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접경 중심 지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두만강 접경 중심 지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연길 도심을 벗어난  택시는 대단히 안정적인 속도로 고속도로를 주행했다.

16년전 쯤이던가. 연길공항에서 훈춘까지, 마치 차체가 부서질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면서도 바로 옆이 두만강이라고 태연하게 안내하던 한족 총알택시 기사가 떠올랐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제한속도를 알리는 경고판도 있지만 촘촘히 설치된 CCTV를 통해 구간별 통과시간을 즉시 계산해 과속 벌과금이 부과되는 시스템이 도입된 후로는 누구도 과속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안전운행이 정착됐으니 다행이다.

이 안쪽 8~10km 더 들어간 계곡에 봉오동전투 격전지가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 안쪽 8~10km 더 들어간 계곡에 봉오동전투 격전지가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시간 남짓 걸렸을까. 100여년 전 홍범도 장군이 일본 정규군인 월강추격대대와 교전한 봉오동전투격전지라며 차가 멈춘다.

도문시에서 북으로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조선족 집거촌인 이곳의 현재 지명은 도문시 석현진 수남촌이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8~10km 떨어진 곳에 격전지와 촌락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뒤편에 '봉오저수지'를 만들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최진동이 봉오동전투 당시 살았던 마을이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 건너편으로는 북측 근로자 2,000~3,000명이 근무하고 있는 도문경제개발구가 들어서 있다.

당초 중국의 '창지투(장춘-길림-두만강) 개방 선도구 사업'에 따라 2011년부터 북한 전용공업단지로 개발이 시작된 곳이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표현 자체가 사라졌다. 봉제공장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우리 식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먹태'부터 주요 자동차 부품까지 업종도 다양하게 변화한 모양이다.

현지 사정에 두루 밝은 관계자는 훈춘에 4,000~5,000여명, 도문에 2,000~3,000여명, 연길에 1,000여명 등 총 1만명 안팎의 북측 근로자가 상주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672명의 촌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 등에 자식들을 보낸 조선족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수남촌에 사는 조선족 노인들은 도문경제개발구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들이 주말이면 마을에 놀러와 토닭도 삶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남촌에 사는 조선족 노인들은 도문경제개발구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들이 주말이면 마을에 놀러와 토닭도 삶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주민들은 평소 건너편 도문경제개발구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주말이면 북측 근로자들이 마을로 건너와 '토닭'(토종닭)을 삶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 마을은 현재 전국 중소학교 연구학습 실천교육기지, 연변대학 미술학원과 마르크스주의 학원의 실천교육기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8km쯤 내려가면 북중국경을 이루는 두만강변이다. 

도문시 동쪽 두만강변의 강변공원에서 한눈에 보이는 강 건너가 북측 남양노동자구이다. 동북 방향으로 7.4km만 가면 한반도 최북단 지역인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가 있다. 

강 양쪽 기슭에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을 탄 관광객들이 두만강을 조망하고, 바로 옆 도문대교를 통해 물자가 오고가는 곳이다.

두만강 건너 북측 남양노동자구 전경. 강변 국경을 따라 밝은 불빛이 켜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두만강 건너 북측 남양노동자구 전경. 강변 국경을 따라 밝은 불빛이 켜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양노동자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양노동자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낮에 수남촌을 거쳐 훈춘, 방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 어둑해서야 도착한 두만강 강변공원 전망대에서는 남양노동자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만강 국경선을 따라 세선리까지 약 5km의 강변을 따라 20여미터 간격으로 수백개의 밝은 전등이 켜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현지 관계자도 처음보는 광경이라고 했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북에서 강변 국경에 저렇게 많은 불을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4월 15일 이후에도 계속 불을 밝히고 있다는 전언이 있는 것을 보면 '태양절'(김일성 주석 탄생일) 축하를 위한 목적도 아닌 것 같다. 탈북 방지를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그 역시 추정일 뿐이다.

한 밤중 강 건너 마을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가 한 마을인 듯 들리고, 집집마다 작은 창가에는 하루의 노동을 끝낸 휴식의 불빛이 눈앞에 있는듯 새어 나온다. 

도문대교의 북쪽 방면에서 '땡땡땡땡' 소리가 나더니 차단기가 내려오고 남양역에 열차가 들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쑥쑥 뻗어올라간 북방의 나무 사이로 눈썹같은 초승달이 걸려있는 이국의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는 두만강과 건너 마을은 안녕한 듯 보이는데, 1925년 식민지 조선의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건너던 '국경의 밤'을 떠올리는 심경이 공연히 복잡하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巡査)가
왔다-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김동환 시, 국경의 밤 1장 일부)

"봄이 와도 꽃 한 폭 필 줄 모르는
간 건너 산천으로서는
바람에 눈보라가 쏠려서
강 한판에
진시왕릉 같은 무덤을 쌓아놓고는
이내 안압지를 파고 달아난다,
하늘땅 모두 회명(晦暝)한 속에 백금 같은 달빛만이
백설로 오백 리, 월광으로 삼천 리,
두만강의 겨울밤은 춥고도 고요하더라."
(국경의 밤 7장)

권하해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하해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훈춘으로 접어들면 국경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로 넓어진다.

두만강쪽 북중 주요 관문인 권하해관(圈河口岸, 세관)의 확장 신축공사는 아직 진행중이다.

신축 세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신축 세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현재 운영중인 세관 앞에서 차를 세워두고 지켜보니 한 두대의 트럭이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옆에는 기존 세관의 서너배는 될만한 규모의 신축 세관이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채 우뚝 서 있다. 토목공사를 하다 중단한 흔적이 남아있는 넓은 들판도 강변까지 잇닿아있다.

여기서 50여 km 떨어진 북측 라선경제구의 라진항을 출발한 화물차는 세관 뒤편 신두만강다리를 건너 중국으로 대게를 비롯한 수산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 북중러 세 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두만강 하구 방천(防川)으로 가는 길은 약간의 긴장을 동반한다.

호랑이 출몰 출입금지 경고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호랑이 출몰 출입금지 경고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훈춘 시내에서 약 70km 떨어져 있는 방천까지 고속도로로 이동하다보면 검문소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군사훈련 중이니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난감한 상황을 겪었지만 요령있는 기사가 기지를 발휘해 별탈없이 통과했다. 

방천에 조상묘가 있다는 기사는 여기 저기 수소문하더니 20분쯤 후에 다시 시도해보자며 차를 돌려 시야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동한 뒤 담배나 한대 피자고 한다.  

차를 세우고 도로 옆 숲길로 들어서는데 '시베리아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이니 출입을 자제하라는 안내문과 육중한 나무 차단봉이 내려져 있다. 무서운(?) 호랑이 사진까지 붙여놨지만 분명 백두산 호랑이의 일족일터이니 한번 만나보자고 짙은 숲속으로 겁없이 몇발자욱 들어갔다가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다행히 이번엔 검문소를 무사통과해 방천으로 직행. 한참을 달리다보니 사구(沙丘, 모래언덕)가 형성된 도로 주변은 중국 땅이고 왼쪽은 러시아, 오른쪽으로는 두만강을 끼고 북측 라선시 원정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끝자락, 방천이다.

지난해부터 새로 만들어졌다는 국경철책은 강변을 따라 3m는 족히 넘어 보일 높이로 늘어서 있다. 두어 발자국 강쪽으로 설치된 옛날 철책은 그대로 두고 추가로 세운 새 철책은 짙은 녹색 페인트가 선명하다. 한번 걸리기라도 하면 살점을 뜯어낼만한 날카롭고 완강한 철조망이 위 아래로 촘촘하다. 누가 봐도 월경 방지 목적이다.

철책앞에는 "조선쪽을 향해 사진촬영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도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엄금한다"는 경고판이 엄중하게 서 있다. 

반면, 러시아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쪽의 철책 기둥은 발로 걷어차면 그냥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낡은 콘크리트 그대로이다. 

두만강철교. 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라진으로 이어지는 두만강역 방향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두만강철교. 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라진으로 이어지는 두만강역 방향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돈 1만원 정도를 내고 11층 높이의 전망대(용호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더욱 분명하게 한눈에 세 나라를 볼 수 있다.

러시아 하산역에서 두만강철교를 건너면 바로 북이다. 철길은 두만강을 따라 온성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자전거를 탄 주민들의 이동 모습이 간간히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지척이다. 철교를 지나면 바로 역사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방천풍경구의 안내지도에는 북측 산 넘어 두만강역이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물길과 바람의 힘은 두만강의 경계를 바꾸었다. 이순신 장군이 수비대장으로 근무했던 하중도인 '녹둔도'(鹿屯島)는 아쉽게도 시간의 흐름속에 러시아쪽으로 붙어버렸다. 

퇴적 모래로 인해 동해까지 선박이 이동할 수 없게 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중국은 북측 라진항 네개의 부두 중 1부두를 임차하는 것으로 동해진출의 방향을 정했으나 현재 사용은 못하고 있다. 라진항과 하산역을 잇는 남북러 협력사업도 대북제재를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중단된 상태이다.

동북아 경제활력의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왔으나 두만강 하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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