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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감세로 세수 줄여 놓고 재정건정성 높였다는 정부의 눈속임

세수 펑크’ 빼놓고 지출 최소화만 앞세워…국가채무 절대액 줄었지만, 저성장에 빚 부담 여력 위축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6.28. ⓒ뉴시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에서 지난 2년간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유리한 지표만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감세로 ‘세수 펑크’가 발생하고 경제 성장 정체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예산 축소라는 단편적인 지표를 앞세워 마치 재정 여건이 나아진 것처럼 설명했다.

28일 기획재정부의 ‘2025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보면, 정부는 내년 재정 여건에 대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건전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하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제고됐다”고 평가했다.

정부 자료만 보면 재정건전성이 높아진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실상은 다르다. 건전재정을 명분으로 지출을 최소화한 ‘짠물 예산’을 편성했지만, 대기업 감세를 강행하면서 대규모 수입 감소를 초래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요구되는 저성장 국면에서 지출을 억제한 탓에 국가채무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정부가 재정건전성 성과 홍보에 급급한 나머지 유리한 지표만을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정부의 진단은 왜곡·과장됐다”고 비판했다.

짠물 예산’ 성과로 내세우며 역대급 세수 감소는 모르쇠

정부는 재정건전성 개선 근거로 총지출 증가율이 낮아지고,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둔화했다는 점을 들었다.

올해 총지출 예산 656조 6천억원은 전년 대비 증가율이 2.8%로, 2005년 이후 최저치다. 2023년 총지출 예산은 전년 대비 5.1% 증가한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9.1%), 2021년(8.9%), 2022년(8.9%)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 건전재정 기조의 골자인 ‘짠물 예산’을 드러내는 지표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서민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운용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총지출을 억제했음에도 재정건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문제가 남는다. 지출을 억제하더라도 수입이 줄면 재정건전성은 악화된다.

정부는 재정건전성 개선을 주장하면서 지출 증가율 하락만 내세우는 한편, 수입이 감소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재정건전성은 지출과 수입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기초상식을 벗어난다.

지난해 국세수입은 대규모 ‘세수 펑크’로 기록됐다. 당초 정부는 세수를 400조 5천억원으로 예산을 편성했으나, 실제 들어온 세금은 344조 1천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51조 9천억원(13.1%) 쪼그라든 규모다. 정부는 지난해 세금이 걷히지 않자, 세수를 재추계해 전망치를 낮추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의 전년 대비 세수 감소 규모는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이 도입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다. 전년 대비 세수가 줄어든 건 지난해를 제외하고 4개년도뿐이었으며, 감소율은 0.03~2.73% 수준이다. 두 자릿수 감소는 유례가 없는 사태다.

역대급 세수 감소는 감세 영향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세제개편안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3%p(포인트)로 낮췄다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1%p로 조정되자,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상향했다. 대기업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율은 기존 6%에서 현재 15%로 치솟았다. 직전 3년 평균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한 10%의 임시투자세액공제도 도입했다. 그 결과 올해 예산안에 따른 국세감면율 16.3%로, 법정 국세감면률 한도인 14%를 초과한다. 재정건전성을 외치면서, 방만한 감세를 제한하기 위한 한도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기획재정부


‘정부발’ 내수 부진으로 나라빚 부담 여력 위축

정부가 제시한 국가채무 관련 지표에서도 재정 여건에 대한 평가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예산안 편성지침에는 전년 대비 국가채무 증가액이 제시됐다. 예산안에 따른 올해 국가채무는 전년 대비 61조 4천억원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67조원 늘었다. 2020년(123조 4천억원), 2021년(124조원), 2022년(96조 7천억원)보다 국가채무를 줄였으니,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국가채무의 절대액으로 재정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실을 보다 제대로 반영하는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다.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면 국가채무를 감당할 여력이 커진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비율은 50.4%로 전년 대비 1%p 늘었다. 2020~2022년에는 50% 미만이었다. 올해 전망치 51%도 지난해보다 0.6%p 높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 2.2%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치는 더 커진다. 내수 둔화에 따른 저성장 장기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LG경영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1.4%로, 1990년대 이후 2% 미만 성장률을 기록한 4번째 해로 기록됐다. 정부가 지출을 축소하면서 내수 부진을 야기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경제 성장이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나랏빚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창수 소장은 GDP 대비 국가채비율 증가에 대해 “경제 성장은 더딘 데 반해, 빚을 더 많이 늘렸다는 것”이라며 “빚을 왜 늘렸는가 보면 적자 때문인데, 적자의 원인은 세수 감소”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세수 감소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비롯한 감세 정책 영향이 크다”며 “결과적으로 지출을 늘리지도 않았음에도 빚에 부담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GDP 대비 적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올해 관리재정수지(재정총수입에서 총지출과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금액) 적자는 GDP 대비 3.9%로 전망된다. 지난해에는 5.4%였다.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주장하며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법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세로 적자를 키우면서, 스스로 내세운 재정건전성 기준에도 미달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지표를 왜곡하며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다고 주장하면서도, 내년도 예산 편성방향으로 재정지출 10% 이상 감축을 내세웠다. 국정과제 등 필수 소요를 제외한 모든 재량지출에 대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각 부처의 구조조정 이행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부여한다. 기재부는 “건전재정 기조 확립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대규모 감세가 낙수효과 없이 세수 감소로 이어지고, 재정 역할이 축소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소장은 “감세를 강행해 재정건전성을 지키지 못한 가운데, 재정 여력을 위축시켜 재정지출을 줄이는 모순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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