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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딸의 디자인 작품으로… 기부 팝업스토어

김민주 기자

minju@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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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2일까지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이태원 참사를 겪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 가져"

사업 3년 차에 참사 "날개 못 편 게 아쉬워"

"딸이 좋아할 것 같아, 가치를 알아주는 게 중요"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을 2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언더스탠드 애비뉴 D24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팝업 스토어에서 만났다. 2025.02.27. 시민언론 민들레

"주영이가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시행령을 위해 길거리 투쟁만 했는데 지금은 온전히 주영이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

한겨울 한파가 물러가 따뜻한 햇볕을 느낄 수 있는 날,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을 2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언더스탠드 애비뉴 D24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팝업 스토어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로 별이 된 고 이주영 양의 아버지로, 이곳은 주영 양의 디자인 작품 팝업스토어다. 작품은 전시와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으며, 이 위원장은 디자인 작품 수익을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할 계획이다.

전태일의료센터는 노동, 보건의료, 시민·사회가 함께 만든 사회연대병원으로, 모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산재·직업병, 노동자의 건강 문제 등을 전문적으로 대응한다.

전시장 외부는 아기자기한 고양이 캐릭터가 붙어 있고, 내부는 햇볕만큼이나 환하다. 내부에는 고양이 스티커, 고양이 마우스 패드, 고양이 노트 등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들은 주영 양이 키우던 고양이 '민트'와 '초코'를 캐릭터로 만든 것이다. 전시장 한켠, 이 양이 디자인 작업을 하던 공간을 재현해 놨다. 사진 속 주영 양은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언더스탠드 애비뉴 D24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2025.02.27. 시민언론 민들레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줄을 이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은 친숙한 고양이 그림에 반가워했고,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작품을 골랐다. 주영 양의 엽서에 색칠하기도 했다. 고양이 스티커가 특히 인기가 많았다.

이 위원장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시행령와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이 아닌, 이태원 참사로 잃은 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이 위원장은 "그 일(이태원 참사)을 겪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회를 출퇴근하다시피 하니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런 게 보이니 나도 남은 삶을 선한 에너지에 쏟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주영 양의 이름으로 팝업스토어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후원자들이 전태일의료센터에 그냥 후원하기보다는 이렇게 물건을 사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받아들여졌다"며 "원래는 딸의 디자인 작품을 기부만 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팝업스토어를 하게 되어 아주 정신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을 하면서 말하지 않았던 주영 양의 이야기를 했다. 여태까지는 이태원 참사에서 별이 된 다른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꾹 참았던 딸의 이야기다.

이들은 평범한 아빠와 딸처럼 진로나 취직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과 아버지의 흔한 입장 차이였다. 이 위원장은 "딸이 나한테 '꼰대'라고 했었다"며 "아이가 떠난 뒤 아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많다. 덤벙대는 막내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업도 했고, 주영이 친구들은 아직도 주영이 칭찬을 한다. 왜 그땐 이런 주영이의 장점을 알지 못했을까"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딸은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혼자 힘으로 사업을 이뤄냈다. 이태원 참사가 터져서 별이 된 것이 주영 양이 사업을 한지 3년째 되던 해다.

그는 "주영이가 날개를 펴는 것을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며 "(팝업스토어는) 딸이 생전에 만들어놓은 디자인 작품으로 꾸렸다. 딸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답례품으로 주기도 했는데, 딸이 평소에도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딸 생각 그대로 가치 있는 곳에 작품을 쓰니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팝업 스토어에는 이태원 참사로 별이 된 고 이주영 양의 작업실 모습을 재현해놨다. 2025.2.27. 시민언론 민들레

그러면서 "딸이 떠난 것을 알았을 땐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며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조언한다. 나도 주영이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 그나마 캠핑도 같이 다니고 술도 마시는 등 함께 대화를 많이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딸에게 아이패드를 생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는데 엄청 좋아했었다"며 "너무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 고맙다곤 안 하더라. 그래도 조금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주영 양의 친구들은 주영 양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도 너무 힘들지만, 참사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들도 아직 힘들어한다"며 "밤에 잠을 자지도 못했고, 정말 큰일 날까 봐 우리도 걱정했다. 참사는 참사를 당한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딸은 하늘의 별이 됐지만, 이제 가족들은 '슬픔'만 느끼고 있지 않다. 이 위원장은 "슬픈 감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며 "슬픔을 승화시켜야 한다. 우리 가족은 팝업스토어를 하면서 다시 위로받고 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딸아이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전했다.

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참 힘든 일도 많았는데, 주영이 이름으로 팝업 스토어를 할 수 있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영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자 이 위원장은 "그렇게 느낀다면 제 삶은 아주 성공한 삶이 되는 거죠"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 위원장은 향후 일정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지금은 너무 과분한 마음이다. 나중에 이태원 참사로 별이 된 아이들의 소지품을 모아서 전시를 할까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주영이가 그린 태일이의 꿈' 팝업 스토어는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성동구 서울숲 언더스탠드 애비뉴 D24에서 진행된다.

 

 

팝업스토어 한쪽 벽면에 마련된 고 이주영 양의 사진. 2025.02.27.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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