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소문피해를 없애는 일이 필요하다'
ALPS(다핵종제거시설)수(水)의 해양배수가 시작된 2023년 8월 24일 일본 외무성은 이런 글을 트위터에 흘렸다. 'ALPS처리수의 해양방출이 개시. 국제사회의 정확한 이해와 우리나라(일본)의 힘씀에 대한 지지를 얻는 노력을 계속하여 일본산품에 대한 수입규제 철폐나 풍평(風評)대책에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최초의 한방울의 방류가 시작된 이날부터 최후의 한방울의 방출이 끝날 그날까지 그 책무를 성실히 다 하겠습니다'.
마치 '최후의 병사 1인이 쓰러질 때까지 조국을 사수하겠다'와 같은 전시체제에서나 보던 표현이다. '최후의 한방울'이라니? 전부 방출해도 전 탱크의 33%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 외무성 트위터에 '#STOP풍평피해'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는데 이 말은 'ALPS수 해양배수가 안전하다고 일본 정부가 말하는 대도 동의하지 않고 수입규제나 풍평(소문피해)을 일으키는 자는 우리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전력으로 박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된다. 이것은 프로파간다(선동)이다. 프로파간다의 첫걸음은 어떤 집단을 '우리'와 '저들'로 이분하고, 둘째는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렸다'라고 규정하며, 셋째는 '저들'을 '박멸해야 할 악'으로 선동하는 것이다.
풍평피해란 '근거 없는 잘못된 정보가 사회에 흐르면서 개인, 기업의 생산품이 불합리하게 기피되는 것'으로 '후쿠시마현산(産) 식품의 소비자 불매' 같은 것이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제1원전사고의 경우 실제 방사성물질이 흩어져 있기에 '풍평'이 아니라 실제 피해인 '실해(實害)'라는 것이다. 전농(全農)후쿠시마의 쌀 야채 소고기 거래가격과 출하량 자료를 본 결과 풍평피해가 일어났다면 후쿠시마산 쌀이나 야채는 소비자 기피로 가격 폭락이나 출하량 급락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그런데 2021년 말 현재 풍평피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2020년에는 원전사고 전인 2010년보다 가격이 높았다. 이유는 원전사고 전부터 후쿠시마산 쌀의 6할 이상은 '업무용'으로 출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용이란 외식산업이나 도시락체인점, 편의점 등 중식산업에 공급되는 쌀로 '일본 국산미'로만 표시된다. 2019~2020년에 후쿠시마산 쌀의 64%가 '후쿠시마현산'으로 표시돼 있지 않았기에 기피 자체가 불가능하다.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규동(牛井) 모두 후쿠시마산 쌀을 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2021년 현재 후쿠시마산 농산품에 풍평피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전사고를 이유로 후쿠시마산 농산품이 소비자로부터 기피되고 있다'는 말은 허구이다. 전농에 따르면 쌀 출하량은 10년 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후쿠시마원전사고 이래 반경 20~30km 주민의 피난으로 쌀농사가 불가능해졌기에 '실해'이지 '풍평피해'가 아니다.
후쿠시마제1원전 주변의 '부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구귀환률'을 들 수 있는데 원전 반경 10km 내의 기초 지자체는 인구의 92%가 없기에 당연히 쌀농가도 거의 없다. 반경 20km내로 확대하면 대략 80%의 주민이 없다. 당연히 쌀 생산량이 감소하는데 이것은 풍평이 아니라 실해이다.
어업, 해산물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후쿠시마현 통계를 보면 일본대지진 전(2010년) 182억엔에서 지진 후(2020년)엔 94억엔으로 해면어업 어획고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후쿠시마현에서는 쓰나미로 2916명이 사망・실종되고 어항시설도 파괴됐다. 사고 원전 반경 20km내 12개 지자체에선 주민피난으로 당연히 어업인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3년 8월 오염수 해양배출 이전에 후쿠시마산의 농산식품, 어패류에 '풍평피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거의 제로수준이었다. 이 시점에 외무성이 말하는 'STOP풍평피해'는 허위임을 알 수 있다. 만일 ALPS 해양배수가 시작돼 소비자의 구매거부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부나 도쿄전력이 ALPS수를 해양투기했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ALPS수 해양투기가 구매거부의 원인이기에 일본 정부・도쿄전력이 '풍평피해를 일으킨 범인'이 되는 것이다.
덧붙이면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일본 국내외 언론에서 '일본 정부가 어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ALPS수 배수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 약속이란 2015년 경제성이 후쿠시마어련에 문서로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떠한 (오염수) 처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관계자의 이해'라는 말이다. 이해는 '동의'와 다르다. 동의는 명백한 공지나 합의문서 서명 날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해는 상대적 인식으로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고도의 계산된 발언에 일본 국민이나 어민 그리고 국내외 언론까지 속았다고 볼 수 있다.
⑧'ALPS수에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말은 새빨간 거짓이다. 해양배수되는 것은 '삼중수소수와 그 외 방사성물질이 섞인 물'이다. 일본 경제성이 'ALPS수에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 오류 혹은 오도를 공표한 것을 언론이 검증 없이 확산시켰다. 'ALPS수에는 삼중수소만이 아니라 세슘이나 스토론튬이란 방사성물질이 남아있다'.
이 사실은 도쿄전력 홈페이지에 공개된 '다핵종제거설비 출구의 방사능농도'를 봐도 알 수 있다. 'ALPS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성분분석'으로 2023년 6월 30일 공개된 자료 중 세슘137의 사례를 보자. ALPS를 통과한 물이라도 1L당 0.1~1Bq(베크렐)의 세슘137이 잔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쿄전력은 다른 핵종(세슘134, 스트론튬90, 코발트60, 루테늄106, 요오드129, 망간54, 스트론튬89, 테크네튬99, 탄소14 등)도 데이터를 그래프로 공개하고 있다. 어느 것이든 대체로 물 1L당 0.1~1Bq, 많게는 5~10Bq 정도 남아 있다. 따라서 'ALPS수에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언론이나 경제산업성이 잘 사용하는 정보조작이다.
도쿄전력은 '방사성물질X선은 검출한계치 이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방사성물질X가 제로'가아니라 '너무 미량이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1L당 0.021Bq 이하의 미량의 α선 방사성물질이 있어도 측정을 하지 않고 바다에 내 버리는 것이다. 각각은 미량이지만 탱크 내 오염수량이 160만㎡이기에 총량으로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총량으로서 환경에 미치는 부하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일부러 무시한 것이다. 도쿄전력의 정보공개에는 '우라늄' '플루토늄'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하는 계산식이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등에 나와 있다. 그 계산식에는 α선은 γ선이나 β선의 20배를 곱한다(방사선가중계수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안전기준'에는 통 털어 '방사성물질'이라고만 한다. '측정한계치 이하여서 괜찮다'고 말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해양투기 후 넓은 해양 어딘가에서 검출될 가능성을 완전 부정할 수는 없다. '검출한계치 이하'는 '제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ALPS수에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말은 황당무계한 말이다.
'ALPS수에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오류가 확산된 것은 2013년 경제성이 오염수 처리에 대해 전문가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삼중수소수 태스크포'였다. 2018년 5월 경제성이 '삼중수소의 성질 등에 관하여'라는 자료를 ALPS소위에 제출한 것이 나중에 언론을 통해 '세계 다른 나라들도 삼중수소수를 해양배수하고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홍보를 했다. 세슘 스트론튬 코발트도 잔류하지만 '삼중수소 이외의 방사성물질은 정부기준 이하'라고 강조했다. 이 정부기준도 눈속임이다.
방사성물질은 모두 세슘137을 취하고 있다. 일본에서 대기로부터 해양에 침착한 세슘137의 양은 2011년 3월만 5~11PBq이며, 대기로부터의 침착이 5~11PBq, 직접배출이 3~6Bq로 단위가 P(페타)이다. T(테라)가 1조라면 P는 1000조. 일본 요미우리나 산케이신문이 규탄한 중국과 한국 원전의 해양배수의 단위는 '조=TBq'이다. 반면에 후쿠시마제1원전은 PBq단위로 1000배 차이가 난다. 방사성물질에 의한 해양오염이라는 점에서는 후쿠시마제1원전사고는 세계의 건전 원자로와는 1000배 규모가 차이가 난다. 진실은 ALPS수에는 삼중수소 이외의 것도 잔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⑨'후쿠시마제1원전과 같은 원전에서 나오는 해양배수는 전 세계에서 하고 있다'
악질적인 정보조작이다.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원자로를 '건전로' 또는 '정상로'라고 한다. 후쿠시마제1원전은 '사고로'라고 하는데 세계 원전 중 '사고로'에서 해양배출을 하는 곳은 후쿠시마제1원전밖에 없다. 미국 스리마일섬원전사고에서는 정부기준을 충족한 '처리수'라고 해도 하천에 방류하지 않았다.
건전로에서는 원자로 중에 물이 차있지만 핵연료봉에 접촉한 물은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폐로나 정기점검으로 밖으로 나올 때는 고준위폐기물로 고체화돼 보관된다. 보통의 원전에서는 핵연료에 접촉한 물을 절대 바다로 버리지 않는다. 온배수만 바다나 하천에 내보낸다. 이 온배수는 원자로를 통하는 물과 직접 접촉하지는 않지만 핵분열한 물질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온배수 측의 물도 일부가 변화해 삼중수소가 생기는데 이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건전로에서도 삼중수소를 포함한 배수가 나온다.
후쿠시마제1원전의 경우 원자로 3개가 붕괴돼 연료봉이 녹아내려 밑바닥에 붙어있다. 이를 '연료데브리'라 하는데 성분이나 형상을 아직도 모른다. 가까이 가면 인간이 죽을 정도의 고선량 방사선을 낸다. 그 핵물질에 물을 부어 식혀 만들어낸 물을 ALPS라고 하는 장치를 통과시키면 불가사의하게도 바다에 버려도 되는 물이 된다는 것이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진실은 전 세계에서 직접 핵연료봉에 접촉한 물을 바다에 방출하는 원전은 후쿠시마제1원전 한곳뿐이라는 사실이다.
⑩'일본 정부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
일본 정부가 정한 'ALPS수 안전기준'에는 독특한 계산방법이 있다. 가령 일본 정부가 정한 농도규제치가 '1L당 100Bq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방사성물질A가 ALPS수에서 10Bq 나왔다고 치자. 정부의 규제치로 나눠 계산하면 10분의 1=0.1이다. 방사성물질B, C, E, F 등 선택된 핵종 전부를 대상으로 마찬가지로 계속 반복해 비율을 계산한 결과의 총합계가 1이하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식의 결과를 '섭취독성지수(ingestion hazard index)라 하는데 방사성폐기물질이 포함돼 있을 때 안전도 계측에 사용하는 기준이다.
일본에서는 이 수치를 '고시농도비총화(告示濃度比総和)'라고 부른다. 2013년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고시'로 공지한 계산식에 준거한 '행정지도'의 하나이다. 국회가 의결한 '법률'은 아니다. 지킬 의무는 없고 지키지 않아도 벌은 없다. 행정용어는 법률->규칙->통달->고시 순으로 강제력이 약하다. 어디까지나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총화가 1이하'라는 것은 '피폭 선량이 연간 1mSv(밀리시버트)이하'를 의미한다. 이는 ICRP가 정한 일반 공중(원전작업원이 아닌)의 피폭허용량이다. 일본 정부의 'ALPS수=안전'은 다음 2가지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A)삼중수소는 제거할 방법이 없기에 그대로 내보낸다. '삼중수소를 포함한 배수의 해양투기는 세계 어디서도 하고 있다. 악영향의 보고는 없다. 따라서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해도 된다'. B)삼중수소 이외의 방사성물질은 '농도비의 총화=1이하'라는 정부 기준을 충족시키기에 안전하다. 여기서 B에 주목하자. 일본 정부가 말하는 안전기준치란 '인간의 신체에 안전'한지 여부이지 '환경에 안전' 여부가 아니다. 고시농도한도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의 기준이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기준이 아니다. 고시농도비총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있다고 해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기준에 불과하며 인체에 대한 안전기준으로서도 아주 두루뭉술한 것이다.
인간의 피폭은 크게 1)경구섭취해 소화기로 들어가는 내부피폭 2)호흡기로 흡입하는 내부피폭 3)물리적 접근에 의한 외부피폭 3종류가 있으나 고시농도비총화는 피폭경로를 경구섭취에만 한정해 계산한다. 호흡기 내부피폭이나 외부피폭은 무시하고 있다. 방사선이 α인지 β, γ, 중성자인지도 구별하지 않는다. 핵종의 종류, 선원(線源)의 강도나 거리도 고려하지 않는다. 장기나 조직에 따라 다른 방사선에 대한 감수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해양에 배출된 방사성물질이 인간에게 도달(피폭)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수중환경에 방출된 때라도 방사성물질에 따라 피폭경로는 다양하다. 현실의 '피폭'의 세부내용을 생략해 잡동사니 두루뭉술 '기준'으로 내놓은 것이 고시농도비총화이다. 결국 고시농도비총화는 '가상조건에 의거한 두루뭉술한 기준'에 불과하다. '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엄격한 수치가 아니다.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은 고시농도비총화를 설명할 때 'ALPS수를 70세까지 매일 2L씩 마셔도 안전하다'고 선전한다. 이는 가상조건으로 '소화기내부피폭만 생각한다'는 것으로 '핵종을 포함한 물을 마셔도 연간 피폭량이 1mSv가 되지 않도록 하세요'라고 예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그것을 'ALPS수는 마셔도 괜찮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설령 그것을 지킨다고 해도 현실의 안전을 100% 보증할 숫자는 아닌 것이다.
ALPS수가 향하는 곳은 인간이 아니라 해양이다. 해양이란 복잡한 생태계로 미지의 부분이 훨씬 크다. '인간이 마셔도 괜찮다'는 기준이 아니라 '해양이라는 환경에 방출돼도 안전한 기준'이 아니면 안 된다. 설령 인체가 섭취해 안전하다고 해서 환경 중에 방출해도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쉬운 예가 CO2이다. 이산화탄소는 보통 생활의 범위 내에서 인간이 흡입해도 몸에 이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환경에 흩어진 이산화탄소가 축적돼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기후변동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ALPS수 배출기준에는 이러한 '환경에 대한 장기적 영향'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ALPS처리수를 바다에 투기하면 100년 후, 300년 후에는 어떻게 되나'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게 문제다.
⑪'희석해 배수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방사성물질은 절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방사선을 뿜으면서 이동해 가는 것이다. 희석을 한다고 해도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희석한다'는 것은 '방사성물질이 인간과 조우(피폭)할 확률을 낮춘다'는 의미밖에 없다. 명화 '디어 헌터'에 나오는 소위 '죽음의 게임'인 러시안 룰렛게임을 생각해보자. 6발이 들어가는 회전식 권총 탄장에 총알 1발만 넣어 탄창을 룰렛처럼 돌리고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A)권총이 1정뿐이라면 당신 머리에 총을 맞아 죽을 확률은 6분의 1이다. B)이런 권총 1000정을 준비해 그 중 1정에 총알 1발만 넣어두고 1000정 중 1정을 골라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당신이 죽을 확률은 6000분의 1이다. 만일 이렇게 조건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C)1000정 가운데 1정을 골라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작업을 매일 1번씩, 1년간 계속한다. D)당신의 가족 친척 친구 1000명을 모아 전원이 동시에 1정씩 골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면? 1명은 반드시 죽게 돼 있다. 권총을 1000정으로 늘려도 그 중 어딘가에 있는 총알 1발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사성물질을 희석해 해양에 투기하면 1~2년 내에 그 물질이 검출돼 연안국의 어업에 해를 일으킬 확률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세슘137이나 스트론튬90의 격리기간은 약 1만5천년. C에서는 '1년'이라 가정하지만 방사성물질로 1만5천년 간다면 어느 정도로 총알 맞을 확률이 높아갈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D의 사례는 방사성물질에 조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수가 늘어나면 희석을 해도 피해 입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ALPS수 해양투기 전엔 일본 국민 1억2천만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국제적 해양방류 뒤엔 세계인구 80억명으로 피해 우려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2021년 ALPS수의 해양투기를 최초 결정한 스가 총리는 2년 뒤 총리직에서 이미 물러났다.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 사이에는 오랜 시간과 공간의 틈이 있다. 진실은 '희석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⑫'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보아도 무시할 수 있다'
참치를 예로 들어보자. 참치는 '회유어'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계속 헤엄친다. 바다는 경계가 없다. UNSCEAR(유엔방사선영향위원회) 2022년 보고서에는 이미 캐나다에서 참치에서 방사성물질 검출이 보고되고 있다. 바다에 1L당 0.1Bq의 세슘이 방출된다고 하자. 먹이사슬을 통해 최초의 플랑크톤에 세슘은 조금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먹이사슬의 상위로 갈수록 방사성물질이 점점 체내에 축적되는 '생물농축'현상이 생긴다. 장기적으로 ALPS처리수가 해양생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나 평가를 일본 정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PCB(폴리염화비페놀)나 다이옥신, 수은 등은 어느 정도 연구데이터가 있지만 방사성물질은 실측데이터가 없다. 후쿠시마오염수 해양투기는 지구 최초로 '경험치'가 없다.
'희석되기에 괜찮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ALPS수가 육지를 떠나는 단계에서의 이야기이다. '환경 중에 방출해도 안전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은 한 그 물질을 환경에 방출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원칙이 국제사회에 정착돼 있다. 이를 '예방원칙'이라고 한다. 예방원칙이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것은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부터다. 의학세계에서는 예방원칙이 이미 보급되고 있다. 소위 '예방의학'이다. ALPS수의 해양배수는 예방원칙에 완전 역행한다. ALPS수 해양배수가 시작돼 앞으로 수십년 수백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후쿠시마원전과 일본 정부의 죄이다. 지금까지는 일본 국내에서 오염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지만 해양배수로 국제문제가 돼버렸다. 세계의 바다는 모두 연결돼 있다. 진실은 방사성물질의 해양 중에서의 거동이나 장기적인 영향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정치를 하고, 학문을 하는 지? 언론은 왜 존재하는 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소위 정치가, 학자, 언론인의 곡학아세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최근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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