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두 사람도 길원옥 선생님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에 열심이셨고 행복해 하셨다"라고 인정했다. 또 두 사람은 매주 길원옥 할머니를 찾아와서 만나고, 수시로 통화하면서 길원옥 선생님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어떤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물론 양아들과 그 부인은 검사들의 목적과 주문대로 앞뒤가 안 맞는 진술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2014년부터 치매였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의연과 윤미향에게 이용당해 온 것이다. 북한 동포와 재일조선학교 등에 기부금을 낸 것도 정의연에 물들어서 그런 것이다.' 검사들은 자신들이 마구잡이로 압수해 간 수많은 자료와 윤미향-손영미 간의 사적인 문자 대화 등을 짜깁기해 이를 뒷받침하려고 했다.
그런데 검사들의 이러한 프레임과 두 사람의 진술은 지독한 논리적 모순이었다. 왜냐하면 그 증언이 맞다면 길원옥 선생님이 검찰의 부추김 속에 양아들 부부와 함께 '윤미향에게 속았다'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도 ‘치매에 걸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행동’이 되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선택적 치매 효과’라는 논리로 모순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즉, 길원옥 할머니가 더 젊었을 때 반전 평화와 여성 인권을 위해 한 활동은 전부 ‘치매에 걸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일’이고, 더 나이가 들어 노환이 심해진 상황에서 검사들의 프레임에 맞게 행동한 것은 전부 ‘가끔 제정신이 돌아오면 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2023년 2월에 나온 1심 판결에서 법원은 다른 대부분의 혐의와 함께 이 부분을 무죄로 선고했다. 같은 해 9월에 나온 항소심 판결과 지난해 나온 대법원 판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원옥 선생님의 양아들이 형사 재판과 별개로 윤미향 의원에게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과 위자료 청구' 민사소송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초에 나온 판결에서 재판부는 '인권 옹호 활동과 기부행위 등은 길원옥 할머니의 의사에 의한 주체적인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런 결과들에 대해서 당시 윤미향 의원은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안심했다. 자신이 겪은 부당한 수사와 재판이나 마녀사냥의 지옥 같은 고통보다 길원옥 선생님에게 갈 피해를 더욱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제 사건으로 인해 정말 존경스럽게 운동을 하셨던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에 의해서 윤미향에게 끌려다닌 할머니, 아무 인식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킨 대로 인터뷰를 하고, 기부를 한 할머니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어요. … 그로 인한 고통이 저한테 굉장히 깊었어요. … 길원옥 할머니가 판결문에서 고귀한 존재로, 우리보다 훨씬 멋진 운동가로 자리매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물론, 일본 정부는 결코 사과하지 않고, 한국 정부는 제대로 노력하지 않는 속에서 고령에 접어들고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길원옥 선생님의 정신도 갈수록 쇠약해진 것은 사실이고 자연스러웠다. 윤미향과 정의연도 이것을 숨긴 적이 없었다. 이미 2019년에 나온 영화 <김복동>의 마지막 장면은 길원옥 선생님이 김복동 선생님을 기억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거기서 길원옥 선생님은 김복동 선생님과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괴로워했다. "요즘에 갈수록 기억이 안 나요. 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까맣게 몰라." 길원옥 선생님 양아들 부부는 지난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가 그토록 의지했던 손영미 소장님이 목숨을 끊은 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게 차라리 나은 일일지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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