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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제협력 ‘기회의 문’ 닫히고 있다

<초점> 박 대통령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 실현가능한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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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1 08: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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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의 카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박근혜 대통령이 ‘DMZ 세계평화공원’에 이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을 밝혀 주목된다. 둘 다 북한과 함께 진행해야 할 남북 협력사업이다.

박 대통령은 18일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유라시아 동북부를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는 복합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유럽까지 연결해서 부산을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제시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박 대통령이 제안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가 현실화된다면 한국도 대륙에로의 길이 막힌 반도국가를 벗어나 대륙과도 직접 연결된 대륙국가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7일 독일 베를린을 출발한 ‘평화열차’가 러시아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중국 베이징, 북한 평양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고 있지만 남북간 협의가 벽에 부딪쳐 성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물류, 에너지, 인적교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협력 과제들이 남북관계의 안정과 북한의 개혁 개방 없이는 풀어가기 어려운 과제”라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북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러시아의 극동지역, 중국의 동북 3성, 남.북.러, 남.북.중 3각 협력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안정’과 ‘북한의 개혁 개방’, ‘북핵문제의 진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SRX 구상은 한낱 구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SRX 구상을 제기한 것은 SRX 구상을 핵심으로 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한국 경제의 탈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 교통 및 에너지 인프라 구축은 그간 막혀있던 물꼬를 열어 내륙 유라시아와 한국, 그리고 중국과 일본까지 참여하는 유라시아 경제권 형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유라시아 지역의 물류, 에너지 네트워크 강화는 물류비용 절감과 전세계적인 무역 활성화뿐만 아니라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전반적인 안정을 통해 세계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기대감을 표했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베트남전쟁 특수와 중동건설 특수 등이 ‘유라시아 이시셔티브’라는 세련된 용어로 다시 한번 등장한 셈이다. 물론 ‘제2의 새마을 운동’ 보다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시대적 상황에 훨씬 더 적합한 선택이라는 점은 평가할만하다.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남북협력 프로젝트

박 대통령이 밝힌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은 이미 지난해 연말 인수위 시절부터 제안된 남북간 협력이 가능한 ‘신성장 동력사업’ 중 첫 번째로 꼽힌 ‘신의주-평양-개성 연결 고속철도 및 도로 건설 방안’이라는 구체적 남북협력 프로젝트로 제시된 바 있다.

남북경제협력연구소(대표 김한신)가 인수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를 1차 계획기간으로 설정, 총 376km에 걸쳐 기존 도로와 별도의 부지를 확보해 4차선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이다.

철도의 경우는 신의주-평양-개성을 복선으로 건설하고 신의주, 정주, 신안주, 평양, 사리원, 해주, 개성에 고속철역 인터체인지를 설치하며, 고속도로의 경우, 2015년까지 신의주-개성 구간을 완공하고, 2018년까지 신의주, 평양, 개성 광역인터체인지를 완공한다는 것이다.

 

   
▲ 북한은 '신의주-개성'간 철도.도로의 새로운 노선을 확정해 부지선정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이미 부지선정까지 마치고 관련 도면을 제시하고 있으며, 총 소요금액은 14조 1천억원으로 철도는 9조 4천억원, 도로는 4조 7천억원을 책정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4%인 8조 8천억원은 자원 개발금에서 충당이 가능하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자원판매대금 8조4천억원, 건설사 3조원, 민자유치 등을 통한 2조6천억원을 각각 조달하며, 조달방식은 BOT(기부체납), BOTL(민간운영), 자원 개발권 담보 등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프로젝트는 남측의 경험과 기술, 북측의 자원과 노동력이 융합될 수 있는 최적의 사업이며, 특히 남측의 유휴 건설장비를 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양산업이 된 건설업이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남북이 윈윈할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의 실현태인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사업은 북측이 이미 오래전부터 남측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구상했으나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경색돼 조선합영투자위원회(합투위)가 중국 선양 소재 항천그룹과 2010년 MOU를 체결하고 남측 정부의 교체를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이어받아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도.도로를 완공함으로써 대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북측은 중국의 상지공사와 한국계 홍콩자본에게 건설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상지공사 미창 총경리(오른쪽)가 지난 6월 29일 63빌딩에서 스포츠서울과 MOU를 체결하고 있다. 상지공사는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주 사업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근 북측 인사를 제3국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대북 소식통은 “북측이 중국 기업과 MOU 체결 직전인 상황이라고 들었다”며 “남북협력을 통한 건설을 주장해오던 북측 관계자들마저 이제는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비관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기류를 전했다.

 

남북이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결국 그 몫은 중국에게 넘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며,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상지공사의 남북한과의 경협사업을 자문하고 있는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남북관계가 잘 됐으면 남북이 손을 잡고 우리 방식, 우리 신호체제로 건설해야 할 사업인데, 제3국 업체가 건설할 경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북한이 철도.도로 건설 상환 물건으로 평남 대흥군에 있는 300톤 매장량이 확인된 대흥금광을 내놓을 정도로 적극적이므로 우리 건설업 경기를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목전에 두고 다시 냉각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악의적 보도와 남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랄한 실명비판까지 등장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대화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강경 대결정책으로만 치닫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남측과의 대화를 강조했던 최승철 노동당 통전부 부부장 등 대화파들이 대거 숙청됐던 사례를 지적하며 박근혜 정부와의 대화에 앞장섰던 협상파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현 정부 초기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실패한다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치상황이 지속됐듯이 박근혜 정부 5년 역시 남북관계가 단절돼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밖으로부터의 훈풍과 우리 정부의 선택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눈길을 끄는 두 가지 자료가 제시됐다.
하나는 우상호 의원실에서 북한의 경제개선 조치가 가속화 되고 있지만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자료와, 다른 하나는 홍익표 의원실에서 대북 경제제재가 시행되고 있지만 북한 경제는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북한의 연도별 대외무역액 증가 추이> (단위: 백만 달러)

 
   
▲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 남북경협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 교역량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제적 제재와 남북 경제협력이 막힌 상황에서도 북한은 경제개선조치를 진행하고 있고, 실제로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정치 난장이'에 머물러 있다면 남북은 분단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기회의 문을 스스로 닫아걸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특히 군인 출신의 국가정보원 원장과 청와대 안보실장, 공안통 대통령 비서실장의 존재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상생(윈윈)이 필요한 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박 대통령이 남북 협력을 통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의 참모진들부터 그에 적합한 인사들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안정’과 ‘북한의 개혁 개방’, ‘북핵문제의 진전’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와 같은 구체적 실천을 통해 도달해야할 목표로 삼는 사고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북한은 물론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강력한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또한 북한이 전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핵무력 건설’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 점도 변수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그간의 여러 물밑 작업의 결과가 북미간 합의로 가시화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경제건설’을 위한 대외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대폭적인 양보조치를 취하면서 경제제재를 완화시킬 경우 중국에 이어 EU (유럽연합) 등 외부 자본의 대북 투자가 가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은 이미 경제개발구법 제정과 국가경제발전위원회 조직 등을 통해 경제건설을 위한 채비를 갖추고 남북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사업들에 남측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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