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공교육 멈춤의 날’ 평일에도 교사 4만명 이상이 국회 앞 메웠다

전국적으로 열린 집회에 교사 10만여명 참석, 교육부 협박에 분노 커진 듯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9.04 ⓒ민중의소리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전국의 많은 교사들이 병·연가를 쓰며 하루 수업을 멈추는 방식으로 '공교육 멈춤의 날' 추모 행동에 나섰다. 교육부는 거듭 교사들의 추모 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징계를 예고했지만, 교사들의 분출하는 분노를 억누를 순 없었다.

평일인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무려 4만여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당초 주최 측(교사 모임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은 2만여명이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참여 열기는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넉넉히 준비했던 피켓 3만여장은 집회 시작과 동시에 금새 동이 났고, 급하게 1만장을 추가로 인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상 출근을 해야 했던 교사들도 퇴근 후 집회에 줄지어 참석하면서 국회 앞 대로부터 여의도 공원까지 이르는 8곳의 집회 구역이 모두 채워졌다.

교사들이 집단으로 연·병가를 사용하고 평일에 열린 집회에 대거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 앞 외에도 전국 13개 지역에서 추모제가 진행됐는데, 이 인원까지 추산하면 이날 교사 10만여명이 모였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열린 집회에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과 일부 진보 성향의 교육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 또 다른 동료의 죽음에 울분 쏟아낸 교사들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가한 교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9.04 ⓒ민중의소리

무대에 선 교사들은 참기 힘든 울분을 토해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숨진 서이초 교사와 또 다른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교사들도 많았다.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책들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 국회의 법 개정 논의 역시 더디기만 하다. 서이초 교사가 숨진 지 49일째가 됐지만 진상규명도 요원하다. 그 사이 서울과 전북, 경기에서 3명의 교사가 잇따라 세상을 등지면서 교사들 사이에선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공립유치원에서 근무하다 공무상 재해로 휴직 중인 유치원 교사 A씨는 "저는 더 이상 동료를 잃지 않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며 "서이초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 잘못된 건 사회와 교육 현장"이라고 힘줘 말했다.

A씨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는 폭염 속에서 49일간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아무도 교육 현장을, 학교를, 교사를 지켜주지 않았다"며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현장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20년 경력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지금까지 우리는 스스로 안전과 기본권을 수호할 아무런 방패도 없이 사명감 하나로 막아냈다.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과 조직도 없거니와 그나마 있는 제도마저 무용지물이었다"며 "학교 관리자는 일이 더 커지지 않게 쉬쉬하며 전전긍긍했고, 사법기관 판결문 앞에도 교육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학교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이렇게 병들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B씨는 이어 교육 당국이 내놓은 터무니없는 대책을 지적하며, 이럴 때일수록 교육 주체들이 연대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전문가인 교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요구와 함께 교사들이 연대해 입법안을 제출했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엉뚱한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더니 이제는 생활기록부에 주홍 글씨를 새긴다고 한다"며 "저는 감히 교육자의 양심으로 학생인권은 더욱 신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기부 기재를 빌미로 권력자라도 된 양 학생들에게 영혼 없는 복종을 받겠다고 했나.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즐겁고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원한다"고 밝혔다.

B씨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파편화된 개인의 삶은 이용당하고 소모당한다"며 "이제는 오랜 무기력을 깨고 일어나 함께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다. 대다수 선량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과 만나 연대하고 하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이초 교사 떠나보내고 49일 지났는데 변한 게 뭔가"
열흘 내내 협박만 일삼던 교육부 향한 교사들의 반문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이 헌화 묵념을 하고 있다. 2023.09.04 ⓒ민중의소리

이날 집회에 예상보다 많은 교사들이 참여한 건 '공교육 멈춤의 날'을 대하는 교육부의 태도가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슬픔에 공감한다면서도 최근 열흘 내내 교사들의 집단 행동에 엄정 대응만을 반복했다. 일부 교육청은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며 압박을 가했고, 학교에서는 재량휴업을 결정했다가 번복하는 혼란도 벌어졌다. 전날 교육부 차관이 주재한 현장 교원 간담회에 참석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느닷없이 참석해,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곁에서 함께해 주길 부탁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한 뒤 떠났다. 교사들 사이에선 "교육부가 교사들을 병풍으로 세워뒀다"며 분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집회에서도 교육부를 규탄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고등학교 교사인 C씨는 "국화꽃을 올리고 검은리본을 묶고 목놓아 울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49일이 지났는데, 무엇이 변했느냐"라며 "교육부는 선생님들의 눈물겨운 외침을 듣기는커녕 오늘 단 하루 선생님을 기리며 멈춤의 행동을 하는 우리에게 파면, 해임, 징계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협박하고 교사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C씨는 "선생님들의 눈물과 아픔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국회는 울부짖는 교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교육부는 병들어 간 교사를 지켜내야 한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서이초 교사"라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성명서를 통해 교육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지금까지 교사들이 겪는 고통을 방관해 왔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젠 교사들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며 "교육부는 교사와 교장을 향한 징계 협박을 당장 철회하고 본분에 맞게 교사들을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주호 장관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구호를 제창했다.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들의 '멈춤'에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하루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학부모 D씨는 "작게나마 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드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D씨는 "누구보다 교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선생님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추모 집회조차 정치적으로 규정하고 징계, 파면을 운운하는 이상한 시대가 현재 대한민국 교육계의 현주소"라며 "교사이기 이전에 인권을 가진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며, 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다. 제가 교사였더라도 서이초 선생님의 모습과 돌아가 선생님들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고 위로했다.

D씨는 "공교육이 바로 되는 시작은 선생님이 교사로서의 자존감과 보람, 긍지를 느끼고 교단에 설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며 "선생님들 모두 힘내시고, 응원하고 지지한다. 학부모들이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의 지지 발언에 일부 교사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집회 말미 주최 측은 교원 단체들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교사 개개인이 교육부의 칼날에 맞서는 건 매우 두려운 일"이라며 "교사들을 보호하고, 국회와 교육부와 교섭해달라. 교육부 입맛에 맞는 사람을 만나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교육부에 더 강력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우리의 요구를) 꼭 쟁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연관 없는 우리가 일시적으로 모여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단체가 뭉쳐달라"며 "각각의 개인이 점이 되어 검은 바다를 만들어 낸 지금, 큰 파도로서 변화를 꾀하는 지금, 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서이초 교사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과 행동하는 교사들에게 편지를 적어 보냈다. 대독을 통해 공개된 편지에는 "그렇게 떠나야 했던 너의 한을 꼭 풀어주고 싶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너에게 보내준 추모 화환에 보답하는 길이고,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과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사의 사기 진작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이며 작은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적혀 있었다. 

관련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