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들 항의를 권력 찬탈극에 악용한 군부와 언론의 합작
당시의 이른바 사북사태는 사진 한 장이 만들어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태 당일 <신아일보>가 찍은 사진 한 장은 중앙 일간지들에게, 언론 용어로 ‘풀(pool)’이 됐다. <조선> <한국> <중앙일보>에 공유돼 대서특필됐다는 얘기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온 국민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여인이 전봇대에 철삿줄로 묶여 있는 사진이다. 여인은 속옷을 미처 추스르지 못해서, 말 그대로 적나라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린치당하고 있었다. 신문을 본 사람들은 강원도 광부들이 폭도가 돼 난동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군중들에 의해 사람이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가상의 공포를 줬다. 당시의 계엄군 지휘부가 만들어 놓은 이 교묘한 언론 플레이(보도지침)는 사북사태를 이용해 권력 찬탈극을 완성시키려는, 전두환 군부가 환호할 만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됐다.
군부와 언론은 사건을 확대했다. 불법 체포와 감금, 온갖 고문(구타와 물고문)이 이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용공사건(고정간첩, 불순분자, 과학적 사회주의 건설, 남조선 민족해방 전선 등 자생 조직, 심지어 김대중이 배후라는 등등)으로 몰아갔다. 1980년 4월 23일에 벌어진 노사분쟁은 5월 8일 그렇게 ‘빨갱이 사건’으로 전환됐고, 열흘 후 광주로의 공수부대 투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사북’은 ‘광주’의 전초전이었으며 테스팅 모델이었다. 사북탄광에서 벌어진 고문 조작 사태는 안타깝게도 5.18이라는 거룩한 항쟁의 역사를 조명하느라 그간 뒷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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