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칼럼]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의 파산 선언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5.25. 05:06:58 최종수정 2024.05.25. 05:06:59
지난 14일 대통령의 검찰 인사는 '찐윤횡사'였다. 그래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생겼다. '찐윤 어벤저스' 검찰 진용을 대통령이 스스로 해체한 이유는 뭘까?
앞서 검찰은 윤석열 라인의 핵심 중의 핵심들로 짜여져 있었다.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 김창진.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윤석열 정부 법무부 초대 검찰과장을 지낸 '찐윤' 검사였다 그는 1차장 산하 형사 1부에 김건희 영부인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가 이번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튕겨져 나갔다.
김건희 영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고형곤 4차장.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 시절 조국 전 민정수석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수사해 구속시키고 유죄를 받아냈다.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의 상징인 '조국 수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지만, 영부인 수사에 손을 댄 후 이번에 수원고검 차장 검사로 튕겨져 나갔다.
이 모든 사건을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송경호. 2017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임명돼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밑에서 이명박 정부 비리 수사를 담당했다. 2019년 8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자마자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승진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다가 역시 '영부인 수사'를 앞두고 갑자기 부산고검장으로 튕겨나갔다.
한동훈·이원석과 연수원 동기이자, '특수 트로이카'로 불리던 부산고검 차장 주영환. 그는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사청문준비단당을 맡았고, 이후 대구지검장을 지냈으나, 이른바 '쥴리 의혹'을 제기했던 안해욱 전 대한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한 후, 갑자기 부산고검 차장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두번째 좌천을 당하면서 아예 스스로 옷을 벗었다.
검찰총장 이원석.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면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조직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 되자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승진했지만, 추미애의 '검찰총장 패싱' 인사 때 좌천당했다가 현 정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 그가 이젠 '검찰총장 인사 패싱'의 당사자가 됐다. 사실상 '나가라'는 신호다.
윤석열 정부의 '1기 검찰 진용'은 '윤석열 라인' 특수통 엘리트 중 엘리트들로, 과거 검사 윤석열을 정점으로 하는 '동일체'의 손과 발, 눈과 귀를 담당해 왔다. 그 '어벤저스'가 이번에 윤 대통령의 스냅 한 방으로 절반이 날아갔다. 쉽게 말해 '자해 인사'다. 그래서 이런 인사가 설명되려면 '자해 인사'를 할 만큼 '대통령은 찐윤 검사들마저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란 의심을 먼저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에 그 단서가 있다.
"도이치니 하는 이런 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도 사실은 지난 정부 한 2년 반 정도, 사실상은 저를 타깃으로 해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서 정말 치열하게 수사를 했습니다. 그런 수사가 지난 정부에서 저와 제 가족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것인지, 봐주기 수사를 하면서 부실하게 했다는 것인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정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저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부 검사의 버릇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수사'가 곧 '최종 결과'라는 착각이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이 그 예다. '초동 수사' 결과가 보고된 후 드라마틱하게 뒤집힌 건 '누군가'가 '초동 수사'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고 '격노'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 특수통 출신의 이 정부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는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정순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윤석열 수사팀은 2019년 9월 6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청문회 도중에 '공소시효 임박'을 이유로 정경심 교수를 소환 한번 하지 않고 전격 기소했다. '유죄 확신'이 없었다면 형사 제도 실무와 상식을 뛰어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의 동네 주민으로 알려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자신의 책 <위기의 대통령>을 통해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독대에서 "제 상식으로는 조국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정경심을 기소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썼다. 검찰의 힘은 '수사 단계'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극대화된다. 실제 무죄인지, 유죄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소 단계에서 모든 판단이 끝난다.
그런 면에서 "도이치니 하는" 사건은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 이미 마무리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의 '찐윤 어벤저스'는 "도이치니 하는" 사건을 끝맺음하지 못했다.
"봐주기 수사를 하면서 부실하게 했다는 것인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정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의 수취인은 문맥상 특검을 주장하는 '야당'이지만, "치열하게 수사를" 한 사안인 "도이치니 하는"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 검찰을 향한 말로도 들린다. 그 말을 들은 검사들은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이치니 하는" 사건에서 동일체의 머리(윤석열)와 손발은 따로 논 셈이 된다. 동일체가 동일체로 작용하지 못한 것이다. '찐윤 어벤저스' 해체 명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정말 묻고 싶은 건 송경호와 이원석에게 돌아갈 질문들이다. 왜 "치열하게 수사"를 한 사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었는지, '무혐의' 처리를 못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송경호와 이원석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식 속에 이미 '셧다운'된 사건을 그들은 왜 쥐고 있었던 것인가. 혹시 대통령의 '약점'이라도 쥐고 흔들려 했던 것은 아닌가. 대통령의 '통제 밖'으로 감히 나가려 모의하지 않았는가. 이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게 놔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재임 시절 왜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었을까?
검찰 수뇌부의 거취가 영부인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공적인 검찰 인사는 드라마 속 궁중 암투 스토리 수준으로 격하된다. 그리고 시중에 '궁중 암투' 소문이 널리 퍼진 나라라면 그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대통령의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할 때, 셰익스피어식 비극은 시작된다. 비극의 요인은 욕망과 의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천성적 결함이다. 권력은 파멸로 하면서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 맥베스는 전장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를 만나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전해들은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를 회유해 왕을 죽이도록 하고, 맥베스는 결국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권력을 욕망할 줄 알고 쓸 줄은 몰랐던 맥베스는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다른 예언들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 친구와 경쟁자의 주변인들을 제거하며 왕위를 유지하지만, 파멸의 예언이 실현되는 걸 막는 행위가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인간의 권력과 욕망은 두려움과 의심을 낳고,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판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공적 영역'에 '사적 안위'를 개입시킨다. 권력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균형 감각과 공적 마음가짐을 상실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린 역사와 문학을 통해 배워왔다.
이번 검찰 인사는 이 정부 출범 모토인 '공정과 상식'이란 상징 자본의 파산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 부부의 안위' 앞에서 '친윤 검사들'마저 내친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내 근본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대통령도 '갸웃'할 그런 의문이다.
과연 최고의 충성파로 꾸린 '1기 친윤 진용'보다, '2군'으로 꾸려진 '2기 친윤 진용'이 더 (대통령 입장에서 볼때) 유능한 사람들일까? 지지율 24%(한국갤럽 24일자 여론조사 기준)짜리 대통령은 그들을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인사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까? 지금 신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그 두 갈래 길이 각각 어떤 길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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