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줄을 이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은 친숙한 고양이 그림에 반가워했고,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작품을 골랐다. 주영 양의 엽서에 색칠하기도 했다. 고양이 스티커가 특히 인기가 많았다.
이 위원장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시행령와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이 아닌, 이태원 참사로 잃은 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이 위원장은 "그 일(이태원 참사)을 겪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회를 출퇴근하다시피 하니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런 게 보이니 나도 남은 삶을 선한 에너지에 쏟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주영 양의 이름으로 팝업스토어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후원자들이 전태일의료센터에 그냥 후원하기보다는 이렇게 물건을 사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받아들여졌다"며 "원래는 딸의 디자인 작품을 기부만 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팝업스토어를 하게 되어 아주 정신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을 하면서 말하지 않았던 주영 양의 이야기를 했다. 여태까지는 이태원 참사에서 별이 된 다른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꾹 참았던 딸의 이야기다.
이들은 평범한 아빠와 딸처럼 진로나 취직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과 아버지의 흔한 입장 차이였다. 이 위원장은 "딸이 나한테 '꼰대'라고 했었다"며 "아이가 떠난 뒤 아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많다. 덤벙대는 막내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업도 했고, 주영이 친구들은 아직도 주영이 칭찬을 한다. 왜 그땐 이런 주영이의 장점을 알지 못했을까"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딸은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혼자 힘으로 사업을 이뤄냈다. 이태원 참사가 터져서 별이 된 것이 주영 양이 사업을 한지 3년째 되던 해다.
그는 "주영이가 날개를 펴는 것을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며 "(팝업스토어는) 딸이 생전에 만들어놓은 디자인 작품으로 꾸렸다. 딸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답례품으로 주기도 했는데, 딸이 평소에도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딸 생각 그대로 가치 있는 곳에 작품을 쓰니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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