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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유공자법이 ‘운동권 특혜법’? 국민의힘의 왜곡 공세와 진실

 

  • 발행 2024-04-22 18:52:28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소속 국회의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민주유공자법 제정촉구 전국 결의대회에 참석해 민주화운동 열사 영정을 들고 있다. 2024.1.31 ⓒ뉴스1


지난 17일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한 목소리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정차순 여사는 생전 아들의 명예회복을 간절히 염원해 왔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과도한 왜곡 공세를 펼치며 번번이 입법을 가로막아 왔다.

민주유공자법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이들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예우하자는 것이 골자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박종철 열사와 전태일 열사 등도 관련 법이 없어 민주유공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머물러 있다. 16대 국회부터 매 국회마다 민주유공자법이 발의됐지만 ‘운동권 특혜법’이라는 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면서 폐기를 반복했다.

이번 국회에선 법 적용 대상과 지원책을 대폭 제한한 대안까지 나왔음에도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공격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본회의 직회부 방침을 밝힌 가운데,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 봤다.

 

민주유공자법이 ‘운동권’에 대한 과도한 특혜다?


“이 법안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586 운동권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운동권 카르텔 특혜법이자 운동권 출신이면 유공자가 되어야 하는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비판이 있지 않습니까? 무겁게 경청해야지요.”

지난해 12월 14일, 민주유공자법이 논의되던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장. 당시 국가보훈부 박민식 장관은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이같이 말했다. ‘운동권 카르텔’,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법안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던 박 장관은 이내 궁색한 처지에 몰렸다.

“음서제도가 뭡니까” -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자식들에게 특혜 주는 것 아닙니까” - 박민식 당시 보훈부 장관
“무슨 특혜를 줬습니까” -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그냥 시험 안 치고 합격시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박민식 보훈부 장관
“이 법 어디에 그런 제도가 있습니까” -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아니, 특혜가 있는 것은 맞지 않습니까?”- 박민식 보훈부 장관

이는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공세의 본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여권에서는 마치 민주유공자법이 ‘운동권 출신’에게 대대손손 입시나 주택, 취업 등에 있어 각종 혜택을 주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정작 무엇이 특혜인지를 물으면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사실상 특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최소한의 지원책만 남아있는 탓이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간 민주유공자법을 보면, 예우 관련 규정은 사실상 인도적인 지원인 의료지원과 양로지원밖에 없다. 당초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는 수업료와 입학금 등을 지원하는 교육지원을 비롯해 취업·대부·주택지원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국가유공자법을 준용해 만든 것으로, 별도 법률이 제정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에게도 동일한 예우가 적용된다. 하지만 끈질긴 특혜 시비로 법안 처리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한 유가족들은 이를 모두 포기했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건 오직 자식의 명예회복뿐이었기 때문이다.

한현우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은 22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대부분 열사들이 20대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배우자와 자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혜택을 볼 수 있는 분들은 열사의 부모들 정도인데 이분들이 여든이 다 넘으셨다. 이 시기에 대학을 가겠나. 취업을 가겠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따르면, 민주유공자 대상자 중 사망자 136명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기혼자는 29명에 불과했는데, 이중 교육지원을 받을 수 있는 30세 이하 자녀는 1명뿐이다.

한 실장은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여당이) 문제 삼는다고 하니 포기를 하신 것”이라며 “우리는 제도적인 명예회복을 바라는 것뿐이라는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대안에는 고궁 이용 지원이나 지하철을 비롯한 수송시설 이용 지원과 같은 기본적인 조항 역시 모두 삭제됐다.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면, 가짜 유공자를 양산한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 부모님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고(故) 안치웅 열사 어머니 백옥심 여사, 고(故) 김귀정 열사 어머니 김종분 여사, 고(故) 김윤기 열사 어머니 정정원 여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4.11 ⓒ민중의소리

민주유공자법 적용 대상자에 대한 시비도 끊이질 않고 있다. 여권은 사상·이념단체 결성이나 노동운동, 부산동의대 사건 등을 거론하며 “민주화라는 개념이 남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상자의 명단과 공적이 공개되지 않아 ‘가짜 유공자’를 양산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법안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민주유공자법의 적용 대상자는 기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심의를 거쳐 결정된 민주화 운동 관련자 중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부상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 요건을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민주유공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죄, 내란·외환죄, 폭력행위 처벌법 위반죄 등을 범해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람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보훈부의 판단도 받아야 한다. 민주유공자법에 따르면, 민주유공자나 유족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보훈부장관에게 등록을 신청해야 하고, 보훈부장관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요건과 관련된 사실확인을 요청해서 통보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훈부 장관은 민주화운동 관련 공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깜깜이 심사’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또한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까지 거치도록 하고 있어 실제 누구를 예우할 것인지는 정부 손에 달려 있다.

 

 

오늘도 자식의 ‘명예회복’ 위해 국회 앞 천막 지키는 유가족들


민주유공자법 통과를 위해 유가족들은 오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분주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은 지난 2021년 10월 7일부터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출근 시간과 점심 시간, 퇴근 시간에는 국회 안팎을 오가는 국회의원을 향해 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로 삭발부터 단식까지 고된 투쟁을 벌이다 응급실로 후송된 유가족들도 여럿이다.

이날 1인 시위에 나선 고 권희정 열사의 어머니 강선순(81) 씨는 같은 날 통화에서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으면, 아직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한다”며 “민주유공자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명예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도 민주화라는 기둥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법안이 빨리 통과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민주유공자법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민주주의의 공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열사들과 유가족들이 오히려 모욕당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여당에서는 셀프 보상을 한다고 프레임을 걸지만, 법안 내용은 그게 전혀 아니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민주유공자법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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