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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의 참스승, 윤한탁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3/04/26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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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탁 선생.     

 

국민주권연대 고문이자, 전국참교육동지회 전 대표인 윤한탁 선생이 2023년 4월 23일 15시 20분경 별세했다. 향년 85세.

 

선생은 지난해 12월 19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4개월여 투병하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아래는 페이스북에 선생이 남긴 글이다. 

 

“촛불은 애국의 심장을 불태우는 애국 투쟁이다. 백만 심장의 심지에 애국의 불꽃을 붙여라. 어둠을 내쫓는 촛불이 돼라.” (2022년 12월 10일)

 

“내일(17일 토요일)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쏟아질지언정 158명 압사로 무지·무능하고 위험천만한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만은 만사를 제치고 나가자. 과거 역사상 치욕의 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늙은이로서 차마 추위를 핑계 대고 죽치고 있으랴.” (2022년 12월 16일)

 

▲ 윤한탁 선생이 윤석열 퇴진 집회 이후 젊은 일꾼들과 찍은 사진.     

 

통일애국의 참스승

 

선생은 민족의 미래와 시대의 양심을 키우는 참교육자였으며,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통일애국의 참스승’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선생은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가 1999년 정년 퇴임했다.

 

선생은 정년 퇴임을 한 해 앞둔 1998년에도 주당 17시간 수업을 했다. 학교에서는 나이를 고려해 수업 시간을 줄여주겠다고 했으나, 선생은 한사코 마다했다. 힘이 닿는 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충수업’은 사양했다. 보충수업이 교육 정상화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선생은 다른 사람이 꺼리는 ‘청소계’를 맡아 학교 곳곳에서 휴지를 주우며,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고 한다.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선생이 아니다. 그걸 같이 한 제자들과는 평생 간다.”

“너무 잘 가르치려 하면 안 된다. 훌륭한 스승은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도록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답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애들을 가르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저주하는 것이다. ‘머저리야, 넌 안돼’ 이런 말들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만이 가진 개성이 있고 좋은 점이 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보인다. 선생은 그걸 알아야 한다.”

 

선생은 이런 마음을 지니고 30여 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선생은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수업 시간에 접목해 ‘더불어 사는 삶’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애썼다고 한다. 

 

전교조가 만들어질 때도 함께한 선생은 퇴임 후 전국참교육동지회를 만들어 교육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했다. 

 

▲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취소와 노동3권 쟁취’ 투쟁에서 삭발하고 있는 전교조 참교육동지회 원로 교사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한탁 선생이다.     

  

선생은 교단에서 내려온 뒤에는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선생은 비전향장기수 윤희보 선생을 만난 인연으로 통일운동에 나섰다. 윤희보 선생은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그해 9월 3일 북한으로 송환됐으며, 2015년 작고했다. 

 

선생은 통일애국열사 김양무 선생 정신계승사업회 회장,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통일운동에 전념했다. 

 

“자기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애를 쓰고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다. 그런 삶이면 죽으면서도 웃을 수 있다. 혁명가는 그렇게 죽는다. 시대의 운명은 나의 운명이다. 우리가 지금 미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운명이다. 운명은 숙명과 다르다. 자기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운명은 투쟁이다.”

 

여기서 선생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해방됐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분단된 조국의 현실,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분단된 조국에 사는 사람들의 임무는 반미, 조국통일 투쟁이라는 것이 선생의 신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잇는 조국통일 투쟁이 가장 큰 애국임을 선생은 강조했다. 

 

▲ 비전향 장기수 윤희보, 박선애, 박순애 선생에 관해서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윤한탁 선생.  

 

투쟁에는 물러섬 없이, 동지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투쟁은 현재 하는 것이다. 과거에 할 수 없고 미래에도 할 수 없다.”

 

위는 선생이 2021년 12월 1일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이런 생각을 지녔기에 선생은 언제나 맨 앞장에서 물러섬 없이 투쟁했다.

 

더울 때도, 추울 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민중이 투쟁하는 곳이라면 선생은 어디든 갔다. 그래서 주위의 후배들이 선생의 건강이 걱정돼 일부러 투쟁을 알려드리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우리의 운동은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 “늙었다고 뒤로 물러나 있을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말하며 투쟁의 현장에 나섰다.

 

 

또한 선생은 일꾼들을 만날 때마다 정세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시기에는 어떤 투쟁을 해야 한다’라면서 자신이 앞장서서 투쟁의 길을 열었다. 그러면서 젊은 일꾼들이 바쁘면 자신이 먼저 투쟁하겠다며 1인시위, 기자회견을 조직했다.

 

늘 온화한 모습의 선생이었지만, 투쟁의 현장에서는 맹렬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경찰이나 공권력이 집회 대오를 탄압하려 하면 앞에서 그들을 막아 나서며 그들에게 호통쳤다.

 

지난해 11월 19일 선생은 페이스북에 “결코 주저앉을 수 없는 오직 우리에게 맡겨진 애국의 한길이다. 머뭇거리지 말라. 곧장 달려 나가자! 오늘 윤석열 퇴진 촛불을 힘차게 들어라. 거세차게 전진하자”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처럼 물러섬 없이 맨 앞장에서 투쟁해 온 선생이다. 

 

 

선생은 늘 후배 동지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다며 사무실을 자주 찾아왔다. “00 동지”라고 꼭 이름을 불러주며 일꾼들의 손을 맞잡고 가정을 꾸린 후배 동지들의 가정 형편은 어떤지, 아이는 잘 크는지 꼭 물어보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일을 잘해야 한다, 미국을 몰아내고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선생이 사무실을 찾으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조용히 재정을 담당하는 동지에게 회비와 모아온 후원금을 봉투에 담아서 건넸다. 그러면서 적은 금액이라며 미안해했다. 선생은 형편이 어려운 후배 일꾼, 재정이 어려운 단체에 후원금을 꽤 건넸다고 한다.

 

▲ 단체에 후원금을 모아 전달해준 윤한탁 선생.  

 

선생은 동지들에게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뜨거운 동지애를 삶으로 구현한 것이다.

 

선생이 동지들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글귀가 있다. 

 

“사상적 숭고한 목표가 같고 그 목표를 향하는 열혈한 심장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단결된 조직으로 투쟁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슴 깊이 양심의 불꽃이 타올라 뜨겁게 사람을 사랑한다. 동지애로 불꽃같이 사랑하라.”

 

선생은 뜨겁게 사람을 사랑했기에 불꽃 같은 사랑을 동지들에게 베풀었다.

 

통일애국의 참스승 윤한탁 선생 영전에서 많은 일꾼은 이렇게 다짐한다. 

 

“선생님의 큰 가르침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뜻을 이어 조국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 25일 거행된 추모의 밤 참가자들이 선생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문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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