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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자유" 21번 불렀던 그 자리, 이재명은 "대한민국" 33번 외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외교무대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우선 남북 교류부터 시작하는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는 길을 만들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현지시간 23일 낮 미국 뉴욕 유엔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회기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유엔 80년이 이룬 성취? 대한민국 80년 역사를 봐라"

이 대통령은 우선 유엔 창설 80주년을 축하하며 "유엔이 걸어온 지난 80년은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미래세대를 위한 길을 모색해 온 소중한 여정"이었다며 "누군가 유엔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80년 역사를 바라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유엔이 설립된 해 식민 지배에서 해방됐고 유엔의 도움으로 분단의 상흔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며 산업화를 일궈내고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며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유엔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나라"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12월 3일 일어났던 내란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한때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기에 처했지만 대한민국은 그때마다 불굴의 저력으로 일어섰다"며 "친위쿠데타로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국민의 강렬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었다며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 세계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오늘 유엔총회에서 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적대행위도 추구하지 않을 것"

이 대통령은 '민주 대한민국'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며 "취임 직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END 이니셔티브'를 새롭게 제창했다.

즉,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평화 이티셔티브가 무위를 끝나고 뒤이은 보수 정권의 대결적 자세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일단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화해와 평화로 가는 물꼬를 터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한반도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남북 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추켜세우고 자신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했던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화해 및 비핵화 과정에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측이 곧바로 일축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비핵화 집념만 털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해 북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해서도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하여,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AI, 지구적 과제 해결할 중요하고 새로운 도구"

글로벌 현안 해결과 관련 인공지능(AI) 기술의 위협과 순기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AI 시대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닌다면 기술 악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디스토피아를 맞이할 것"이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높은 생산력을 동력 삼아 혁신과 번영의 토대를 세우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유용한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24일 안보리 의장으로서 주재하는 공개토의 자리가 "AI의 책임있는 이용을 촉진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10월말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에서는 'APEC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첨단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모두를 위한 AI'의 비전이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AI가 주도할 기술혁신은 기후 위기 같은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중요하고 또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대한민국은 과학기술과 디지털 혁신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 안으로 책임감 있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여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에 동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최희덕 국가안보실 외교정책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의원,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 연합뉴스

이 대통령 첫 유엔연설 약 20분 소요... '평화' 25번, '민주주의' 12번 언급

7번째로 등장한 이 대통령의 첫 유엔연설에는 약 20분이 소요됐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 2022년에 11분, 2023년에 15분씩 걸렸던 것에 비해선 약간 길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22분과는 비슷한 길이였다.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한 만큼 이날 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이 33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했고, '평화' 25번, '민주주의' 12번 순이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외쳤고, 2023년에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홍보하며 '대한민국'을 20번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2023년에는 직접 참석해 연설을 했지만, 2024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대신 연설했다.

이날 한국 대표부 자리에는 위성락 국가안보실 실장, 임웅순 국가안보실 2차장, 차지훈 주유엔대사 등이 앉았고, 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최희덕 국가안보실 외교정책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의원,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등은 관객석에서 지켜봤다.

#이재명#유엔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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