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지만 그렇다고 판을 깨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 상황을 단순하게 둘로 나눠보면 이렇게 됩니다. '3500억~5000억 달러를 주든지 vs. 관세 25% 또는 그 이상의 관세로 보복을 당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차라리 관세를 맞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관세 15%에서 25%가 돼도 수출대기업들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지 수출대기업들이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대로 500조 원 안팎의 달러는 조달할 형편도 안 되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동안 한국의 원화가치는 폭락해서 한국의 금융시장은 초토화되고 한국은 또 다시 외환위기를 맞게 될 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정말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세가 15%가 아닌 25%, 또는 트럼프의 성격상 협상을 타결 짓지 못하고 버틸 시 그 이상의 보복관세를 맞게 된다면 한국의 많은 수출대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빨리 공장을 이전해 미국 현지 생산을 하려 들 겁니다.
특히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밀집된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부울경) 지역이 타격을 심하게 입겠지요. 수출대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의 해외 공장 이전이 지금보다 훨씬 더 대규모로, 더 빠른 속도로 전개되면 부울경 지역은 미국의 러스트벨트화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이 극우화된 이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를 한가지만 뽑으라면 미국 공장지대의 러스트벨트화였습니다.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과연 정부나 집권여당이 이런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 스스로의 인식 속에서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뉴스타파>가 지난 8월 광복절을 맞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1%는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주변 5개국(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중 최고의 호감도입니다.
트럼프는 싫지만 미국과 척지는 것도 싫다, 미국은 특별한 우방이라는 게 한국인들의 일반적 감정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https://newstapa.org/article/15FIe)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과의 관세협정은 타결지어야 합니다. 중간에서 타협해야지요. 다만 그 중간이 우리쪽 중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미국의 요구는 극악스럽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심합니다. 그러나 돌아앉아 생각해보면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건 당연합니다. 자연스럽습니다. 각자의 관점에선 합리적입니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이후부터를 다시 돌아볼까요? 12·3 계엄은 시민들과 국회가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혼란스러졌죠. 헌법재판소를 흔들어대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탄핵 반대집회가 일어났고 당시 여당 의원들 대부분은 탄핵이 부당하다며 윤석열씨를 옹호했지요.
지난 3월 7일 지귀연 판사는 윤석열에 대한 구속을 취소했습니다. 3월 27일 지상파인 SBS는 별다른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헌법재판소가 5대 3 데드락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다시 공포에 사로잡혀야 했습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나라는 정상을 되찾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4월 20일 한덕수 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관세전쟁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놓고 말했지요. 미국이 취하는 관세 조치에 맞서지 않겠다. 나 또는 내가 속해 있는 정당으로 힘을 실어달라는 표현이었을까요? 사실상 주권을 포기하는 듯한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고선 그걸 토대로 총리실은 보도자료까지 냈습니다.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나라 팔아먹겠다고 미국에게 SOS를 친 꼴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달 5월, 대법원이 또 이상한 짓을 합니다. 한국의 대법원은 이른바 '이재명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5월 1일이었습니다. 고법의 판사들이 파기 환송심을 연기했기에 망정이지 대법원의 뜻대로 갔다면 이재명은 대선 후보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유권자가 선택할 기회 자체를 대법원이 박탈해버렸다는 의심은 지금도 팽배합니다.
5월 10일 어쩌면 그게 국민의힘의 마지막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무산됐지만 김문수에서 한덕수로 대선후보를 강제로 교체하려 했지요. 김문수 후보에 비해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명확히 다른 점은 미국 유학파다, 경제관료 출신이다, 친미라는 인식을 명확히 심어줄 수 있다, 외신에서 난 관세에 저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6월 3일에 있었습니다. 불과 넉달 전이네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했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내란세력이 한국을 통치했던 서너 달의 기간 미국과 물 밑에서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탄핵반대집회에 늘 등장했던 미국 성조기, 헌재를 흔들려했던 오래된 기득권세력, 한덕수씨의 4월 17일 외신 인터뷰, '이재명이 대선후보 되는 것을 막아라'는 언질을 누군가로부터 받은 듯한 5월 초 대법원의 기괴한 정치적 행보, 그리고 끝내 한덕수씨로 대통령 후보를 바꾸려한 국민의힘의 의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미극우동맹의 혐중, 부정선거론, 그리고 노골적인 대선불복(China Lee Out!!!)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결지어 생각해보세요. 소름 끼칩니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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