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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0원' 가능...이게 실현될 수 있는 이유

[소셜 코리아] 세계는 전력분야 혁신 중... 한국은 철학 부재·정책 실종·불투명한 미래

23.06.29 07:10최종 업데이트 23.06.29 07:10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 2030년 어느 날 아침 풍경

아침 식사 중 색다른 알람 소리가 울린다. 시계를 보니 오늘 드디어 제로 에너지를 달성했다는 알림이 뜬다. 내가 내야 할 전기 요금이 0이라는 뜻이다.
따져보니 새로 나온 에너지 통합관리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째 되는 날이다. 서비스 첫날 시계에 앱을 설치하자마자 집 안의 모든 전자기기, 내 전기자동차가 자동으로 등록되었다. 내 에너지 효율 점수는 76점. 70점 이상부터 전기회사로부터 쿠폰이 오는데, 3개월째 전기차 무료 충전 쿠폰을 받고 있다.

에너지 통합관리 서비스를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제로 에너지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우선 전기자동차를 아파트 전기 공급원으로 등록했다. 3가지 전기차 옵션 중 하나였다. 다른 두 옵션은 도매시장 또는 전력회사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 서비스는 전기차를 오래 주차해 놓는 경우 유리했다.

나는 아파트에 공급되는 전력이 비싼 시간에 앱에서 '팔기'를 누르면 내 전기차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아파트에 전력을 공급하는 옵션을 선택했다. 가끔 이때 번 포인트로 아파트의 다른 사람에게서 충전 전력을 사기도 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전기차가 번 포인트로 사기도 하고, 내가 투자한 마을 태양광 발전소에서 발생한 포인트로 사기도 했다. 그래도 전기 요금이 나오는 상황이 2개월 지속되었다. 방법을 찾아보다가 에너지 효율이 90점 이상인 집은 에너지 효율에 가격을 매겨 전기요금이 할인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옛날 방식의 전구와 충전기를 바꿨다. 그래도 10점이 모자라는 상황. 전력회사 앱에서 새로운 스마트홈 온도 및 전력 소비 조절기를 설치하면 효율 점수를 10점 인정해 준다는 광고가 떴다. 바로 가입하고 설치했다.

그 후 한 달. 드디어 아침에 전기 요금이 0원이 되었다는 알람이 뜬 것이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스마트 조절기의 옵션을 '자율조절'로 전환하면, 전기 가격이 높을 때 전력 및 열 사용을 줄이고 포인트를 쌓는다는 점이었다. 다음 달에는 오히려 남는 포인트가 발생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전기차와 태양광으로 전력 파는 세상
 

▲ 블록체인을 사용한 이웃 간 전력거래 실험 참여자들 ⓒ Sonnen


위의 짧은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작년 9월 독일의 뮌헨 공과대학은 가정용 배터리 기업 소넨(Sonnen)과 함께 일곱 가정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각 가정이 지붕에서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고 이웃 간에 사고파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한 것이다.

각 가정에 연결된 가정용 배터리와 전기차는 지붕에서 생산된 전력을 저장·판매하게 해주고, 블록체인 기술은 가정 간 전력의 매매를 도와준다. 소넨은 이를 통해 전력망의 높은 수요를 줄이고 전력 계통의 혼잡(Constraints)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회사는 더 많은 이웃들을 소프트웨어에 가상으로 연결하여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예비 전력을 제공할 수 있는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 망을 구상하고 있다. 소넨은 현재 독일을 넘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VPP를 통해 도·소매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 새롭게 떠오르는 21세기 전기 양방향 공급 흐름 ⓒ Quadrennial Energy Review

   
VPP 사업이라고 하면 테슬라(Tesla)가 빠질 수 없다. 자동차 기업인 테슬라가 웬 전력 사업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테슬라는 오래전부터 전력회사가 되기를 갈망했다. 이미 텍사스에서 경쟁 소매 전력회사(우리로 치면 한국전력)로 등록해 놓고 테슬라 가정용 배터리인 파워월의 전력을 모아 판매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설치된 가정용 배터리를 통합해 위기 시 대응 전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여름 전력 위기 시 이미 4500가구의 배터리 33MW를 위기 대응 자원으로 공급해 MWh 당 2천 달러(약 260만 원)의 보상을 지급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유명해진 지붕 태양광 업체 선런(Sunrun)은 캘리포니아 소매 전력회사와 VPP 계약을 체결했다. 30MW의 지붕 태양광을 상시 예비 전력으로 사용하는 대신 가구당 750달러(약 98만 원) 선지급에 스마트 온도조절기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비단 이들 나라뿐 아니라 호주에서도 얼마 전 흥미로운 뉴스가 나왔다. 호주 남부의 어느 와이너리에서 전기차를 전력망에 연결해 전기요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와이너리 주인은 처음에 연간 6천 호주달러(약 520만 원)가 넘는 전기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양조장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했고, 4천 호주달러를 절감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더 욕심을 내서 전기차를 전력망에 연결해 지역 전력회사에 전기를 팔 수 있도록 청원했다. 결과적으로 이 청원이 받아들여지면서 그는 전기요금을 완전히 없앴을 뿐만 아니라, 연간 2500호주달러를 벌게 됐다. 이러한 기술을 V2G(Vehicle to Grid)라고 부르는데, 미국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별도의 에너지 회사를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분산된 전력, 사고팔 수 있어야

이러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제는 분산된 전원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이다. 즉 건물지붕, 전기차, 가정용 배터리에서 생산된 전력을 생산자인 시민들이 도·소매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시장은 유럽이나 미국식 경쟁 도·소매 시장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여러 시행착오 끝에 만든 것이 다중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현재의 도·소매 시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분산 전원 발전사업자들이 독립적인 발전사업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미 언급한 테슬라나 소넨 등의 가정용 배터리 통합 서비스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도·소매시장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전력 생산자인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전기차나 주차장·건물 태양광 전력을 지역 내에서 소비하려면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 흐름을 상호 통제할 수 있는 소매 부문의 독립적인 배전 시스템 운영자(DSO)도 필요하다. 그러면 지금 한창 문제인 송전망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력망 및 수급을 도·소매 모두 관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필요하다. 이는 도·소매 시장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소규모 사업자들의 공정한 참여를 보장하게 하는 필수적인 도구다.  

▲ 분산 전원을 통한 소매 전력 분야 배전 시스템 운영자(DSO) 운영 예시 선진국의 경우 분산 전원에 대한 배전 시스템 운영자를 통해 소비자 간에도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중이다. ⓒ Green Tech Media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경쟁 전력시장이 꼭 민영화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이미 독점 발전을 하던 대형 민간기업의 발전소를 매각하도록 했을 뿐, 산재해 있는 공공 소유의 발전-송전-배전 통합회사는 그대로 두었다. 지금도 미국 PJM 전력시장에서 60% 정도의 공공부문은 경쟁 도매시장에 등록할 뿐 참여하지 않고 개별 가격을 정한다. 다만 그들이 경쟁 도매시장에 참여하기로 선택하면 대형 사업자이기 때문에 시장가격 교란을 막기 위해 마켓 영향력 테스트를 받는다.

원전 강국 프랑스도, 완전 탈원전을 선포한 독일도 EU 요구에 따라 전력 부문을 경쟁시장화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이 각각 35%와 40%를 넘은 호주와 영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재생에너지 시대를 시작한 미국도 모두 경쟁 도·소매시장을 가지고 있다. 이 분야는 분산 전원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매우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국가마다 각자의 사정과 정치적인 난관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들이 이러한 경쟁시장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에는 신재생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을 구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다.
 

▲ 미국 에너지 규제 구조도 ⓒ Chengwei Xu

 
우리와 달리 이들 국가는 예외 없이 모두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단체(ISO/RTO)가 시장 운영의 주체이다.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의 입김을 덜 받는 독립 규제기관도 구성되어 있다. 이 기관은 에너지 부문에 대한 규칙, 규정 및 정책을 수립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시장 운영 감독, 요금 설정, 인허가 발급, 그리고 관련 법률과 규정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다. 또한 시장 경쟁 감시, 소비자 보호, 네트워크 접속 권한 배분, 각종 법률 기준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갈팡질팡, 길은 어디에?

우리나라는 어떨까? 답이 없는 상황이 오래되었다. 도매 전력시장은 가격 결정 차원에서 시장의 기능이 없다. 전기위원회는 선진국들과 달리 독립 규제기관 기능을 하지 않는다. 송전망을 민간 개방한다고 하지만, 송전망은 독점 기반이기 때문에 독립 규제기관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전력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소매가격을 지역별로 매기는 최근의 시도는 도매시장의 지역화와 소매 가격 정상화 없이 힘들다.

외국은 송전망 서비스 규제 가격이 도매시장 가격에 포함되며, 지역별로 도매가격이 매겨져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이 가격을 기반으로 소매 비용을 얹어 소매가격이 결정된다. 제도와 조직, 그리고 공정한 시장에 기반하지 않으면 모든 개혁이 힘들다.

이러한 사정의 원인은 무엇보다 철학 없는 정부들로 인한 정책의 부재가 컸다. 우파 정부가 전력시장의 자유화를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 전력시장의 오랜 터줏대감들을 지켜 주는 것이 시민 자유의 증대와 비례하는가? 원전을 지지하는 것이 한국 사회가 우파에게 요구하는 혁신과 자유시장의 진흥과 일치하는가? 우파의 철학을 위해 무엇을 내줄 수 있는가?

그러면 좌파는 재생에너지에 진심인가? 재생에너지를 한국에서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공정한 시장의 건설을 지지할 수 있는가? 또 피할 수 없다면, 큰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저탄소 자원으로서 원전을 지지할 수는 없는가? 만약 국민을 방사능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탈원전을 지지한다면, 그 외에 정치를 통해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좌우를 떠나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 전 세계 선진국이 간 전력시장 개혁과 재생에너지 진흥의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은 가고 있다.
 

▲ 이민호 / 미국 변호사 ⓒ 이민호

 
*필자 소개 : 이민호는 전 세계 발전 사업 개발 현장을 두루 경험한 미국 변호사입니다. 지난 10년간 미국, 칠레, 요르단 등지에서 가스복합화력부터 풍력 및 태양광, 수소 연료전지, 폐기물 자원화(WTE) 사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 및 금융 실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최근 3년간 미국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천천히 아름다운 생각'을 통해 전력 분야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교육분야에도 관심이 깊어 '천천히 아름다운 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 https://blog.naver.com/maliky, 이메일 : maliky@naver.com)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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