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맞은 장기수 박희성 선생을 찾았다. 하루 전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많은 하객을 맞아 구순 잔치를 치른 후라 피곤할 텐데도 박 선생은 [통일뉴스]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박 선생은 짧은 인터뷰 중에도 노동당에 대한 애착과 북송에 대한 집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이번 4.10총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이 이겨 정세가 확 바뀌길 기대했다. 박 선생과의 미니 인터뷰는 3월 24일 장기수들이 기거하는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이뤄졌다. / 편집자 주
□ 이계환 기자 : 90회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 박희성 장기수 : 나는 구순을 맞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작년에 암이 심해져서 그해를 못 넘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도리어 암이 쫙 내려가고 있으니까 몇 달 내로 완전히 내 몸에서 암이라는 그런 자체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해요.
□ 어제 여기 낙성대의 집에서 구순잔치를 하셨는데 손님들 많이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잔치니까, 나도 너무 당황했어요. 그리고 어제는 내가 여기 양심수후원회 낙성대에 온 지가 만 16년이 됐어요. 16년. 그런데 그동안에 여기 손님들이 집회 있으면 많이 오고 그랬는데 어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많이 왔어요. 여기 마루하고 방도 차고 저기 바깥 마당에도 꽉 차고 저기 위층에도 꽉 찼어요. ‘야 이거 내가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이렇게 대우를 받아도 되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상당히 가슴이 무거웠어요.
그러고 나서 어제 결심했어요. 내가 어떻게든지 암을 극복하고 더 살아가지고서 내가 원하던 조국에 돌아가야지. 내가 여태 뭐야 거기서 헤어져서 나와 가지고서 지금까지 있었던 데 대한 거 다 보고할 의무가 있어요. 왜 그런가 하게 되면 나하고 4명 나왔던 중에서 3명은 다 돌아가시고 지금 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뭐야 변절자 때문에 전투하면서 희생되고 한 거 다 보고해야 해요.
□ 남파하다가 발각돼 전투를 했고 또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 체포됐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 (오른팔을 가리키며) 여기 팔이 부러졌어요. (양쪽 팔을 대보며) 이거 지금 팔이 짧잖아요. 내가 쏘다가 맞았기 때문에 총알이 여기 맞고 이리로 나가면서 뼈를 부셨지요. 한 6개월 동안 깁스를 하고 있었어요. 인천 해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뼈를 잘못 붙여서 이렇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이 오른팔은 짧은 거예요.
□ 선생님은 2차 송환 희망자여서 북쪽에 가신다면 지금 말씀하신 남파 당시 전투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하고 또 그다음에는 북쪽에 계신 가족, 특히 자식들을 만나고 싶겠지요.
■ 물론 그렇죠, 그런데 나는 가족에 대한 거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1962년도에 북에서 나올 때 살아계셨던 분들은 당에서 보호해 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 잘 살아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당의 보호 하에서 잘 지내고 있겠구나 하니까 내가 마음이 편한 거예요.
딴 사람들이 자꾸 날 보고 뭐야 ‘가족에 대한 걸 왜 안 알아보냐’ 그러는데 지금 다 잘 있는 데 알아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알아보게 되면은 누구 돌아가시고 누구 돌아가시고 뭐 다 돌아가셨겠지요. 지금 내 나이 90이니까 우리 형님이 나보다 4살 위고, 누나가 또 4살 위이니까 그러니까 다 돌아가셨겠지요. 누이동생 하나만 나보다 6살 아래니까, 살아있는 내 가족이라는 게 우리 아들하고 누이동생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내가 물어보지 않는 거예요.
□ 당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하십니다.
■ 내가 입당한 날이 5월 24일이에요. 오늘이 3월 24일이니까 날짜로 두 달 뒤에요. 1950년 16살 때 입대해서 2년 만인 만 18세에 입당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사회생활 하면서 입당했지만 나는 화선에서 입당했어요. 전투하면서 입당 했기 때문에 화선(火線) 입당이에요. 화선 입당한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어릴 거예요. 그땐 정말 어렸지요.
그래서 전투 다 참가하고 훈장도 받고 했어요. 그때 전투할 때는 훈장을 그렇게 못 줘요. 왜 그런가 하면 훈장 신청한 것이 올라가다가 폭격 맞아서 싹 다 없어지고 했으니까. 그래서 전투 많이 한 사람들이 훈장 받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나도 훈장 2개밖에 못 탔어요.
□ 당시 다른 인민군들과 비교하면 훈장을 많이 받은 것이네요.
■ 그렇죠. 그때만 해도 두 개 탔으면 그건 많이 탄 거예요.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도 조선노동당에 대해서 잊어본 적이 없어요.
□ 1962년에 남파하다가 잡히셨으니 남측 사회에 산 지가 62년이 되었네요. 꽤 오랜 세월입니다. 한국 사회가 좀 어떤 것 같아요?
■ 여기야 사회도 아니야. 인민군대 있을 때에 나같이 16살짜리가 군대 나가서 선임들하고 같이 생활하면 자기 아들 같이 다 생각하고 나한테도 반말 한번 안 해요. 부대장이나 분대장도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지 뭐 ‘다음과 같다’ 이런 얘기 절대로 하질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16살짜리가 군에 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말 안해도 다 알지...
□ 4-5년 전만 해도 6.15산악회 회원으로 산을 매번 한번도 빠지지 않고 타고 또 만나는 장소에 가장 빨리 나오셨지요. 6.15산악회 표지를 갖고 다니면서 회원들 배낭에 일일이 꼬리표를 달아주셨구요. 선생님 연세에 산 타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때도 산에서 식사를 일부로 조금 하셔서 걱정이 됐어요. 요즘 식사는 어떠세요?
■ 식사는 지금 그전보다 더 안 되죠.
□ 더 많이 못 드세요?
■ 지금 아프고 그러니까 전보다 더 못해요. ‘식사 많이 해야겠다’ 마음은 그런데 그렇게 안 돼요. 나는 어떻게 돼서 그런지 딱 뭘 먹다가 ‘아니다’ 싶으면 더 이상 받아들이질 않아요. 그래서 좋은 점은 이제까지 배탈 한번 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변비라는 것도 한번도 걸린 적이 없어요. 어쨌든 음식을 먹다가 ‘이건 아니다’ 하면 젓가락이 전혀 가질 않아요.
□ 선생님께서는 2차 송환 희망자이셔서 북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시니, 아무래도 정세에 관심이 많겠습니다.
■ 정세 문제는 딴 사람들보다는 더 예민하지요. 이것저것 다 듣고 살펴봅니다. 하여튼 평양에는 꼭 가야 돼요. 지금 부산에 계시는 박순자 어머님이 내 생일 때 전화했잖아요. ‘축하한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뭐야 ‘아프지 말고 평양에 꼭 가야 하지 않는가’라고 했지요. 꼭 가고 싶지요.
□ 남쪽에서 4월 10일 총선거가 있는데 선거 결과가 정세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총선에서 바라는 마음 같은 게 좀 있어요?
■ 당연히 이번 총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이 많이 되기를 바라지요. 지난 문재인 정부 때 국회의원이 많이 됐는데도 남북 화해가 잘 안된 것은 잘못이지요. 그래도 이번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이겨야지요. 지금 정세가 나빠져 남북관계가 적대관계가 됐지만 특히 이번 선거에서 많이 이기면 적대관계가 다 없어지고 도리어 통일이 앞당겨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지요. 정세가 확 바뀔 수도 있지요. 그래야 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우린 전쟁은 꼭 막아야 합니다.
□ ‘양심수의 대부’이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도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권 선생님은 2000년 9월 장기수들의 북송에 큰 역할을 했고 그 후에도 2차 송환 희망자들을 위해 일해오셨지요. 그런 권 선생님도 바깥 출입이 예전 같지 않고요.
■ 권오헌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어제 내 구순 때, 그렇게 아픈데도 여기 와 가지고서 축하 말씀하시고 돌아가셨거든요.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운 적이 많지 않은데 어젯밤에 잠들면서 고마워서 많이 울었어요. 그런 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진명이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지금 유지되는 거예요.
□ 요즘도 집회나 행사에 가끔 나가시죠?
■ 여기서 딴 일이 없게 되면 꼭 가서 참가해요. 특히 통일에 기여하는 단체라 생각하면 꼭 가요. 며칠 전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할 때도 참가했고, 토요일 날도 민중당에서 무엇을 잘하는가 하면 미대사관 앞에서 반미집회 하거든 그건 꼭 참가해요. 나는 하루를 살아도 양심적으로 살고 집회도 내가 움직일 수 있으면 어디든지 다 간다, 그런 생각이에요. 죽기 전에 해놔야지 뭐 죽은 다음에 집회가 있다고 해서 가게 되나요.
□ 지금 2차 송환 희망자가 여섯 분이시죠?
■ 예. 지금 대상자가 6명 남았어요. 지금 6명 남은 중에서 여기 낙성대에 양원진(96), 김영식(92), 양희철(91),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있고 부산에 박수분(95) 한 명 있고 그다음 대전에 이광근(80). 우리가 한때 36명이었는데, 이제 다 돌아가시고 6명만 남았어요.
□ 고향에 가시려면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정세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갑자기 확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구순 축하드리고 계속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통일뉴스]는 내가 잘 알고 또 잘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아니까, 통일뉴스도 어려움을 잘 극복해야지요.
□ 고맙습니다. 거듭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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