상조 물품에 포함된 빵을 이번에만 빼서 보냈다면, 오히려 생산직 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을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회사 측 입장을 듣기 위해 복수의 회사 관계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2.10.20 ⓒ민중의소리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0.20 ⓒ민중의소리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피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는 파리바게뜨 불매 피켓을 들고 있다. 2022.10.20 ⓒ민중의소리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비판…노재팬 불참 소비자도 “SPC 안 간다”

문제의식이 결여된 기계적인 회사 측 행태에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사람이 죽은 일인데 단순히 트러블 대응 매뉴얼대로 행동한 것처럼 보여서 무섭기까지 하다”고 일갈했다.

이번 사망 사고로 불매운동에 나선 소비자들도 격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불매운동을 지지하지 않던 소비자들이 돌아서고 있다. 다른 누리꾼은 “불매운동 같은 거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불매운동 동참 의지를 밝혔다. 또 다른 누리꾼은 “나 진짜 노재팬도 참여 안 했는데, 평생 파리바게뜨와 삼립 등 SPC 빵 사용한 건 절대 안 먹는다”고 적었다.

앞서, 회사 측이 사고 이튿날 바로 설비를 돌려 제품을 생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에 불이 붙은 와중이었다. 노동자들은 흰 천으로 가려둔 사고 설비 옆에서 빵을 만들어야 했다. 국립과학수사대 감식이 안 끝난 상황이라 바닥에는 혈흔이 남아 있었다. 소비자들은 “입에 대기도 싫다”, “역겹다” 등 반응을 보였다.

노동계도 일제히 비판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살인기업 SPC의 만행을 고발한다”며 “해도 해도 너무하다. SPC 절대 사지도, 가지고 말자”고 적었다. 해당 게시물에 첨부된 포스터에는 회사 측이 놓고 간 빵 박스 사진과 사고 설비 옆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 사진이 담겼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노동자들을 정말로 기계로 보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빵을 만들다가 숨진 노동자의 빈소에 빵을 놓고 간 SPC, 저 회사는 진짜 막장”이라고 지탄했다.

정치권에서도 규탄 목소리가 나왔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노동자 사망에 대한 진정성 있는 책임을 져도 모자랄 회사 측이 노동자 생명을 두 번 경시하는 무도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SPC 그룹은 고인 죽음에 책임지고 사과하는 대신, 장례식 기간 조문객 답례품으로 쓰라며 파리바게뜨 빵을 놓고 가는 등 여전히 뻔뻔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SPC는 노동자 인권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인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SPC 그룹 본사 앞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2인 1조가 지켜지지 않고, 안전장치도 구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SPC 그룹의 내재화된 노동 탄압 경영이 부른 참사”라고 규탄했다. 허영인 SPC 그룹을 향해서는 “철저한 성찰과 반성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경영방침의 전환을 밝혀야 한다”며 “모든 계열사의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1일에는 평택역 광장에서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민주노총 경기본부와 화섬식품노조, 공동행동이 주관하는 이번 문화제는 고인에 애도를 표하고 사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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