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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계도기간 뭐하다…정부 ‘일회용품 규제 포기’에 반발 확산

공동 대응 나선 287개 환경단체 “텀블러·장바구니 적응 중인데 웬 찬물”

1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환경단체 회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환경부의 1회용품 규제 철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상징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11.21 ⓒ민중의소리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규제를 포기하는 조치에 나서자 곳곳에서 반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과태료 부과 등의 방식으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대신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일회용품을 줄여가겠다는 방침인데,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환경부의 직무 유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을 비롯한 전국 287개 환경·시민사회단체는 21일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구성을 선언했다. 이들은 이날 전국 18개 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약속된 일회용품 규제를 제대로 시행하라”고 촉구하며, 범국민 서명운동 등 공동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시행했다. 그해 대형매장에서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 이후 2022년 11월 24일부터는 중소형 매장에서도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했고,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 대상에 추가하는 등 관련 규제를 확대·강화해 왔다. 다만, 정부는 현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 1년간 계도기간을 두며 관련 조치를 어기더라도 법으로 규정한 과태료(300만원)를 부과하지 않았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1년의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올해 11월 24일부터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그런데 계도기간 종료 2주가량을 앞둔 11월 7일, 정부는 갑작스럽게 ‘과태료 부과’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며 정책을 번복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상황을 고려”했다는 게 정부가 밝힌 이유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 방침에 따르면, 비닐봉투 사용에 대해선 단속을 통한 과태료 부과가 아닌 “대체품 사용 문화 정착”으로 크게 후퇴했다. 종이컵은 일회용품 규제 대상 품목에서 아예 제외됐다. 플라스틱 빨대 역시 계도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시기에 대해선 “국제동향, 대체품 시장 상황을 고려해 추후 결정”한다며 사실상 무기한 연장한 상태다.

 

환경단체들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정책임에도 정부가 앞장서 무산시킨 데 대해 분노를 표했다. 여성환경연대 김양희 사무처장은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환경부가 직접 여론조사한 결과 97.7%의 시민들이 일회용품 감축이 필요하다고 했고, 87.3% 시민들이 일회용품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9월만 해도 환경부가 전국을 돌며 일회용품 사용 감축에 대한 지역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갑자기 철회라니 무슨 말인가”라며 “정부는 소상공인 부담을 변명으로 얘기하지만, 1년의 계도기간이 있었음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포기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활동처장도 “시민들 누구나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린이들도 학교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배우고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실천하고 있다”며 “오히려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려는 시민들의 행동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생동물 서식지 보존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생명다양성재단 성민규 연구원은 “환경부는 생명과 환경을 보호하는 길이 아닌 죽이는 길을 선택했다”며 “환경부는 이름만 환경부지 환경파괴부라는 오명은 이미 우스갯소리가 된 지 오래다. 반환경적인 행보를 멈추고 일회용품 규제를 원안대로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청년을 대표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연주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도 “우리는 텀블러와 장바구니에 적응해 가고 있었고, 아주 작지만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환경부는 왜 후퇴의 길을 고집하는 것인가”라며 “쓰레기를 줄이는 구조를 생각하지 못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부추기는 것은 환경부의 게으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정책 대비했는데 직격탄 맞은 업체들
“수억원 들여 준비했는데 엄청난 피해, 직원도 떠났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가 지난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플라스틱 빨대 규제 무기한 연기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 힘겨운 한숨을 내쉬고 있다. 2023.11.13. ⓒ뉴시스

환경단체만의 반발은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비해 종이 빨대나 다회용기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당장 11개 종이 빨대 제조업체들은 ‘종이 빨대 생존 대책 협의회(협의회)’를 구성하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협의회는 전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 등이 주최한 ‘친환경 제품 생산 소상공인 피해 경청 간담회’에 참석해 줄도산 위기에 처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협의회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협의회 회원사가 정부의 규제 시행 일정에 맞춰 생산한 종이 빨대 재고 물량은 약 1억 4천만개다. 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업체들의 재고 물량까지 포함하면 약 2억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환경부 규제가 일정대로 진행됐다면 우리 직원들은 열심히 제품을 생산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들은 지금 휴직하거나 퇴사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환경부 발표 이후 기존에 다회용 컵 등 물품을 납품해 오던 업체들이 발주를 철회하는 실정”이라며 “환경부 정책 기조에 발맞춰 온 생산업체나 납품업체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체의 관계자도 “환경부의 정책을 믿고 종이 빨대 사업을 하기 위해 기계를 20대나 발주를 하고, 수억원을 들여 준비를 해왔는데 이해도 안 되는 정책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됐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반발 여론을 달래고자 각종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우선 일회용품 사용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규제 대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환경부가 다회용품 사용 우수매장을 지정하면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정책자금상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등 금융 지원을 연계하는 식이다. 다회용기 보급 지원사업으로 다회용기와 식기세척기 지원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아울러 종이 빨대 업체와 같이 정부의 정책 철회로 피해를 보게 된 업체들에 대해서는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경영애로자금’을 지원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주 내에 구체적인 계도기간 종료 시점을 발표하겠다고도 예고했다. 

종이 빨대 업체들은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협의회는 호소문을 통해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의 경쟁상품이 아니라 대체 상품이다. 대체 상품의 시장은 규제하는 상품의 사용이 금지돼야 비로소 정착된다”며 “견딜 만큼의 저리 대출은 결국 업체의 빚만 늘리는 것이기에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에 원안대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시행하고, 실질적인 보상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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