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검은 옷 입고 서울에 집결한 전국 교사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전국의 교사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7.29. ⓒ뉴시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주말인 29일 서울 도심에서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으로 학부모의 악성민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국 학교 일선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남 일이 아니다’라며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이다.

전국 교사들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지난주에 이어 또 한번 집회를 열고 교사의 교육권 보장과 함께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 정상적인 교육환경 조성을 촉구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오늘은 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없으며, 그 어떤 단체나 집단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며 “그저 정상적인 교육환경이 조정될 수 있도록, 공교육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정상화가 되길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집회”라고 설명했다.

이날 집회는 일부 교사들이 제안해 온라인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애초 예상보다 많은 3만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최 측은 “피켓을 3만 2천 개 준비했는데 동이 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청사 인근 4차로 도로를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사망한 서이초 교사를 추모했다.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다룬 추모 영상이 나올 땐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추모 영상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2023.7.29 ⓒ뉴스1
 

교육 현실 고발한 일선 교사들
“저희는 죽음에 내몰려 있다, 생존권 보장하라”
“마음 놓고 소신있게 바른 것을 가르칠 권리 보장하라”


이날 익명으로 자유발언에 나선 교사들은 학생 지도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광주광역시 초등학교에서 21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A 교사는 지난해 반 친구를 때리는 학생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책상을 넘어뜨리고, ‘잘못이 없으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내용의 반성문을 찢었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민형사상 재판에 넘겨졌다고 밝혔다. 그는 “1년 싸움끝에 올해 7월 17일 민형사 모든 소송이 기각되고 저는 드디어 혐의를 벗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아동학대 혐의에서 벗어난 날은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전날이었다. A 교사는 이를 언급하면서 “서이초 선생님 뉴스를 보고 분노, 죄책감, 무력감, 슬픔에 빠졌다”며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제 일을 공론화시켜 맞서 싸웠는데,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황망함,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지만 더이상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있지 않겠다”며 “망가져버린 교육현실에 분노하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교육을 살려내라고 소리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A 교사는 “학교는 지식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하나 규칙 등 민주시민의 기본자질 가르치고 배우는 아주 중요한 장소”라며 “하지만 지금 저희에게 이러한 것들을 가르칠 권리가 있냐. 옳은 것을 가르치는데 대단한 용기 내야 하는 게 정상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교사에게 마음 놓고 소신있게 바른 것을 가르칠 권리 보장해달라.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사의 손발을 묶고 교사를 협박하는데 악용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달라”며 “이제 저희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저희는 죽음에 내몰려 있다. 이렇게 모여 생존권을 보장하라 외치는 교사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6년차 초등학교 B 교사는 일부 학생들의 극심한 수업 방해와 폭력적인 행위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다치고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든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수없이 타일르고 어르고 달랬다. 규칙도 만들었다. 무섭게 다그치기도 하고 학부모와 소통했다”며 “그렇지만 작정하고 수업을 방해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않는 학생에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성토했다.

B 교사는 “지금도 전국이 수많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학부모는 교실 정상화에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교사 인권과 학생 인권은 서로 연결돼있다. 선생님을 때리는 아이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하겠나. 아이들을 시스템이 부재한 교실, 운에 따라 1년이 좌우되는 교실에서 지내게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라남도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는 9년차 특수교사라고 자신을 밝힌 C 교사는 “특수교사에게 도전행동(발달장애인의 타해, 자해 등 행동)을 하는 건 차라리 괜찮다. 그냥 맞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학생을 상대로 도전행동을 시작하면 교사는 온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팔을 붙들어 제지해야 하는데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할까봐 그냥 맞고 있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기도 쉽지 않다. 도전행동이 의도적인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은 장애학생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며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여냐고 오히려 특수교사를 탓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법 앞에서 특수교사는 예비범법자가 된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전국의 교사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3.07.29. ⓒ뉴시스
 

집회 주최 측, “정상적이고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 촉구
“교권 살려내야 한다는 건 학생, 학부모, 교사 사이 벽을 만들겠다는 게 아냐”


이에 주최 측은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에게 정상적이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일념 하에 집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그렇기에 교육현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교사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육의 산 주체인 우리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소리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특히 “교권을 살려내야 한다는 말은 학생, 학부모, 교사 사이의 벽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학부모와 학생에게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교육의 핵심적인 삼박자는 교사, 학생, 학부모다. 교사는 수업을 연구하고 공동체 생활에서 응당 배워야 할 생활 지도를 한다. 학생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와 집중이 필요하며, 가정은 학생이 개인의 삶 속에서도 배움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 흐름을 같이 하여 전인적으로 인성지도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주최 측은 “우리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요구한다. 교사가 원하는 교권이 체벌 부활인 것은 절대 아니다. 체벌은 절대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다”며 “교사들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올바른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 측은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은 교사들에게 소명할 기회를 제공하지도 않고, 교사들은 진상조사도 없이 단순 신고만으로 불합리한 직위해제를 당하고 수사기관에 고발을 당한다. 담임 교체, 다른 교사로의 대체 수업으로 인해 그 피해는 오롯이 교사와 나머지 학생, 학부모들의 몫이 되고 있다”며 “이른바 ‘교실 붕괴’가 찾아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의 권리는 반드시 존중되면서 교사의 생활지도권과 교육권이 상위법인 아동학대처벌법에 저촉되어 제대로 보장받지 않는 경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주최 측은 “교육당국은 교권침해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하라”고 촉구했다. 주최 측은 “특히 교권침해의 원인을 단지 교사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만 돌리지 말라”며 “2017년에는 정년퇴임을 한 학기 앞둔 원로 교사가 학부모 민원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또한 순직 처리된 사례가 있다. 현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참담한 교권침해 사례는 연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흐리는 여러 법들과 실효성 없는 대책들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교육감, 교육청, 교육부에서는 향후 유사사례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학교의 대책 및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며 “하지만 모두 현장에 대한 이해도 없이 모호하고 실효성 없는, 또 같은 가슴 아픈 사례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교사의 전문성이 부족해 교권 침해가 일어난 것마냥 교원 연수 강화를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행태, 그리고 최근 충북교육감의 예비살인자 발언은 교육현장 일선에 있는 교사들에게 절대 행할 수 없는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디 가르치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함께 나아가고 싶으며, 성장하고 싶다”며 “학생의 가능성에 무한한 칭찬을, 부족하고 바로잡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정당한 지도활동을 할 수 있는 교육, 아이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이 보장된 교육현장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교사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3.7.29 ⓒ뉴스1
 

학생, 예비교사, 교원양성대학 교수들도 교사 항의 행동 응원
서울교육대 교수 102명 성명 발표 “교사 인권의 추락은 대한민국 미래의 추락”


이날 집회에는 교사들만 참가한 게 아니었다. 학생, 그리고 예비교사와 교원양성대학 교수 등도 참가해 교사들의 항의 행동을 응원했다.

경인교육대학교에 재학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한 대학생은 “현실은 비참했다. 제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꿈꾸던 교실이 아니었다”며 “지금 교실은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협받는 교실이다. 어떠한 보호도 없는 교실에서 교사 홀로 인내하며 있는 지금의 교실은 제가 꿈꾸던 교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두고 “제 미래 보는 것 같아 참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가 존중받지 못 하는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존중과 배려, 사랑을 가르칠 수 있겠나. 어떻게 참된 교사가 될 수 있겠나”라며 “저는 오래 일을 하기 위해 잘못된 것을 못 본척하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아니라 진정 학생을 사랑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지도하는 참된 교사가 되고 싶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움직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10여 명도 직접 발언대에 올라 목소리를 냈다. 한 교수는 “죄책감 가운데 불면의 밤을 보내던 교수들이 여러분 앞에 선 건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함”이라며 “또한 전국적인 애도기간 중에 교사를 ‘예비살인자’라고 말하며 살인의 언어, 죽음의 행정 쏟아낸 사람이 틀렸고 오늘 이자리에 희망의 언어, 회복의 행동을 보여주는 여러분이 옳다는 걸 확신시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교육대 교수 102명은 이날 “교사 인권의 추락은 대한민국 미래의 추락”이라며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교육 정상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편지를 보낸 한 고등학생은 자신이 공황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데 교사로부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선생님은 저에게 큰 존재인데 선생님이 무너지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사가 건강해야 학생들도 건강할 수 있다. 교사가 온전해야 학생도 온전할 수 있다”며 “교사가 육체, 정신,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