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유령에서 인간이 된 기분입니다."
"내 이름이 법전에 있다니..." 50대 노동자가 울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3위일체'의 기적
"엄마, 손가락이 많이 휘었네"
"국회는 총성 없는 전쟁터…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노동자 자신"

"이제야 유령에서 인간이 된 기분입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진보당 정혜경 의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지난 9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십수 년 염원이 담긴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만든 '1호 법안'이 가장 높은 산을 넘은 것이다.
이 법안은 단순한 법 조항 몇 줄을 고친 게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뜨거운 솥을 안고 밥을 짓다 골병들고, 폐암으로 쓰러지던 '투명 인간'들이 자신의 직업과 이름을 대한민국 법전에 새겨넣은 역사적 사건이다. 정혜경 의원을 만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그 뜨거웠던 투쟁의 기록을 들어봤다.
"내 이름이 법전에 있다니..." 50대 노동자가 울었다
정 의원에게 교육위 통과 소감을 묻자 대뜸 '이름' 이야기부터 꺼냈다.
법안에 '급식조리사 및 조리실무사'라는 이름이 들어갔어요. 원래 학교급식법 어디에도 우리 직종 이름이 없었습니다. 유령이었죠.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기 힘으로 법에 자기 이름을 넣은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일 아닙니까?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의 책임'이다. 그동안 교육감 재량에 맡겨져 지역마다 들쑥날쑥하던 급식실 배치기준을 정부가 책임지고 정하라는 것이다.
지금 학교급식 노동자 한 명이 감당하는 식수 인원이 적게는 80명에서 많게는 240명까지 됩니다. 공공기관 평균보다 두 배는 더 일해요. 그러니 일반 기업보다 산재율이 5배나 높습니다. 이번 법안은 정부가 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대해 책임을 지고 기준을 마련하라는 명령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3위일체'의 기적
처음엔 다들 안 된다고 했다. 초선 의원이, 그것도 자기 상임위(환노위)도 아닌 교육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혀를 찼다. 교육부는 돈 든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정 의원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진보당(당), 노동조합(대중조직), 그리고 국회의원(원내)이라는 강력한 삼각편대, 이른바 '3위일체'였다.
노조만 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처음에 진보당이 제안했어요. '100만 청원운동으로 판을 흔들어보자'고 당이 먼저 길을 열었죠. 그러자 전국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화답했습니다. 일 끝나고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는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았습니다. 병원 의사한테, 장례식장 조문객한테, 남편 회사 동료한테까지 매달려 한 사람이 1천 명 서명을 받아온 조합원도 있었으니까요.
30만 명의 절절한 서명이 모였다. 여기에 정 의원의 '원내 투쟁'이 불을 지폈다. 국정감사장에 위생복을 입고 등장하고, 밥솥을 들고 장관을 압박했다. 급식실의 끔찍한 노동 현실이 전파를 타자, 요지부동이던 국회도, 교육부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당이 기획하고, 노조가 현장을 조직하고, 의원이 국회 안에서 싸웠습니다. 이 셋이 하나로 뭉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 손가락이 많이 휘었네"

정 의원은 인터뷰 도중 한 통의 편지를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정감사에서 정 의원이 학교급식실 위생복을 입고 질의하는 모습을 본 한 조합원의 자녀가 쓴 편지였다.
사춘기 아들이 영상을 보고 엄마 손을 잡더랍니다. '엄마 손가락이 많이 휘었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몰랐어.' 그동안 가족에게조차 말 못 하고 끙끙 앓던 노동의 고통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겁니다. 남편이 술 취해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펑펑 울었다는 분도 계셨어요.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내 땀방울, 내 아픔을 대변해 주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국회는 총성 없는 전쟁터…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노동자 자신"
정혜경 의원은 "국회에 와보니 이곳은 철저한 기득권과 자본의 전쟁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냉혹한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노동자 자신이라고 단언한다. 남의 민원을 처리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절박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지난 파업 현장에서 한 경남 지역 조합원이 외쳤던 발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가슴에 금배지의 무게를 다시금 새겨준 결정적인 한마디였다.
우리는 너무 힘들어서 우리 손으로 국회의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혜경 의원에게 '명령'했습니다. 급식법을 반드시 개정하라고 말입니다.
정 의원은 "그 '명령'을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교육위원장을 찾아가 펑펑 울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가 곧 그에게 내려진 엄중한 사명이자 명령이었던 셈이다.
정 의원은 이제 그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뭉친 단결의 힘을 투표장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노동자가 노동자 후보를 찍는 상식이 통할 때, 비로소 우리가 주인 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1문 1답]
Q1.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서 ‘1호 법안’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교육위 문턱을 넘었습니다. 단순히 법 조항 하나 바뀐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정혜경 의원: ‘유령에서 인간이 된 기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학교급식법 어디에도 밥을 짓는 노동자, 즉 ‘조리실무사’라는 직종의 이름 자체가 없었습니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죠 . 이번 개정안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기 힘으로 법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게 되었습니다 . 무엇보다 핵심은 '국가의 책임'을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교육감 재량에 맡겨져 들쑥날쑥했던 급식실 인력 배치기준을 이제는 정부가(대통령령으로) 책임지고 정하게 됩니다. 노동 강도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입니다.
Q2. ‘죽음의 급식실’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노동 강도가 심각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해 주신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정혜경 의원: 일반 공공기관 급식소는 조리원 1명이 50~80명 정도의 식사를 담당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적게는 80명, 많게는 1명이 240명 분의 식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 노동 강도가 2배 이상 세죠. 이러니 일반 기업보다 산재율이 5배나 높습니다 . 사람이 골병들고 폐암에 걸려 죽어 나갑니다. 서울의 경우 신규 채용을 해도 6개월 안에 절반이 그만두고, 10명을 뽑으려 해도 2명밖에 지원하지 않는 '채용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 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줄이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상급식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Q3. 사실 개원 초기만 해도 "그 법은 절대 통과 안 된다"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교육부의 반대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 불가능을 뚫어냈습니까?
정혜경 의원: 보통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진보당(당), 노동조합(대중조직), 국회의원(원내) 이 셋이 하나가 된 '3위일체' 파트너십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 작년 9월 진보당이 먼저 "100만 청원운동으로 돌파하자"고 제안했고,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 이에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화답해 현장을 조직했죠. 11월엔 총파업을 했고, 12월 법안소위가 난항을 겪자 국회 본청 앞에서 천막 농성과 단식 투쟁을 감행했습니다 . 저는 원내에서 위생복을 입고, 밥솥을 들고 장관을 압박했습니다. 노조만 있었다면, 혹은 의원 혼자였다면 절대 못 했을 일입니다.
Q4. 100만 청원 운동을 언급하셨는데, 사실 서명 운동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현장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였길래 국회를 움직인 겁니까?
정혜경 의원: 목표는 100만이었지만 실제로는 30만 명 정도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 하지만 그 질적인 무게가 달랐습니다. 일을 마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고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서 의사에게 서명을 받고, 장례식장 조문객에게 매달리고, 남편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부탁했습니다. 혼자서 1,000명의 서명을 받아온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 "살아서 퇴직하고 싶다"는 그 처절한 절박함이 30만 명의 여론을 만들었고, 요지부동이던 교육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결정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Q5. 국정감사장에 급식 노동자 위생복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단순한 퍼포먼스로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정혜경 의원: 그 옷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입니다. 제가 그 옷을 입고 "밤에 잘 때 손가락 마디가 아파서 잠을 못 잔다"고 질의했을 때, 현장의 수많은 조합원과 가족들이 울었습니다. 한 조합원은 사춘기 아들이 국감 영상을 보더니 "엄마 손가락이 많이 휘었네,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몰랐어"라며 손을 잡아줬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국회라는 공간은 항상 기득권의 언어만 가득했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나의 노동', '나의 고통'이 처음으로 대변되는 모습을 보며 노동자들이 엄청난 정치적 효능감과 위로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Q6. 교육위는 통과했지만 법사위와 본회의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법안 시행 시기가 2027년 7월로 미뤄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정혜경 의원: 맞습니다. 교육부가 연구 용역과 예산 마련을 핑계로 시행 시기를 1년 6개월이나 뒤로 미뤘습니다. 당장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너무 먼 이야기죠. 하지만 30만 명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행령(대통령령) 투쟁입니다. 법이 통과돼도 구체적인 배치기준을 헐겁게 만들면 소용없습니다. 노동 강도가 실질적으로 줄어들 수 있도록 끝까지 감시하고 싸워야 합니다. 본회의 통과도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등으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Q7.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국회의원이 되니 실제로 법이 바뀌었습니다. 밖에서 투쟁할 때와 안에서 직접 정치를 할 때, 동료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정치 효능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릅니까?
정혜경 의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예전엔 우리가 1만 명이 모여 6개월을 준비해서 파업하고 서울 광장에 모여도, 뉴스는 '교통 체증'이나 '급식 대란'이라며 딱 한 줄 나가고 끝났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료인 제가 국회 안에서 마이크를 잡으니 우리 이야기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이 되더군요. 무엇보다 우리 노동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했습니다. 한 조합원 남편분이 제가 국감장에서 위생복 입고 질의하는 걸 뉴스에서 보고 아내에게 전화해 펑펑 우셨다고 합니다. '네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몰랐다, 미안하다'고요. '내 노동이 존중받고 있다', '우리가 뭉치면 법도 바꿀 수 있다'는 그 자신감, 그게 바로 정치 효능감 아니겠습니까? 유령 취급받던 우리가 세상의 주인으로 서는 과정입니다.
Q8.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왜 노동자 후보여야 합니까?
정혜경 의원: 국회에 와서 보니 이곳은 철저한 '계급 전쟁터'였습니다. 법과 제도가 기득권의 로비로 만들어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자본과 기득권에 맞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현장에서 싸워온 전문가들이니까요. 노동자 의원은 남의 민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당사자이기에 그 누구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을 넘어, 투표장에서도 노동자 후보를 찍는 '정치적 단결'을 해야 합니다. 상임위마다 노동자 국회의원씩 배치돼야 하니 최소한 16명이 필요합니다.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해야 노동자 뜻대로 법안을 만들어 노동자가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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