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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대 돈봉투 ‘꼬리 자르기’ 안간힘…참회와 사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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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477

‘송영길 사건’ 아닌 ‘민주당 사건’

2008년엔 한나라당 돈봉투 문제

전당대회 ‘300만원’ 액수도 같아

여전한 구태…끊임없이 경계해야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현지시각) 파리경영대학원 앞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46조 1항은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입니다. 헌법에 이런 내용까지 있는 줄 몰랐던 분도 많을 것입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국회의원은 이렇게 선서하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의원은 청렴하게 살아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준수하겠다고 선서까지 했습니다. 청렴하게 살지 않았다면 헌법을 어긴 것입니다.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 규모와 세부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선 캠프 총괄이었던 윤관석 의원, 그리고 이성만 의원,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강래구 수자원공사 감사 등이 돈을 마련해서 몇몇 의원들과 위원장들에게 돌린 것 같습니다. 이런 행위가 송영길 당시 후보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지시가 아니라고 해도 송영길 후보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등은 앞으로 규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매표의 상징 ‘전당대회 돈봉투’

송영길 전 대표는 1963년생으로 올해 60살입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습니다. 16·17·18·20·21대 국회의원과 인천시장을 했습니다. 정치를 꽤 오래 했는데 지금까지 금품 관련 비리에 휘말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터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해도 어쨌든 송영길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한 행위입니다. 법적 책임은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책임까지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돈봉투 사건은 송영길 전 대표와 주변 인물 몇 사람의 책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당은 1955년에 창당한 옛 민주당에 뿌리를 둔 정당입니다.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등 빛나는 역사를 가진 정당입니다. 그런 정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부패와 매표를 상징하는 돈봉투를 돌리고 또 받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민주당 당원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송영길 사건’이 아니라 ‘민주당 사건’인 것입니다.

민심을 읽는 ‘촉’이 뛰어난 이재명 대표가 지난 17일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도 사태의 위중함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몽땅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심각하게 보냐고요? 전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2012년에 불거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8년 7·3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명박계의 지원을 받은 박희태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2012년 1월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준 일이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언론의 추가 취재로 파장이 커지자 한나라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박희태 국회의장과 경선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퇴했습니다. 검찰은 두 사람을 기소했고, 법원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김효재 전 수석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처음에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나중에는 “집안 잔치 분위기 때문에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났던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전당대회 돈봉투는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았고, 법원도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은 대의제 민주주의 및 정당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피고인들과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

2021년 5월2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새 지도부로 선출된 송영길 대표(가운데) 등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습니까?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벌어졌던 사건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똑같이 벌어졌습니다. 공교롭게 300만원이라는 액수까지 같습니다. 전당대회 돈봉투 관행이라는 구태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1994년 내부고발 있었지만…

본래 정치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공식 통로를 거치지 않은 정치자금을 불법화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대가성만 없다면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 전환점이었습니다. 2004년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정당법에 ‘당내 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현행 ‘당대표 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가 신설된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 뒤로도 정치 개혁은 계속됐습니다. 지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고 정치자금을 받거나 사용하는 것은 모두 불법입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거의 30년 전인 1994년 1월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사건을 처음 취재해서 기사로 쓴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었던 김말룡 의원이 저에게 “한국자동차보험 상무가 보낸 돈봉투를 돌려줬는데, 나한테만 보냈을 리가 없다. 노동위원회 여야 의원들에게 모두 돈봉투를 돌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말룡 의원의 말을 정치면에 작게 기사로 썼습니다. 다음날부터 사건이 점점 커져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사건’으로 발전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이뤄졌지만,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다른 의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여당이었던 민자당은 물론이고 같은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도 김말룡 의원을 비난했습니다. “자기가 돈봉투를 안 받고 돌려줬으면 그만이지 왜 다른 의원들을 곤란하게 만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김말룡 의원은 1996년 총선에서 인천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를 찾아가서 조문했는데 조문객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무척 서글펐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못된 관행에 맞서 불의를 고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김말룡 의원의 사례를 보며 절감했습니다.

매우 긴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 정치에서 돈을 주고받는 풍토와 문화가 사라지는 데는 역대 대통령들이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치자금을 받지도 주지도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했습니다. 재벌들이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특혜를 받던 거대한 부패의 사슬이 끊어졌습니다. 당 총재인 대통령이 여당에 내려보내던 정치자금도 없어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그때까지 정당의 관행이었던 전국구 공천헌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치에서 전국구 공천헌금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2008년 친박연대 공천헌금 사건이 터지기도 했지만, 정치 개혁의 큰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2003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 터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막지도 않았습니다. 최돈웅·서정우 등 한나라당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상수·이재정·안희정 등 민주당 사람들도 구속됐습니다. 부정한 돈을 주고받으면 대선에서 이겨도 처벌받는 전례가 만들어졌습니다.

개인 일탈 아닌 ‘추악한 자화상’

이번 민주당 대표 경선 돈봉투 사건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송영길 전 대표의 말처럼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개인적 일탈일까요? 송영길 전 대표와 윤관석 의원 등 민주당 일부 구성원들의 일탈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추악한 자화상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송영길 전 대표 출당 등 초강경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에게 붙잡힌 도마뱀이 꼬리를 끊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지금 민주당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처절한 참회와 대국민 사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4·19 기념사에서 “돈에 의한 매수로 민주주의가 도전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으로 점철된 정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이 할 수 있는 말일까요? ‘50억 클럽 사건’ 수사를 미적거리는 검찰 조직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일까요?

마무리하겠습니다. 끊임없이 각성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합니다. 누구도, 어느 집단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겨레>는 얼마 전 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돈거래 사건으로 창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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