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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전세사기 특별법 합의…결국, 보증금 반환은 ‘막막’

여야, ‘특별법 제정안’ 합의... ‘선구제 후구상’ 방안 빠져

국회, 국토교통위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 ⓒ뉴시스


전세사기 특별법 여야 합의안이 진통 끝에 나왔다. 피해 인정 대상 폭이 다소 넓어지고 다양한 지원 방안이 추가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사항은 빠졌다.

22일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오는 24일 국토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5일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사라진 ‘선보상 후회수’ 방안...
여야, ‘최우선변제금 무이자 대출’ 방안에 합의

이번 합의안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정부에 요구해 온 ‘선보상 후회수’ 방안이 제외됐다. ‘선보상 후회수’ 방안은 공공기관이 피해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해 먼저 보상해 주고, 이후 경·공매 등을 통해 매입비용을 회수하자는 내용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보증금의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세사기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가 피해자들의 ‘선보상 후회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정작 이렇다 할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김주호 피해자 전국대책위 실무지원 활동가는 “이번 합의안은 정부와 금융기관이 분담해야 할 책임을 오롯이 세입자 개인에게 감당하라는 통보나 다름없다”면서 “피해자들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합의과정에서 ‘선보상 후회수’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야당인 정의당이 대안으로 내놓은 최우선변제금 지원대상 확대 방안도 특별법에 포함되지 못했다. 대신 여야는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에게 ‘무이자 전세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대체해 합의했다. 최우선변제금만큼 최장 20년간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는 방안이다.

최우선변제금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앞서 정의당은 보증금 기준을 초과해 최우선변제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일부라도 지원해 주는 방안의 하나로 최우선변제제도를 좀 더 확대 적용하자고 요청해 왔다.

지난 소위에서 정부안으로 나온 ‘허그 경·공매 대행 서비스’는 이번 특별법 합의안에 포함됐다. 다만 경·공매 과정 전체에 대한 법적, 행정적 절차를 허그가 대행해 주고, 관련 비용을 정부와 피해자가 5대5로 부담하기로 했던 기존안과 달리 정부가 70%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특별법 적용 대상 요건은 소폭 확대됐다. 지난 논의과정에서 근린생활시설과 불법건축물에 사기로 입주한 피해자들을 특별법 지원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데 이어 이번엔 이중계약, 신탁사기 피해자들을 특별법 지원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증금 편취 등 명백한 사기임에도 대항력 갖추지 못한 ‘입주 전 사기(이중계약으로 주택 미점유 포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입주 전 사기의 경우 특별법 지원대상에선 배제되지만, 전세피해지원센터를 통한 긴급 금융·주거·법률 지원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여야는 최초 정부안에서 4억5천만원 이하로 제한했던 특별법 적용대상 요건의 보증금 규모를 5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여야 지도부는 특별법 통과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안에 대해 평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4월27일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하고 오늘까지 다섯 차례 걸쳐 야당과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결과 국민께서 납득할 수준에서 최선의 지원 조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절벽 같은 태도를 보이는 정부·여당 앞에서 정말 힘든 협상을 했다. 현실의 피해 대상자를 (특별법상) 피해자 범위에 최대한 포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며 “결과는 아쉬움이 있지만 계속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인색한 특별법이지만 적용 시 근저당 시점이 아닌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 전세 사기를 긴급 복지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고 기준을 완화해 생계비와 의료 주거비 등을 추가로 지원하는 안을 가져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을 촉구 특별법 발목잡는 정부여당을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4번재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 묵념을 하고 있다. 2023.05.11 ⓒ민중의소리

 

전세사기 책임 피해자에 전부 떠넘긴 정부,
피해자들 “정부가 피해자 사지로 몰아”


정치권 평가와 달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번 특별법 합의안이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합의안이라고 일축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미 전재산을 잃고, 앞으로의 소득도 빚으로 저당 잡힌 수많은 피해자가 엄존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피해자를 선별하고 있는 합의안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소극적인 방안이 피해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합의안이 인정하는 피해자의 범위는 여전히 좁다”며 “‘입주 전 사기’ 피해자, ‘수사 개시가 어려운’ 사례, ‘소수 피해자’, ‘보증금 5억원 초과 세입자’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전히 수많은 사각지대를 남기는 특별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세사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세입자 개인이 감당하라는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철빈 전세사기대책위 공동위원장은 “피해자들을 선별하고, 책임을 외면하는 이번 특별법 합의안에 분노한다. 또 제대로 된 특별법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대폭 후퇴한 야당에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직 특별법 처리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피해자를 선별하지 않고, 실효성 있는 구제대책이 포함되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또 “국회는 희생자들이 정부의 대책에 실망하고, 피해자로 인정되지 못해 낙담하고, 대출을 감당하기 위해 힘겹게 싸우다 희생됐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인 만큼, 추가 대출이 아니라 ‘선보상, 후회수’ 또는 ‘주거비 지원’ 방안을 포함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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